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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청년 연암을 만나다] J에게

by 북드라망 2020. 3. 26.

J에게



나는 ‘더부살이’라고,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동주거를 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 지내는데, 오늘은 우리 집 막내 J의 이야기를 나눠 보려한다. 나는 J에게 편안함을 많이 느끼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나와 비슷하게 타고난 곰손이기 때문이다. 잘 흘리기도 잘 흘리고, 실수도 자주 하는 J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그런데 집 청소에서만큼은 내가 더 오래 더부살이를 해서 그런지 J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J는 동의 안 할 수도 있겠지만^^;;) J는 쓰레기를 치워도 손톱만한 쓰레기 쪼가리를 흘리고 간다거나, 화장실 머리카락 치우기나 이불개기 등등에서 뒷마무리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같이 사는 친구들과 나는 J에게 지적을 많이 했다. J는 ‘자신도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고, 노력하다 지치면 ‘어차피 더러워질 거 왜 치워야하냐’며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J의 말이 나름 일리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같이 사는 입장에서 청소 안 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청소를 하고나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며 기분이 좋지 않냐며 유도해보기도 하고, 청소와 생활을 연결시켜가며 청소의 의미를 주입시키려 했다. 하지만 J는 누드글쓰기에 청소이야기를 쓰며 스스로 청소에 대해 정리해보려 했지만 잘 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수심만 가득해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며칠 전, J가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며 펑펑 울었다. 자신의 행동이 기준에 못 미치는 것 같고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안 좋게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실수나 덤벙됨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J의 이야기를 들으며 J는 한심하다는 반응에 익숙해져서 실수 없이 완벽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J에게 한 번 더 말해주고 싶다. 완벽해져야한다는 마음으로는 더 나아질 수도 없고, 설령 나아진다하더라도 계속 뭔가 부족하게 느껴질 거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스스로 만족함이 있고 외물에 기대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즐거움을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니, 표절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억지로 힘쓴다고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천지에 가득한 원기를 품고 하늘의 강건함을 본받아 쉬지 않으면 우러르고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비록 홀로 선다 해도 두렵지 않다. 그와 같은 이치가 꼭 맞음을 아는 것은 진실로 지성(至誠)을 통해서일 뿐이니, 아비가 이를 자식에게 전할 수 없고, 자식이 이를 아비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박지원, 『연암집』(상), 「독락재기」, 돌베개, 92~93쪽


J의 완벽함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말, 즉 외물에 기대고 있었다. 청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소에서 약속을 정한 것들도 J는 언니들의 요구에 맞춰야 하니까 한다는 식이었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거나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데는 어려워했다. 그래서 청소를 완벽하게 한다는 것도 언니들에게 지적을 받지 않을 만큼 하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좀 더 흘러 지적을 받지 않을 정도로 청소에 익숙해져도 ‘숙제’ 그 이상의 의미는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뒤집을 수 있는 오로지 J뿐이다. 협박과 회유 그 외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J를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게 괜한 말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너만이 유일하게 키를 잡고 있고, 자신의 고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글_남다영(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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