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다른 이십대의 탄생』지은이 3인 인터뷰

『다른 이십대의 탄생』 지은이들 인터뷰



1. 제목은 ‘다른 이십대의 탄생’이지만, 글을 보면 세 분 모두 자신이 ‘다른’ 이십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삶이 일반적으로 ‘이십대’ 하면 떠올리는 삶과는 ‘다른’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일단 대학을 안 간 분이 두 분이고, 한 분은 자퇴를 하셨고요, 세 분 모두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신 채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다는 점에서요...). 세 분의 ‘(남)다른 삶’을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김고은 : 대안학교와 진보적인 대학교를 다니면서 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회문제에 대한 답답함이기도 했고,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이기도 했습니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넷)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문탁넷은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다 보면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닫게 되면, 상황이 단박에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곤 합니다. 아마도 시선을 바꾸고 나면, 태도를 바꾸고 나면 나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겁니다. 스스로를 바꾸지 않고는 세계가 바뀔 리가 없는데, 꽤 오랫동안 저는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책과 친구들의 힘을 빌려 어제보다 조금 덜 부끄러운 오늘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지원 : 여러 가지 우연에 의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때에 문탁넷이 있었다는 것도, 문탁넷에 왔을 때 마침 목공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이상한 우연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많은 친구들과 달리 저의 삶은 비교적 우연적인 것들에 열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실용음악으로 가려던 대학에 떨어진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떨어지기 전까진 대학을 가야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외의 삶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죠. 이때엔 제 삶에 우연적인 일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원했던 대학에 떨어지고 나니 삶은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되었어요. 다시 대학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상상해본 적 없는 어떤 삶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러나 스무 살 남자에겐 군대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군대를 가기로 했고, 저는 반대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단기적인 목표들이 생겨났죠. 군대를 가기 전에 알바를 해야지. 여행을 가야지. 하는 식으로. 그런데 우연히 열린 이런 목적 지향적이지 않은 삶의 상황들이 저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아르바이트는 더 나은 직장을 위해 거쳐 가는 곳이고, 여행은 반복적인 삶으로부터의 휴식 혹은 잠깐의 일탈이잖아요. 군대가 아무리 싫어도 사회에 나가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으면 영혼을 빼놓고 군 생활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달리 목적이 없는 저에게 아르바이트, 여행, 군대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 삶이었죠. 그 때문에 질문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왜 즐겁지 않을까? 여행자인 나와 현지의 사람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군대에서의 폭력은 군대 안에서 끝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저를 문탁넷으로 이끌었고, 나아가 우연적인 것들에 열려 질문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삶을 조금 남다르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동은 : 저는 문탁넷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파지스쿨>을 통해 처음 문탁넷에 접속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들과 함께 탈핵시위에 가게 되었어요.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전력전자를 공부한 저는 탈핵운동을 지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원자력 발전은 좋은 것이라고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그저 가볍게 가본 것이었죠. 문탁넷 사람들을 따라 송전탑 반대를 위해 밀양에 갈 때도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송전탑의 현장을 다녀오니 이전과 같은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문탁넷에서는 세미나를 통해서 만들어진 관계가 새로운 활동이 되고, 활동은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듭니다. 이건 곧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문탁넷에 있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청년 인문학스타트업 <길드다>를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도, 학교도 아닌 이곳에서 맺게 된 관계와 활동이 제 다른 삶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이 책은 세 분 각자의 글이 실려 있지만, 각자 쓴 글조차 사실은 함께 쓴 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개성이 강한 세 사람이 매주 함께 만나서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하는 과정은 언뜻 생각해도 녹록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세 분에게 함께 쓰는 이 글쓰기는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고은 :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스스로의 글쓰기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에 종종 글쓰기로 상을 받았고 사연응모에 당첨되는 일도 잦았으니, 글을 뚝딱 써내는 것이 장기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원고를 쓰는 동안 친구들에게 단어나 문장이 거칠다는 지적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글쓰기의 리듬을 타지 못했고, 제가 쓴 글이지만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상태로 지냈습니다. 글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당황스러웠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건의 전후를 따져보고, 꼼꼼하게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일에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저는 제 자신감의 근거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글만 잘 썼던 게 아닐까?’ 꽤 오랫동안 글을 함께 보는 친구들과 문탁넷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퍼즐하듯이 글의 구조 위에 생각을 끼웠다 뺐다 했습니다. 또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전개해 나가는 지원, 톡톡 튀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동은을 보며 따라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글을 쓰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편하게 풀어졌고, 자연스럽게 문장과 문장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1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피드백 시간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글쓰기의 초석을 다지는 시간이자 생각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원 :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매주 내가 무언가를 써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주 큰 부담이었습니다. 세미나는 세미나대로, 일은 일대로 유지하면서도 글을 써가야 했습니다. 글은 얼마만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시간을 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내가 써온 것을 보기 위해 매주 모이는 겁니다. 이 사람들, 이 친구들은 내 글을 보고 거기에서 자꾸 뭔가를 찾아냅니다. “이 말은 왜 썼어?”, “이게 정말 너의 생각이야?”, “다른 표현이 낫지 않을까?”… 내가 써왔으니 당연히 내 생각이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친구들은 언제나 내가 더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것 때문에 짜증나고, 울고불고 싸우기도 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 긴 시간 침묵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친구들은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계속해서 부숩니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무려 1년 동안 겪으면서 뼈저리게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공부란 뭔가를 부수는 일이고, 이 일은 결코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 뭔가가 부서지면 그 자리에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게 된다는 것. 이 자리, 새로운 생각, 흔적으로서의 이 글은 ‘내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 글쓰기를 통한 우정의 체험이었습니다. 물론 초고를 넘기고 다른 일들을 함께하며 우린 똑같이 싸우지만, 이 모든 경험이 관계를,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정말 좋은 우정의 방법입니다. 


