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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우주적인 로봇적인』: SF팬의 생활에세이스러운 소설 리뷰, 를 리뷰하기

by 북드라망 2019. 4. 23.

『우주적인 로봇적인』 

: SF팬의 생활에세이스러운 소설 리뷰, 를 리뷰하기



어지간한 SF 팬이라고 하면 서점에서 구할수 있는 SF 들은 물론, 인접 장르의 책들까지 웬만큼 섭렵한 후, 왜 SF 가 더 많이 출판되지 않는지 투덜거리는 것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SF 가 이렇게 훌륭한 장르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번역서도 나오지 않고 창작자는 더더욱 없다고 다들 - 정확히는 두어 줌 정도 되던 SF 팬들이 - 한탄하던 그 시절. 당시의 SF 팬 한 명을 냉동시켰다가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있어야 마땅한 2019년에 깨워서 온라인 서점의 장르소설 페이지를 보여주면서 SF 계의 현황을 알려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1 년 동안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SF 가 100 종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말로만 듣던 이 사람의 책도 번역되었다고?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도 이렇게 많은데다가 영어로, 중국어로 번역되기도 한다고? 한국계 작가의 작품이 휴고상 후보가 되기도 하고 중국인 작가의 SF 는 심지어 휴고상을 수상했다고? 이곳이 바로 SF 의 멋진 신세계로구나! 하고 감탄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오히려 갑자기 펼쳐진 SF 의 진수성찬 앞에서 대체 어떤 것부터 먼저 맛보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난감한 표정을 지으려나?




SF 로 분류되어 출간되는 책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SF 를 읽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고, SF 를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SF 를 읽고 남기는 감상도 많아질 것이다. 이 책 엄청 재미있어! 라는 한 줄짜리 트윗에서부터 SF 를 본격적인 문학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평론가의 글까지. 읽은 SF 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 하나의 축이라면, 감상글을 구성하는 다른 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작가가 그 글을 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상황, 그리고 SF 라는 형식을 빌어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작가와 관련된 관점을 가지고 글을 풀어나가기 시작하면 SF 평론이 될 가능성이 높을 테고, SF 소설을 읽으면서 내 생활, 나의 경험, 내 주변의 이야기들과 연결시켜서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풀어나간다면 에세이에 가까운 글이 될 것이다. 윰님의 글은 후자에 속한다. SF 소설을 읽은 감상과 더불어 그 책의 내용과 연관되는 삶의 이야기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제처럼 생활 에세이스러운 소설 리뷰라고 해도 좋고, 소설 리뷰의 탈을 쓴 생활 에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적절해 보인다. 생활 에세이라니, 그런 글은 너무 흔하지 않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SF 소설 리뷰와 엮이는 생활 에세이는 많지 않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재미있기까지 한 글은 더더욱 드물 것이다. 어떤 연유가 되었든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여러분, 그런 희귀한 조합의 책을 찾으신 겁니다. 


돌이켜보면 나 자신도 어린시절부터 SF 를 좋아했지만 그건 드넓은 우주, 까마득한 미래, 인간과 무척 다른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세계(異世界)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룡기'를 지나는 어린아이들이 수억 년 전 땅위를 호령했던 거대 파충류에 매료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고 할까. 세월이 흘러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삶'이라는 것을 좀 경험하고 나니 그런 이야기보다는 나의, 내 주위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양의 SF 소설들은 어느새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장 한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 SF 라는 장르를 다시 한 번 돌아보니, 아뿔싸, 어릴 때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SF 는 "아주 오래전, 머나먼 은하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우리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윰님의 글 한 편 한 편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태극기 부대와 클론들, 전기양의 꿈을 꾸는 안드로이드와 헬스장의 무례한 시선,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식물원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걷는 식물 트리피드,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게 될 수밖에 없는 외로운 책벌레 주인공 등등. SF 작가가 만들어낸 "우주적인 로봇적인" 이야기는 윰님의 삶이라는 축과 만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고 그 새로운 축을 타고 퍼져 나가면서 책을 읽는 독자들의 삶이 이야기들과 얼마나 공명하는지 탐색한다. 소수자에 대한 시선, 벌레 떼에 대한 두려움,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빚어지는 부모님과의 갈등, 멋쟁이 할머니의 난꽃향,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운명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물건, 이들 중 어떤 주파수에서 공명이 일어날지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스물다섯 개의 이야기들로 빙고판을 만들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에 동그라미를 쳐 빙고가 몇 개나 만들어지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여러분은 빙고를 몇 개나 만드셨나요? 빙고판을 사진 찍어 댓글에 첨부한 독자들 중 다섯 분을 추첨하여 상품을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키득거리다가 빵 터져서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데면데면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큰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면서 글들을 다 읽은 후 글목록을 살펴보니 처음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 눈에 띄었다. 리뷰 대상이 된 SF 중에는 오래된 작품들이 비교적 많다는 것, 그리고 국내 작가의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 전자는 어릴 때부터 SF 를 읽어온 윰님의 경력 상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이렇게 된 이상 출판사로 가서 최신 번역 SF 들과 국내 작가의 SF 에 대한 리뷰로 이루어진 다음 책을 내달라고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없겠다. 


글_정직한(저자 이유미의 운동친구이자 고생물학자인 SF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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