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3)
승츠비’의 추락
어느 날 실시간 검색어에 떡하니 올라와 있던 ‘버닝썬’이란 세 글자. 뭔가 해서 눌러봤더니 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클럽이 빅뱅의 승리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아니, 이건 무슨 일인가? 내가 아는 그 승리가 맞는지 확인을 하기도 전에 이미 성범죄, 마약, 불법 촬영물 공유 등 그와 연관된 범죄들이 줄줄이 드러났다. 버닝썬 ‘게이트’라 불릴 만큼. ‘승츠비’라는 별명처럼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열성 팬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그들의 노래를 종종 듣고 따라부르며 자랐던 터였다. 어느 순간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그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나도 이런데 팬들은 오죽하랴. 이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엄친아’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에서부터 다른 아이돌 그룹 출신까지. 한 명씩 밝혀질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며 성공한 그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우상’이 되기까지
빅뱅은 그야말로 ‘우상’이었다. 단순히 아이돌 중 하나가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이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아이돌 그룹! SNS에 올리는 글귀 하나에, 그들이 착용한 액세서리 하나에도 팬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승리는 평소 방송에 나와 자신이 아이돌로서 재능이 없다고, 그래서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빅뱅으로도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굳이 사업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탑은? 탑은 정말 탑(top) 아닌가. 재능이 넘치고 모든 걸 다 갖췄는데도 그는 약물을 복용했다. 팬들의 열광에도, 엄청난 부에도, 예술적 활동에도 그들은 왜 만족하지 못했을까. 왜 더 많은 돈, 더 큰 자극을 향해 치달아야 했을까?
무대 위에 선 그들은 화려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지극히 험난하다. 아이돌을 지망하는 아이들은 빠르면 초등학생부터 기획사에 들어간다. 장기간 연습생 생활을 하며 ‘훈련’을 받는다. 말이 훈련이지, 춤추고 노래하는 일을 하루에 7-8시간씩 하는 것이다. 상상이 가능한가? 일상이 춤추고, 밥 먹고 노래하고의 반복이다. 체중 관리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밥 먹는 걸 감시한다는 말은 예능에선 이제 낯익은 소재가 되어버렸다. 무대에 올라가는 조건으로 일주일 만에 7kg를 뺐다고 한 아이돌도 있다. 자신의 얼굴과 몸매, 재능까지 기획사가 제시한 엄격한 기준에 맞춰 갈고 닦는다. 그렇게 데뷔한 아이돌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딱딱 떨어지는 칼군무는 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한 무대를 보면서 우리는 ‘멋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몸은 ‘불’타올라야만 한다. 몇 시간씩 춤과 노래를 반복하며 몸을 과격하게 쓰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습을 지독하게 하면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보면 그건 ‘병증’이다! 몸이 발산만 하고 수렴을 못 하니, 계속해서 화기를 불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쉴 때도 헬스를 과격하게 한다. 무릎 연골이 나갈 정도로! 뭐든지 미친 듯이 ‘중독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열심히 해서 데뷔를 하면 몸은 이미 ‘수승화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공하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몇 탕을 뛰어야 한다. 밥도 벤 안에서 먹는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것도 아니고, 밥을 제대로 먹는 것도 아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계속 달린다. 무대의 화려한 조명을 받다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의 허탈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허탈감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듯이 인터뷰를 하고, 인스타에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린다고 한다.
우리는 화려한 무대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끝에는 말 그대로 ‘버닝썬’, 나도 불태우고, 다른 사람도 태워 버린다.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모습을 보면서 충격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대중들은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또 다른 우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주인공은 나야 나
아이돌의 주요 팬층은 10대 청소년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들의 외모와 몸매에서 춤과 노래까지 하나의 기준이 된다. 하나같이 아이돌처럼 되고 싶어 한다. 작은 얼굴, 흰 피부, 오똑한 코에 잘록한 허리까지! 아이돌처럼 ‘절차탁마’에 들어간다. 쌍꺼풀은 기본이고, 코는 옵션, 필러는 수술로 치지도 않는다. 미디어에서는 먹방을 부르짖지만, 아이돌처럼 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먹방과 다이어트, 매번 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여기서 겪는 스트레스는 무시할 수 없다. 매 순간이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다. 결과는? 원형탈모와 성형중독이다.
아이돌은 직업이라고 치지만, 보통 사람들마저 자신의 신체와 외모를 아이돌처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하나둘씩 여기에 가담하면서 외모와 인기가 무시 못 할 잣대가 되었다. 잘생긴 아이돌을 보며 ‘착한 얼굴’이라고 하지 않나. 얼굴에 착하다는 게 웬 말인가. 잘생김이 성격까지 말해주는 건가? 거꾸로, 이젠 착하려면 잘생겨야 할 지경이다. 윤리적인 지점까지 외모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 안의 풍경(內景)은 몸 밖의 모양(外形)과 연결되어있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오장육부가 타고난 기운의 발현이다. 간은 눈과, 코는 폐와, 턱은 신장의 기운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 쌍꺼풀과 양악수술을 한다면? 간과 신장의 타고난 기운과 어긋나버린다. 성형은 단지 얼굴 생김새의 문제가 아니다. 내 오장육부의 기운까지 뒤흔드는 일이다.
