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논어』 풀어 읽은이 인터뷰

『낭송 논어』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논어』가 동양 고전의 가장 첫머리에 자리 잡은 중요한 책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다소 구태의연한 책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은데요. 오늘날 『논어』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일생에 걸쳐 쌓은 내공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소위 잘나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면 결코 강력한 내공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먹고 살기 위해 이 일 저 일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예악으로 명성을 얻은 후 따르는 제자가 수천이었지만 14년간 어느 임금에게도 등용되지 못한 채 유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정도 고난이 계속되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낙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까지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어디에서 그의 이러한 힘이 나왔을까요?


제가 직접 『논어』를 읽기 전까지 저는 공자야말로 성인(聖人), 즉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공부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에게 배움이란 엄청나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의를 얻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친구와 길을 걸으면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세력가들은 그의 변변치 못한 혈연과 학연, 지연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습권력을 이용해 공자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쥐락펴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담금질로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흙수저’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니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합니다. 이런 말들에는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자포자기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라고 신세한탄만 한다면 누구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쌓을 수 있을까요? 남의 기준에 짜 맞추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배움의 기쁨을 권하는 공부, 친구와 함께하는 공부,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공부를 지금 당장 일상에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논어』 읽기는 내공 쌓기 프로젝트의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2. 시중에는 『논어』와 관련한 책들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출간되어 있는데요. 다른 책들과 견주어볼 때, 이 책 ‘원문으로 읽는 디딤돌편’ 『낭송 논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논어』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제가 처음 『논어』를 접했을 때 딱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왜 이제야 나는 『논어』를 읽었나? 일 년에 걸쳐 공부했건만 더 알고 싶고 더 보고 싶은 연인처럼 『논어』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열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이 혼자서 『논어』 원문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동양 고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한자입니다. 


이 책 『낭송 논어』의 가장 큰 특징은 원문과 함께 『논어』를 우리말로 낭송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문을 직역하기만 하면 우리말로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우리말로 유려하기만 하면 원문의 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논어』에서 유래된 수많은 고사성어와 우리말 속담이 본래 뜻과 다르게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낭송 논어』는 전문가의 해설이 없이도 『논어』 문장을 그 자체로 소리 내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것만으로도 2,500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도록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특히 초심자에게는 다른 누군가가 설명해 주는 『논어』가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생생한 말과 행동, 그 자체가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제가 그랬듯이 친구와 이웃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때론 천천히 한 문장씩 읽어도 좋고, 때론 도장 깨기 하듯이 매주 한 편씩 단번에 읽어도 좋습니다. 입으로 소리 내 읽으며 낭송 내공을 쌓다 보면 『낭송 논어』가 랩이 되고 댄스가 되고 뮤지컬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3. 『논어』에는 공자와 제자들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 에피소드 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자는 동양 최고의 스승입니다. 아마도 『논어』에서 보이는 사제지간의 돈독한 정과 의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가 수많은 제자들로부터 한결같은 신뢰를 얻었던 참스승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공자의 탁월한 ‘균형감각’이 최고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 문하에서 염구가 재정을 담당하던 때 일입니다. 자화가 공자의 심부름으로 제나라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그러자 염구가 홀로 남은 그의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아마도 당시는 멀리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돕는 것이 관습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공자는 마치 돕기 싫은 사람마냥 염구가 청하는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의 쌀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양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염구는 자의적으로 더 많은 쌀을 자화의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자는 ‘자화가 살진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넉넉한데, 굳이 보태줄 필요가 있었느냐’고 염구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장면에서 공자는 제자 원사를 가신으로 삼았고 곡식 9백(석)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원사는 너무 많다며 받지 않고 사양했지만, 공자는 ‘남으면 너의 이웃과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공자는 두 제자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두고 남다른 균형감각을 선보입니다. 집안이 넉넉한 자화에게는 굳이 보상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제자 중에서 가장 가난했다고 알려진 원사에게는 일부러 직책을 주고 꼬박꼬박 월급을 챙겨줍니다. 해석자에 따라 이런 다른 보상이 개인적인 심부름과 공적인 업무라는 차이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공자의 특사로 자화 대신 원사가 파견됐더라면 공자는 또다시 원사를 좀 더 챙겨주지 않았을까요? 공자에게 공정한 분배란 파이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자들마다 처한 상황에 맞게 물자를 조절해 나누어 주었습니다. 공자는 염구가 자화의 어머니에게 너무 많이 준 것을 혼낸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염구가 가난한 자는 돕고 부유한 자의 재산은 더 불려 주지 않는다는 균형감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균형감각은 공동체 안에서 매순간 서로의 살림살이를 살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4. 『논어』를 완독한다는 것, 그것도 원문으로 완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낭송 논어』를 통해 『논어』 완독에 도전하는 독자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자도 모르고 공자도 모르는데, 어떻게 『논어』를 읽을 수 있을까요? 『논어』를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해설서와 번역본이 아닙니다. 『논어』, 그 자체입니다. 『낭송 논어』는 우리 입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읽고 난 다음 독음을 참조하여 원문 읽기까지 단번에 도전할 수 있는 책입니다. 되도록 원문의 맛을 살려서 해석했기 때문에 우리말과 원문이 따로 놀지 않아서 한자에 자신 없는 초심자들도 문장을 읽는 그대로 흡수하기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읽기에 벅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요? 첫 장부터 읽어도 좋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 중간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매일 한 구절씩 읽어도 좋고 매주 한 편씩 읽어도 좋습니다. 눈으로만 읽어도 좋고, 소리 내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읽고 또 읽는 것, 이것이 『논어』 완독의 정도(正道)이자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