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 미증유의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가족 안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인연의 무게
“나는 금년에 죽을지도 모른다.” 소세키는 새해를 맞아 보내는 연하장에 이렇게 썼다. 감기 한 번 걸리면 몇 개월을 바깥출입을 못할 정도로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소세키는 그 다음 해 세상을 뜬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는 사람은 어떤 글이 쓰고 싶어질까. 소세키는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유리문 안에서 수필을 썼다. 그는 어릴 적 부모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추억한다.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해낸 수필집 <유리문 안에서>의 한 대목이다.
아사쿠사에서 우시고메로 옮겨진 당시의 나는 어째선지 무척 기뻤다. 그리고 그 기쁨은 누구나 쉬이 알 아볼 정도로 뚜렷이 밖으로 드러났다... 내가 혼자 방에서 자고 있는데 머리맡에서 나지막한 소리로 연 신 내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다... 하녀는 어둠 속에서 내게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도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여기시는 분들은 사실 도련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세요. 아까 ‘아마도 그래서 저렇게 이 집을 좋아하는가 봐, 거참 묘하군.’하고 두 분이 말씀하시는 걸 제가 들었으니까 도련 님에게 살짝 가르쳐 드리는 거예요.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돼요. 아시겠어요?” (나쓰메 소세키, 『유리 문 안에서』,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17년, 84~85쪽)
핏줄은 끌어당긴다더니 제 집으로 돌아온 지도 모르면서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천진하다. 어린 소년은 한밤중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하녀에게서 꿈결처럼 자기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의 진짜 부모라니 그럼 그동안 아버지 어머니로 불러왔던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 장면은 태생부터 복잡한 가족관계를 끌어안고 살게 될 한 사람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소세키는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늦둥이를 본 그의 아버지는 50세, 어머니는 42세였다. 그의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해서 ‘남세스럽다’고 말했다. 기대수명이 요즘과는 달리 오육십 세 밖에 되지 않았을 테니 늦은 출산이긴 하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시오바라가에 양자로 보내졌다. 하지만 양부의 외도로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양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아홉 살 때 본가로 되돌아온다. 본가로 돌아왔지만 21세가 될 때까지 양부모의 호적 아래 남아있었다. 어린 소세키는 한동안 친부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렀다. 형들이 연달아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소세키의 아버지는 양부모에게서 호적을 돌려받고자 했다. 양부모는 그동안 키워준 양육비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복적을 둘러싸고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 돈이 오고 갔다. 소세키는 자신이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유년기의 기억 때문인지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돈의 흐름을 다룬다.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근대적인 화폐가치로 바뀌고 있는 모습을 소세키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화폐가 매개가 되는 교환관계야말로 근대적 삶의 양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세키는 수필연재를 마치자마자 소설 『한눈팔기』(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년)를 썼다. 『한눈팔기』는 소세키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자전적인 색채를 띤 소설이다. 자전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소설 속 주인공 겐조는 소세키의 모습과 싱크로율 99%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체험 위에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인지라 소설 속 주인공을 작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소세키와 가장 닮은꼴인 겐조를 통해서 자연인 소세키의 감정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한눈팔기』는 36세의 중년이 된 겐조 앞에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양부모가 나타나는 이야기다. 서로 잊고 살 만큼 세월이 흘렀다. 한 때는 부모 자식 관계였으나 사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호적을 되돌린 지도 오래 됐다. 서류상으로나 법적으로나 모른 체 해도 무방한 타인들이다. 양부모와의 조우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입양과 파양, 복적을 거쳐야 했던 곡절 많은 유년시절은 어떤 모습으로 잠재되어 있을까. 끊어진 줄 알았던 가느다란 실이 질긴 인연으로 다시 봉합되는 순간 가족이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솟아오른다. 가족에 대한 기대와 의무, 책임 때문에 고뇌하는 사람이라면 소세키의 실증적인 증언인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한눈팔기』는 한 작가가 탄생하기까지 그 어떤 우연과 필연이 뒤섞이는지 증언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리냐 개인주의냐