그럼 이렇게 열심히 얼굴과 외모를 갈고 닦아 원하는 것은? 자신감 운운하지만, 결국은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뿐! 사람들이 항상 나를 부러워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연애도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과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해야 한다. 나오는 음식 앞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 올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목표다. 같이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고 떡볶이를 먹는 건 ‘폼’이 안 난다. 세팅하는데 고생한 만큼 ‘보상’을 원한다. 상대는 무조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고, 내 말이라면 껌뻑 죽어야 한다. 연애 상대마저도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액세서리일 뿐이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내뿜는 게 아닐까. 상대방과의 교감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나의 즐거움만을 추구한다.
버닝썬 사건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삶을 불태우며 화려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다들 이런 욕망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우리는 누구나 빛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 무대 위를 둘러봐라. ‘나’밖에 없다. 다른 이는 내 쾌락의 도구일 뿐이다. 이 타오르는 화기를 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상화망동: 뿌리 없는 불
우리 몸 안에는 두 가지의 불이 있다. 바로 심장이 다스리는 군화(君火)와 간, 담, 신장, 삼초 등에서 발화되는 상화(相火)다. 불이라고 생각하면 뜨겁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심장의 군화는 그렇지 않다. 심장은 ‘중심에서 활활 타는 불이 아니라 혈맥을 흐르는 따뜻한 기운’(『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안도균, p.171)을 가지고 있다. 물에다 뿌리를 내려 정미롭게 타오른다. 항상성을 가지고 우리 몸 안의 신진대사를 주관한다. 이와 반대로 상화는 뜨겁다! 말 그대로 활활 타오르는 불이다. 상화는 뿌리가 없다. 그래서 무근지화(無根之火)라고도 한다. 순간적인 힘으로,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점화의 동력’(같은 책, p.172)이 된다. 상화는 기초대사를 유지하고 남은 에너지다. 주로 외부와 관계 맺는 데에 쓰인다. ‘간에서 일어나는 모려와 결단 그리고 실천 같은 에너지가 바로 상화다.’(같은 책, p.172) 내가 마주치고 있는 현장과 어울리면서 바깥과 소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화의 강한 불꽃은 동시에 내 안의 진액을 마르게 한다. 외부와 마주치는 일은 그만큼 힘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화를 우리는 마구 태워 버린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야 할 에너지를 계속 내뿜는 것이다. 잠을 못 자서 진액이 마르고 있는 내 몸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불태운다. 자거나 휴식하는 등,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상화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면 어떻게 될까? 화가 위로 솟구치게 된다. 이를 ‘상화망동(相火妄動)’이라고 한다. 현기증과 두통, 이명이 생기기도 하며, 쉽게 조급해지고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치성한 화기 때문에 간과 심장에 열이 뜨기 때문이다.
상화의 불길이 군화를 어지럽히면 문제가 커진다. 심주신지(心主神志)라고 하여 심장이 정신활동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가볍게는 성욕이 항진되거나 망상이 늘 일어나는 증상이 생기며, 심하면 정신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같은 책, p.172) 주체할 수 없는 화기는 우리 몸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사회는 인생 한 번이니 불태워야 한다고 부추긴다.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고! 기초대사에 집중해야 할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면 그것 또한 병증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열정’이라고 착각한다. 고행에 가까울 만큼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로의 ‘매니저’가 되자 – 변태와 권태를 넘어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대중들도 똑같이 우울증을 앓는다. 인스타그램에는 여행을 가고,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어딘가 아프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 미친 듯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열등감’에 휩싸인다. 치성한 불 아니면 재만 남는 것이다. 불타는 삶은 ‘변태’가, 재만 남은 삶은 ‘권태’가 된다. 지금 청년들도 이 두 가지 사이를 오가고 있다. 친구와 놀고, 밥 먹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는 삶의 순환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노는 것도, 밥도, 공부도, 일도 다 ‘미친 듯이’ 해야 ‘쫌’ 했구나 싶다. 그래야 내가 삶을 열정적으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몸은 ‘버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몸에 가해지는 불균형을 우린 잘 생각하지 못한다. 수승화강이 안되는 몸으로 계속 더 큰 자극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매번 주인공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라디오스타’ 속 명대사가 있다. 매니저 박민수가 왕년의 인기 가수 최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곤아, 너 아냐?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빛나기 위해서는 ‘그 빛남을 지켜봐 주는 타자들의 배경’(『이 영화를 보라』, 고미숙, p.240)이 필요하다. 아무리 화려한 무대 위에 서 있더라도 ‘혼자’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속에서 박민수는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친구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친구가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따뜻하게 지켜보면서. 그 따뜻한 빛으로 친구를 빛나게 해준다. 굳이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 서로가 서로의 매니저가 되어준다면 말이다. 그럴 때 몸은 자연스럽게 순환될 것이다.
글_Moon 명(청스_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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