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동의보감을 만나다]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동의보감, 하면 어쩐지 청년과는 거리가 먼 고전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의보감을 매주 열심히 탐독하며 자기 몸과 마음의 수련자가 되길 자처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동의보감 이야기와 함께 펼쳐질 청년들의 생생한 '몸'과 마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작년, 내가 속한 공동체인 감이당에서 여름맞이 캠프가 있었다. 이름하여 ‘음기 충전 프로젝트!’ 강원도 함백에서 소소하게 진행된 이 캠프는 화기가 작렬하는 여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소나무 가득한 숲길을 걷고, 동강의 절경을 보며 물수제비를 뜨기도 하고, 계곡물에 들어가 잠수하는 것까지, 1박 2일 캠프 내내 음기를 충전하느라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친구들과 함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본 것이다. 그냥 별이 아니라,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말이다!
함백에서도 가로등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그나마 빛이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만날 수 있다. 위락시설 공사를 한창 벌여놨다가 내팽개쳐버린 폐허 한가운데였다. 유일한 불빛이었던 헤드라이트도 꺼버린 채 자동차에 기대 하늘을 올려봤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정말 쏟아질 듯이 많았다. 처음 보는 별천지에 다들 감탄하기 바빴다. 그제야 나는 왜 별이 쏟아질 것 같이 많다는 말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가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별똥별은 또 어찌나 많은지 신기하기만 했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제껏 이렇게 쏟아지는 별들을 본 적이 없지? 이런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
화려한 빛의 세계
밤하늘의 별, 특히 쏟아질 것만 같은 무수히 많은 별을 보려면 우선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하늘’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밤하늘은 어떤 모습인가? 밤에 자기 힘들 정도로 밝은 가로등 불빛으로 환하기만 하다. LED 전등으로 바뀌면서 밤은 더더욱 밝아졌다. 화려한 간판이며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 등 밤낮이 따로 없다. 이런 빛 천지에서 잠을 자기란 쉽지 않다. 암막 커튼을 달고 안대를 끼는 등 어떻게든 빛이 들어오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래야 겨우겨우 잠들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위해 밤새 ‘빛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2007년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기관에서 빛 공해를 발암물질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빛 공해가 사람의 생체리듬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빛이 생체리듬을 파괴한다니! 가만, 그렇다면 24시간 화려한 빛으로 둘러싸인 시대에 태어난 청년들은 과연 어떤 ‘생체리듬’을 가진 거지?
한 달에 한 번 스님과 함께하는 고민 상담시간, 한 친구가 질문했다. 밤에 잠이 잘 안 오는데 어떡하죠? 그러자 스님께서는 바로,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는 친구의 말에 스님께서는 자기 전 두세 시간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자연스럽게 수면 상태에 들기 위해서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야 하는데, 스마트폰의 청색광이 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자기 전까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폰! 나도 마찬가지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있지만 오라는 잠은 안 오고 정신은 더 산만해진다. 볼 게 없는데도 계속 쳐다보게 되는 5인치 세상. ASMR을 들으면 잠이 잘 온다던데 하면서 마지막까지 스마트폰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어찌어찌 잠들어 다음날 일어나도 썩 상쾌하지가 않다. 또 늦게 일어났어! 하며 눈을 끔뻑끔뻑하니 눈이 뻑뻑하고 시리다. 자고 일어났는데 왜 아직도 눈이 침침하지?
스마트폰과 혼연일체가 된 일상! 오죽하면 스마트폰에 열중하면서 걷는 사람들을 보고 ‘스몸비’라고 할까.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를 뜻하는 스몸비는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주변을 전혀 바라보지 않는다. 집안에서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손가락 하나만 까딱이는 모습 역시 좀비 그 자체다! 최소한으로밖에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근육은 점점 약해진다. 회사에서까지 컴퓨터로 업무를 하다 보니 주변 친구 중에 ‘디스크’가 없는 친구가 드물 정도다. 20대 청춘부터 디스크를 걱정하는 게 이젠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은 그야말로 ‘양기 덩어리’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고개를 사방팔방, 눈을 양옆으로 굴리며 주변을 살피기 바쁘다. 근데 그런 아기들이 스마트폰만 쳐다보면 바로 홀린 듯 가만히 있게 된다. 스마트폰에 나오는 영상의 변화무쌍함에 정신이 쏠려 계속해서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만 울어도 스마트폰을 들이밀게 된다. 우는 아이 울음을 멈추게 하는 그 엄청난 일을 스마트폰이 해낸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정신은 양기를 막 쓰고 있는데, 몸은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화면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정신과 몸 사이의 간극은 점점 멀어진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영상에 시시각각 반응하고 있는 정신에 비해, 몸은 손가락만 까딱이고 있다. 이 ‘운동/정지의 비율’은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실제로 인터넷을 장기간 사용한 사람의 뇌를 촬영한 결과,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뇌 구조가 아예 변형된 것이다! 변형된 뇌는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 오르는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한다. 이 상태를 일컬어 ‘팝콘 브레인’이라고 한다. 이 팝콘 브레인에게 담담한 일상은 너무나 지루할 뿐이다. 화려한 빛 천지에서 살다 보니 정말 기본적인 잠도, 일상도 힘들게만 느껴지는 청년들의 상황을 『동의보감』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음허화동: 망동하는 불꽃
목화토금수 오행으로 보면 빛은 화(火)에 속한다. 디지털 문명 속의 현대인들은 밤낮 구분 없이 ‘화기’에 둘러싸여 있다. 활활 타오르기만 하는 화는 매캐한 연기만 만들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이다!