소설은 ‘먼 데서 돌아온’ 겐조가 출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먼 데’는 영국을 암시하고 있다. 겐조의 직업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이다. 친척들 눈으로 보면 겐조는 출세한 사람이다. 소위 서양 물을 먹은 하이칼라가 아닌가. 외국유학까지 다녀왔으니 월급을 엄청 많이 받을 거라는 헛소문이 퍼져있다. 겉보기와 달리 실상 겐조는 돈에 쪼들렸다. 학교를 세 군데나 나가 강의를 해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녹초가 되었다. 퇴근해도 쉬지 못하고 책상 앞에 달라붙어서 시험지를 채점한다든지 강의 준비를 해야 했다. 겐조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내내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온통 손을 벌리는 가족이 있다. 천식에 걸려 헐떡거리는 누나는 매달 주는 용돈을 더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매형이 누나를 발로 차고 두드려 패면서 용돈을 빼앗아 가는 걸 알면서도 겐조는 거절하지 못하고 돈을 준다. 형은 어디 장례식이라도 가려면 겐조에게 낡은 외투를 빌려 입어야 할 지경으로 가난하다. 한 때는 고위직에 있었던 장인도 쫄딱 망했다. 장인은 일자리를 잃고 미두(주식)에 손을 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보증을 서달라고 졸라대니 겐조는 할 수 없이 대출을 받아서 돈을 빌려준다. 아내도 돈이 없어 쩔쩔 맨다. 친정에서 가져온 옷까지 전당포에 맡겨서 살림에 보탠다. 아내는 곧 셋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늘어날 생활비가 걱정이다. 겐조는 생계 때문에 친구들과의 사교도 끊었다. 소설에 묘사된 겐조의 가족상황은 소세키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체험담이다. 당시의 심경을 소세키는 수필집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강사로서 연봉 800엔을 받았다. 아이가 많고 집세가 비싸 800엔으로는 도저히 꾸려 나가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두세 군데 학교를 뛰어다니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 어떤 소세키도 이렇듯 분주하여 지칠 대로 지치면 신경쇠약에 걸리기 마련이다. (『유리문 안에서』, 117쪽)
겐조도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그는 짜증을 견딜 수 없어서 화분을 걷어차면서 “내 책임이 아니야”를 읊조린다. 엎친 데 덮치는 게 인생이라 했던가. 그의 앞에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줬던 양아버지가 나타난다. 양아버지 시마다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겐조를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조른다. 점점 액수가 늘어난다. 시마다는 다시 부모 자식의 연을 맺고 늙은 자신을 부양해달라고 한다. 겐조가 안 된다고 거절하자 시마다는 대신 큰 액수의 목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양어머니도 찾아온다. 산 너머 산이다. 시골노파의 행색이 완연한 양어머니는 송구해하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보는 겐조의 마음은 불편하다. 양어머니가 찾아올 때마다 “실례지만 인력거라도 타고 가시지요.”하며 5엔짜리 지폐를 건네준다. 엄밀히 말해 겐조에게는 양부모에게 갚아야 할 빚이 없다. 호적을 되가져오면서 겐조를 키워주었던 양육비를 충분히 갚았던 것이다. 인연을 끊는 조건으로 증서도 교환했다. 겐조는 양부모가 성가시지만 박절하게 내치지 못한다. 아내는 처음부터 양부모가 얼씬거리지 못하게 냉정하게 대했어야 한다고 그를 질타한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겐조는 버럭 성질을 낸다. 만만한 게 마누라다. “사람의 도리가 그런 게 아니니까......” 겐조는 속으로 우물거린다. 그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자신도 쪼들리면서 결국은 다 도와준다. 형, 누나, 매형, 장인어른에 양아버지, 양어머니, 사방에서 돈을 달라고 조른다. 한 마디로 겐조는 삥 뜯기는 남자다.
그에게는 친부모에 대한 기억도 좋지 않다. 자식이 많았던 친아버지에게 겐조는 조그마한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친아버지는 나중에 신세를 질 장남이라면 몰라도 다른 자식에게 한 푼이라도 돈을 쓰는 걸 아까워했다. 양부모에게 겐조를 맡길 때 친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었다. 어쩔 수 없이 겐조를 다시 거두게 되자 친아버지는 애물단지를 떠맡은 듯 무뚝뚝하게 굴었다. 겐조는 친부모든 양부모든 보상심리를 바라고서 애정을 베푸는 걸 보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딱 잘라서 거절하면 되지 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걸까 의아하게 여기는 독자도 있겠다. 겐조는 인연을 끊으려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럴 리가. 그는 모질게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이다. 왜?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대신 함께 있기만 하면 설사 원수지간이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이지. 결국 그게 사람일 거야.”(『한눈팔기』, 187쪽) 겐조의 말대로 그게 가족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탄생
마침내 겐조는 원고지 앞에서 펜을 든다. 원고료를 벌어서 양아버지에게 목돈을 주기 위해서.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불쾌한 사실을 알면서도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는 맹렬하게 일 했다. 마치 자신의 몸에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위생을 학대라도 하는 것처럼, 또한 자신 의 병에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피에 굶주렸다. 게다가 남을 도륙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피를 빨며 만족했다. 예정한 매수를 다 썼을 때 그는 펜을 던지고 다다미 위에 쓰러졌다.
“아아, 아아” 그는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한눈팔기』, 283쪽)
피를 쥐어짜내듯이 글을 쓰고 바닥에 쓰러져서 짐승처럼 신음하는 소리가 처절하다. 글을 쓰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바로 이 장면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1904년에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잡지 <호토 토기스>에 연재되면서 소세키를 소설가로 변신시켰고 그의 불멸의 대표작이 된다.