이동은 : 처음에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수월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읽어온 철학책은 힘겨웠지만, 제 이야기를 쓰는 건 그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의 이야기는 나만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점점 글을 쓸수록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다른 상황과 시점을 다루면서도 늘 비슷한 글이 써지니 전하려고 하는 의미가 협소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저조차도 점점 제가 쓰는 글의 내용에 확신이 없어졌습니다. 열심히 쓰더라도 늘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만이 나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운 철학공부를 하는 것이나, 내 글을 쓰는 것이나 고민하고 분석하는 일은 같았던 겁니다. 세미나에서는 철학자의 어려운 개념이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해석합니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고은과 지원은 제 글을 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고 생각지 못했던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것은 곧 저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이 풀렸습니다. 그렇게 써낸 글은 저의 글이지만 저만이 쓴 글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저는 이것이 '함께하는 글쓰기'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3. 김고은 선생님은 동양고전 공부를 수년째 하고 계신데요…. 전공자도 아닌데, 이십대가 동양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이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동양고전 공부는 어떤 의미인가요? 



공동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는 얼떨결에 ‘코 꿰이기’입니다. 우연히 동양고전을 접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기초적인 한자도 잘 모를뿐더러 옛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제가 동양고전을 공부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양고전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저를 가장 흥분시켰던 사실은 옛것에 대한 반감이 순전히 제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의 흔적을 좇으며 그들의 생활을 그려보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 고전적인 사고에 조금씩 익숙해져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자, 이번엔 반대로 오늘날 사람들의 사고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현재 가지고 있는 관점에 조그마한 균일이 났고,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다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들은 어제와 같은 실수를 오늘은 하지 않을 수 있게, 갑갑한 마음으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지내지 않을 수 있게 해줍니다. 아직 거칠고 미숙하지만 저는 때때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 길들을 열심히 따라가 보고 있습니다. 



4. 김지원 선생님은 대학을 안 가고 목수 일을 배우면서 인문학 공부도 함께 해오셨는데요, 선생님 삶에 이 두 가지 일은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보통의 직장인이 생계일과 하고 싶은 일을 분리해서 해나가듯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왜 목수일과 인문학 공부를 모두 놓지 않고 하시는 건가요?



처음에 목공소 일은 사실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탁넷에 오게 되었고, 마침 문탁넷 1층에 있는 목공소 월든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받는 돈이 많진 않았지만 빵집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친구들이 보기에)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나무에 대해, 가구에 대해, 그리고 목공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공부와 일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나무의 성질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세상에 있는 가구들은 나무의 성질을 잘 모르고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가 가진 성질 때문에 가구에 나사를 박거나 타카를 치는 일이 가구를 오래 쓰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만든 걸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이유를 좇다 보면, 문탁넷에서 함께 읽은 『자본론』과 연결이 되는 식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가구가 오래오래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파는 사람은 사람을 적게 쓰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상품을 완성 시키는 데에 모든 노력을 다하죠. 사는 사람은 되도록 싼 가격에 구매를 원합니다. 나무의 성질은 사라지고, 화폐가치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금방 부서지면 좋죠. 수요가 영원할 테니까요.


