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읽었던 책들 그리고 함께 나눈 이야기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읽었던 책들 

그리고 함께 나눈 이야기

 


북드라망의 최신간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는 문탁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저자 차명식 선생님이 ‘무려’ 중학생들과 1년간 책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읽은 ‘책’에 대한 내용도, 그 책을 통해 나눈 중학생들의 말과 글도, 또 그 책을 선택하며 함께 읽어 나간 저자의 생각도 어우러져 있습니다.


1년간 함께 읽은 책들은 더 많았지만 저자 선생님께서 이 책에 담기로 고른 책들은 모두 15권 + 영화 1편인데요, 함께할 책들을 고른 선택의 기준에 대해 차명식 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죠.


일 년 사계절 동안 네 개의 서로 다른 주제들로 커리큘럼을 구성하되, 그 네 개의 주제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흐름이 있을 것’을 과제로 삼았죠.

그 과제에 맞춰 저 스스로도 몇 가지 단서들을 달았습니다. 첫번째로 제가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 힘으로도 어젠다를 구성할 수 있는 주제여야 했어요. 수업 초반에 아이들이 어색해할 때에는 여차하면 제가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두번째로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단서들을 달아 놓고 보니 생각보다 답이 쉽게 나오더군요.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할 주제인 아이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저마다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중요한 공간과 관계들을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볼 수 있도록 하자.” (중략)

그래서 가장 먼저 나온 게 학교와 집이었습니다. 집보다 학교가 먼저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학생 즈음 되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수면 시간을 제외한다면―슬슬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죠. 중학생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 관계라는 게 학교랑 집 빼면 뭐가 있을까? 그게 도시이고 마을이었습니다. 분명 아이들의 삶의 기반을 구성하는 곳이면서도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지나치는 중간경로로만 인식되는 곳. 그리고 마을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그 너머, ‘국가’, ‘민족’, ‘세계’와 같은 것도 인식할 수 있게 되지요. 마을과 마찬가지로 자신들 삶의 기반을 구성하지만 평소에는 인식 밖에 있는 영역들.

그러니까 이 네 개의 주제는 인식이란 층위에서는 단계적입니다. 마치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내 세계를 구성하는 영역들 중 가장 가깝고 좁은 영역에서 시작해 더 멀고 넓은 영역을 인지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영역들은 단계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을-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가정’의 풍경에 영향을 주고, ‘세상’―국가에서 결정된 교육 정책이 바로 ‘학교’ 생활에 영향을 주죠.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연결망들이 있고요. 그 연결망이 바로 아이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각자의 세상일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렴풋이나마 그러한 자신들의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고 자신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 감을 잡길 바랐습니다.


자, 그러면 이런 생각으로 결정되었고, 이 책에 실리게 된 책들은 어떤 게 있는지 볼까요.


▶봄에 읽은 학교 이야기



만일 당신이 교사 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교사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늙은 교사에게 조언을 요청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때 늙은 교사가 “사랑으로 아이들을 만나라”고 조언해 준다면, 단지 그뿐이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면서도 실망할 것이다. ‘그런 뻔한 대답이나 듣고자 조언을 구한 게 아닌데.’ 통계 자료와 아동발달이론, 심리학에 근거한 대화 테크닉, 각종 상담지원제도 따위에 비하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도무지 교육 전문가가 쓸 법한 단어가 못 된다. 심지어 아이들조차도 과연 사랑이 답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학생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으로 치유를 받아야 하고 학생들도 사랑으로 선생님들을 대하면 된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사랑으로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점이 생긴다.”(우석이의 『학교의 슬픔』 감상문 중에서)

나는 우석이의 질문에 대해 무언가 대답해야 했다. 사랑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할까? 그건 쉬운 대답이고 틀린 대답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대답을 썼다.

_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본문 33~34쪽



▶여름에 읽은 집(가족) 이야기




또한 가족은 현대사회에서는 한 명의 개인에게 있어 가장 밀접하고 기본적인 단위의 소속이기도 하다.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아이들조차 한편으로는 독립이란 단어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 그러한 까닭이리라. 홀로서기는 그동안 나를 보호해 주던 그 모든 것, ‘안락한 나의 집(’Sweet home)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부모가 없으면 많은 것이 바뀔 것 같다. 일단 뒤에서 받쳐 주던 지지대를 잃어버린 느낌과, 앞에서 두려움을 막아 주는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일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느낌도 들 것 같다. 왜냐하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나를 옥죄는 가족도 없고, 나를 구속하는 어떤 것도 없으니 말이다.”(효준의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 감상문 중에서)

집 밖으로 내딛는 그 한 걸음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동경 비슷한 감정이 많이 묻어났다.

_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본문 80~81쪽



▶가을에 읽은 마을 이야기


그리하여 그날 수업은 결국 주로 그러한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가까운 데서부터 감각을 찾기 시작하니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예시들에도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성미산 마을의 설명 중에서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만들고 함께 토론하여 결정하면서 마을이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성미산 마을의 설명을 보니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하는 활동이 우리 학교와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우리 학교도 부모님들이 돈을 내고 그 돈으로 운영되고 학교를 지었으니 성미산 마을학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나는 성미산 마을 같은 공동체 마을을 내 주변에서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 조금만더 넓히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효준이의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감상문 중에서)

서울의 성미산 공동체 같은 가까운 예시와 더불어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 같은 해외의 예시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익숙함을 느끼는 듯했다. 게다가 ‘마을’로부터 거꾸로 올라가니 앞서 난해하게만 다가왔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낯설었던 『원미동 사람들』의 풍경들이 말하는 바와도 맥락이 닿았다. 도시의 탄생이 무엇을 무너뜨렸는지를. 그럼에도 무엇이 도시 안에 남아 있었는지를. 마을이란 이름은 무엇을 이끌어 내려는 것인지를

_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본문 148~149쪽



▶겨울에 읽은 세상 이야기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주어진 명령을 따르는 것은 쉽다. 『쥐』를 보면 수많은 잔인한 군인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가 태어나기를 잔인하게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무조건 따랐다. 그들이 전달된 명령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했더라면 그렇게 잔혹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이 명령의 부당함을 인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장 그 사회에 대항할 수 있을까?”(아이들의 『쥐』, 『소년이 온다』 감상문 중에서)


광주에 대하여 아이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아우슈비츠에 대하여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가을, 여름, 봄에 아이들이 썼던 글들을 들춰 보며 한 가지 확신만이 강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녀석들에게 정치가 ‘답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자신과 가까운 집과 학교부터 마을을 거쳐 과거의 기억들까지, 나는 녀석들에게 자신들의 세상을 돌아보고 곱씹어 보기를 권해 왔다. 자기 세상을 보는 스스로의 눈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 저마다의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 왔다. 아이들은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을지라도 글과 말을 통해 자기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왔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그 시선과 질문들을 마침내 삶과 행동으로 옮기는 행위라고 한다면, 자신과 세상을 잇는 걸음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자 실천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아이들에게 정치가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_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본문 186~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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