소세키는 국비유학을 2년간 다녀왔으니 그 두 배인 4년 동안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근무해야 했다. 의무연한을 마치자 그는 제국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한다. 주변 사람들이 놀랄 만 하다. 매년 장편소설을 한 편씩 쓰고 연봉 2400엔을 받는 조건은 대학 강사를 하면서 받았던 연봉에 비하면 파격적인 대우지만 소설이 기계로 찍어내듯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일이다. 만약 내 자식이나 남편이 국립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신문에 연재소설을 쓴다고 하면 환영할 사람이 있을까? 소세키의 선택은 무모해보일 정도로 획기적이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자 그는 숨통이 트였고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신선한 공기가 폐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소세키는 영국 유학을 다녀와서 10년을 작정하고 일본 고유의 문학론을 쓰고 싶었지만 생계 때문에 서둘러서 2년 만에 저술을 마무리했다. 영문학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서 영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신경쇠약을 가중시키는 노동이었다. 그는 드디어 소설가로 변신했다. 가족으로 인한 생활고의 압박이 그의 글 쓰는 재능을 촉발시켰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소세키는 맹렬하게 소설을 써내려갔다. 훗날 소세키의 아내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남양진주조개로 만든 펜대로 글을 썼는데 손가락이 닿는 부분이 닳아서 둥그스름하게 패어있었다.”(나쓰메 교코, 『나쓰메 소세키, 추억』,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년, 168쪽) 고 한다. 단단한 펜대가 패일 정도였으니 손가락에는 얼마나 굳은살이 배겼을지 상상이 된다. 소세키는 뭔가 쓰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문예 저술을 생명으로 삼는 소설가보다 명예로운 직업은 없었다. 소세키는 문학을 창조하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괴로움의 극한까지 내려갔을 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내서 용기 있게 도전하는 경험담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세키의 소설은 이해관계에 얽힌 인간의 감정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일지라도 속내에는 자식을 잠재적인 노후대책으로 삼고 투자하고 있는 잔혹한 진실을 드러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개인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계인이다. 전통적으로 당연시 되었던 효의 의무에 대해 환멸의 감정을 느끼지만 철저하게 자기 실속을 차리는 개인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무르다. 환멸과 연민이 교차할 때 신경이 갈가리 찢긴다. 전통적 가치와 개인주의가 부딪히는 균열이다. 도의와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소세키의 전형적인 인간상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도 소세키의 인간상과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부모자식 사이도, 부부사이도, 연인사이도 화폐관계로 대체된 사회가 되었다지만 수 천 년 동안 내면화되어온 인의와 충효라는 유교적 가치관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부양하는 문제로 적잖이 고민을 했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영민하고 통이 큰 사람이었는데 홀로 되자 믿을 수 없이 연약한 노인으로 변했다. 아직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였건만 매년 큰 수술을 받을 만큼 병치레가 이어졌다. 큰 남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5년 내내 부부사이에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동생 집으로 거처를 옮겼더니 5년 만에 작은 올케가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혼자 살 용기를 내지 못했고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걸 인생의 실패로 여겼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멀리 대구로 시집간 딸네 집에 와서 살게 된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어머니는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딸에게 신세를 지는 걸 죽을죄를 진 양 낯 부끄럽게 여겼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5년을 살다가 임종을 맞았다. 장례식에 온 친척들은 사위가 임종을 지켰다고 무던하다고 칭송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두 남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도장을 찍었다. 어머니 살아생전 이혼하는 꼴을 보여주는 게 불효라고 생각하고 참고 살았던 모양이다. 이제라도 부부끼리 알콩달콩 살기에는 어지간히 환부가 곪아버린 후였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두 가족을 해체시켜 버리는 혹독한 비용을 치룬 셈이다.
인간은 혈연과 결연이 가로세로 맺어진 그물망 위에 위치한 존재이다. 가족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일상을 지배한다. 어느 모임을 가든지 가족으로 인한 고민거리가 넘쳐난다. 남편 때문에 속상한 얘기, 시부모 때문에 울화 쌓이는 얘기, 병든 부모에 대한 걱정과 자식들의 진로 고민 등 처음 보는 사이라도 5분 안에 공통점을 찾아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핵가족으로 분절된 산업사회라고 해서 가족문제가 가벼워진 것 같지도 않다. 노인 부양 문제는 대가족 제도였을 때는 여러 구성원이 나눠 질 수 있었지만 핵가족화 되면서 개인이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도리를 다 할 것인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갈 것인가 간단하게 분리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을 보면 가족이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성해가는 역량을 찾아낼 수 있는가가 우리에게 엄숙한 숙제로 다가온다.
글_박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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