또, 어제 세미나에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었는데, 다음날 어떤 할머님이 의자를 고쳐 달라고 찾아오신 겁니다. 의자를 고쳐 드리고 돈을 주시겠다는 할머니를 극구 사양하면서 돌려보냈더니, 다음날 아드님이 농사지은 거라며 딸기 한 상자를 가지고 오셨어요. 그럼 저는 고작 의자를 고쳐드리고 아주 중요한 것을 받은 기분이 듭니다. 책에서 읽은, 화폐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고마움의 이런 긍정적인 순환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낍니다. 


물론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요병에 시달리고, 도대체 이 일이 언제 끝날지 한탄하기도 합니다. 공부도 마냥 하고 싶은 일인 것만은 아니에요. 책 읽다 졸기도 하고, 술 마시고 노느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세미나에 참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양쪽 모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중단하는 순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세상이 멈추고, 굳어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과 공부를 통해 이미 세상의 다른 모습을 보았는데, 그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럴 땐 놓지 않는다기보다, 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요?  



5. 이동은 선생님은 일반적인 의미의 ‘예술’ 전공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실 문탁넷에서 ‘예술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예술’을 직접 하시겠다는 생각조차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을 설명하는 말 중 하나가 ‘예술’이 되었는데요. 선생님에게 ‘예술’은 무엇인가요?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일이 ‘예술’이 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예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고은이의 말을 인용하지만 ‘코가 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프로젝트가 끝나고 첫 예술 작업에 대한 성취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두번째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후회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했던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문탁넷에서 하는 ‘일’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함께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 과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제가 세운 일정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길드다> 친구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한동안 저는 예술작업도, 일도 모두 갈피를 잃고 자책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맞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함께 일을 할 때도, 예술 작업을 할 때도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를 잘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코가 꿰이더라도 계속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얼마 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예술을 하고 싶어진 이유는 예술을 하는 것이 저를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은이가 생각하는 문제를 전하기 위해서 찾았던 ‘말’이나, 지원 오빠가 ‘목공’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는 것에 골몰하는 것처럼 저에게도 예술은 제 자신을 고민하고,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저만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6. 이 책 『다른 이십대의 탄생』을 읽게 될 독자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셔요.


김고은 : 이렇게 서툰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는 걸 생각하면 부끄러워 숨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분명 제가 썼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제가 이 책을 썼는지, 이 책이 저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은 종종 저를 따돌리며 앞질러 나갔습니다. 이 책은 분명 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책을 제 이야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는 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함께 글을 봤던 친구와 선생님, 저와 인연이 닿았던 사건 혹은 책의 흔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이 출간되어 읽으신 분들의 손때가 겹겹이 묻게 되면, 더더욱 저의 책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이 책을 마음껏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책이 어떤 분에 의해서 어떻게 변모할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지원: 이 책은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남)다르다면 (남)다른 세 명의 이십대인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입니다. 우리가 만난 사건들, 사람들, 그리고 텍스트들에 대한 우리의 질문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야기들은 누구라도 이미 마주쳤거나 앞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은 : 얼마 전, 고등학교 선생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나온 직업 특성화고등학교에선 일반적인 학교들이 대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취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연락을 주신 이유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하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하지 못한 채 졸업한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셨던 겁니다. 졸업 즈음의 학교는 대부분이 회사로 연수를 가고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만 남아있어 휑합니다. 졸업을 하기 전, 저는 학생이 얼마 없는 교실에서 미래를 생각하며 막연하게 불안해했어요. 이대로 졸업해버리면 영영 내 인생을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어쩌면 그 학생들이 그 때의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이 책을 쓰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졸업 후 이제까지 공부하며 지냈던 일, 공부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간 일, 친구들과 함께 <길드다>를 하게 된 일들을 통해서 친구들과 함께 제 나름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중이라고요. 선생님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다행이라며 안심하셨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저에게 그 때의 불안함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래가 막연하지는 않습니다. 함께하는 관계가 있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져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20대의 탄생』에는 그 구체적인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 과정이 읽는 사람들에게 멀지 않은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2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혹은 자기와 비슷한 또래가, 아니면 자신이 지나온 20대의 시기를 이렇게 지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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