『동의보감』에서 양생의 핵심은 바로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수는 위로 올라가야 하고, 화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본디 불은 위로 타오르려고 하는 속성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려는 속성이 있는데, 불을 다스리는 심장은 위에 있고 물을 다스리는 신장은 아래에 있어, 수승화강이 잘 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등 쪽에 있는 두 개의 신장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왼쪽에 있는 좌신이 수를, 오른쪽의 우신이 화를 담당하는데, 이 우신의 불이 좌신의 물을 데워 가슴 쪽에 있는 심장까지 끌어올려 준다. 그러면 심장의 불은 물을 만나서 정미롭게 타오르고 불은 다시 물과 함께 아래에 있는 신장까지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승화강의 순환 사이클이 우리 몸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런데 수기가 부족해 신장의 기운이 약해지면 심장의 불이 제멋대로 타올라 몸이 균형을 잃는다. 그러면 얼굴에 열이 올라 잠을 잘 수 없다. 이를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고 한다. 신장의 수에 해당하는 음이 허해 화가 망동한다는 뜻이다. 화기가 치성한 시대에 태어나 수기가 약한 청년들. 수승화강이 잘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요즘 청년들은 잘 걷지 않는다. 우리 발바닥 가운데에는 신장과 통하는 혈자리인 용천혈(涌泉穴)이 있다. 말 그대로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혈이다. 걸으면 용천혈이 자극돼서 신장이 튼튼해진다. 걷기만 해도 치성한 불길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집 안에서 가만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물은커녕 계속 불만 때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장의 수기를 더욱 졸이는 것은 바로 이어폰이다. 습관적으로 꽂는 이어폰이 왜?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 수기운은 곧 골수와 뼈, 청력을 의미한다. 평소에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동의보감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이어폰의 과도한 사운드는 몸 안의 물을 마르게 한다. 심지어 잘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자는 습관은 가뜩이나 부족한 수기를 바싹 마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명도 물이 부족해서 뻣뻣해진 체내의 소리가 몸을 통해 귀에 전달되어 들리는 것이라고 한다.
음허화동의 상태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는 우리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심장의 불은 정신을 주관한다고 해서 ‘심주신지(心主神志)’라고 한다. 신지란 사유, 감정, 정서 등 정신활동 전반을 총칭하는 말이다.(안도균, 동의보감, p,173) 심장의 치성한 화는 연기를 자욱하게 만들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이때 얼굴에 열이 뜨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 맴돌게 된다. 마음이 번다해지거나 어디 하나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조절이 잘 안 되어 자주 화를 내거나, 툭하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망동하는 불꽃을 제어해야 한다. 이 화려한 빛의 시대에 어떻게든 내 안의 음기를 사수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의 저자 폴 보가드는 지구 인구의 3분의 2가 빛 공해로 인해 진정한 어둠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훼손되지 않은 밤’을 경험하기 위해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떠났다. 태곳적 어둠을 간직한 곳에서 별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트베이슨의 밤하늘 아래에서는 그런 영감이 쉽사리 떠오르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 세상은 우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사색하게 된다. 머리를 뒤로 젖힐수록 별들이 더욱 눈에 가득차고, 경이로움이 몰려온다. 지금 나는 어젯밤 이 국립공원을 향해 차를 몰고 달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느낌에 휩싸인다. 세상 맨 끝에서 내던져지는 느낌이다.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폴 보가드, 노태복 옮김, p.378)
이처럼 밤하늘의 별은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본능적인 사유로 이끈다. 우리에게는 밤이 필요하다. 활동을 접고, 복잡한 머릿속도 잠시 멈추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삶을 사유할 시간이 말이다. 사실 함백 캠프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며 눈물이 찔끔 났다^^; 이제껏 깜깜한 밤하늘을 온전히 누려보지 못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밤이 주는 편안함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것이었다. 마구 떠올랐던 생각들이 멈추고 별이 주는 따스함에 매료되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몸과 마음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듯 충만해졌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청년들은 밤을 잃어버렸다. 밤에도 낮처럼 활동하기를 원해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빛 속에서 몸의 생체리듬은 혼란스러워지고, 마음도 번잡해질 수밖에 없다. 밤은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다.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듯이, 아침에 일어나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밤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밤이 아까워 스마트폰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은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보면 매캐한 ‘불’만 계속 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삶에 반(反)한다. 그러니 지금 청년들은 이제 그만 스마트폰의 빛을 끄고 잃어버린 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니 빛 천지인 것처럼, 우리가 당연한 듯 여기지만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보면 삶에 반하는 시대적 조건들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왜곡되고 있을까? 시대편에서는 지금 청년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반양생성에 대해 진단해본다.
글_Moon 명(감이당 청년스페셜_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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