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철학의 별자리, 사수자리
(11.22-12.22)
첫눈이 내립니다. 뜨거운 여름도 수확의 가을도 끝난 시간, 온 대지는 하얗게 눈으로 덮입니다. 만물은 형체의 디테일을 감추고 고요해집니다. 이때는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존재를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2주가 더 지나면, 함박눈이 내립니다. 펑펑 쏟아져 내린 눈은 소복소복 하얀 솜이불이 되어 평등하고 관대하게 땅을 보온합니다. 스케일 크게 지구의 모든 땅을 뒤덮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소설(小雪, 양력 11월 22일 무렵)과 함박눈이 내리는 대설(大雪)의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 사유의 힘과 거대한 관대함을 가진 이들이 바로 사수자리입니다.
반인반마,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탐구하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는 커다란 덩치에 쾌활하고 큰 소리로 떠들고 웃고 뛰어다닙니다. 그러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치지만 밉지가 않습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유머 있고 정감이 넘칩니다. 그가 있는 곳엔 늘 사람들이 많고, 그는 호기심의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과감하게 실행합니다. 전형적인 사수자리의 모습입니다.
하반신은 말, 상반신은 인간의 몸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로스 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 사수자리는 말의 단단한 다리로 땅을 딛고, 인간의 머리로 하늘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호는 날아가는 화살 입니다. 그들의 화살은 불화살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관심을 끄는 미지의 하늘로 화살을 쏘아 올려 그곳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힙니다.
그 미지의 세계는 정글, 동굴, 화성일 수도 있고, 정치, 경제, 역사, 종교 등 학문의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곳이든 불을 밝히고 우주와 인생의 원리를 탐구하고 철학합니다. 그래서 사수자리 중에는 여행자, 탐험가, 학자, 사상가가 많습니다.
짐승과 사람, 현실과 이상, 광대와 철학자가 공존하는 사수자리는 모순되는 만큼 거대하고, 갈등하면서도 움직입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눈은 늘 하늘의 이상을 향해 있기에 내적 갈등이 심하기도 하지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을 좋아합니다.
이들은 가정을 베이스캠프로 생각하고 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길 원합니다. 반복적 일상을 답답해하고 자유를 사랑하기에, 사수자리를 울타리 안에 가둘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병이 날 것입니다. 사수자리의 집과 사무실에는 늘 여행 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주말이면 자녀들과 캠핑을 가거나 언젠가 온가족이 캠핑카로 세계여행을 하는 것을 꿈꿀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과감합니다.
사수자리는 불의 별자리라서 자기표현을 잘하고 앞장서서 리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솔직함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진실이 궁금하다면 사수자리에게 물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체면이나 권력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새 옷 사셨어요? 근데 진짜 별로네요. 안 어울려요. 하하하. 솔직하게 말하고 큰 소리로 웃기까지 합니다. 상대 얼굴이 안 좋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한참 후에야 상대가 자기 말에 기분 나빴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합니다. 사과는 하지만 자신의 의견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수자리는 눈치 없는 말실수가 많지만, 거기엔 악의가 없기에 상대방도 곧 마음이 풀어집니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합니다. 그때 사수자리의 정의로움과 용기는 빛을 발합니다.
그렇다면, 이 솔직하고 담대한 사수자리는 왜 집을 나서서 모험을 떠나는 것일까요? 이들에게 길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길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다.
사수자리의 여행과 탐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 우주와 인생의 이치에 대한 궁금함 때문입니다. 이들의 깊은 내면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쌍둥이자리도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지만, 사수자리는 56세에서 63세에 해당하는 에너지이기에 더 깊고 근원적인 경험을 원합니다.
사수자리는 전갈자리를 통과하며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태어났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낯선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길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 ‘장자못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에 아주 인색한 부자인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주를 하러 온 스님의 바랑에 쇠똥을 가득 퍼줍니다. 그것을 본 장자의 며느리가 마음이 너무 안 좋아 뒷문으로 몰래 나가 스님에게 쌀 한 바가지를 줍니다. 그러자 스님이 오늘 밤 집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고갯마루를 넘기 전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합니다. 며느리는 스님의 말을 따라 그날 밤 집을 떠납니다. 하지만 고갯마루를 넘기 전, 뒤에서 번개가 치고 집이 물에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그만 뒤돌아보고 맙니다. 그리고는 돌이 되고 맙니다.
며느리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요? 신화학자 신동흔은 말합니다. ‘뜻밖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놀라움. 지난 삶이 송두리째 허물어지는 데 따른 두려움. 버리고 떠나온 냉정함이나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 막막한 세상에 아득히 홀로 남겨진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고.
이 이야기는 길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홀로 익숙한 공간을 두고 낯선 곳으로 길을 떠난다는 것은 외롭고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길을 나설 때에는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사수자리는 그렇게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갯마루를 넘어 새롭고 낯선 세계를 만납니다.
건강한 불안을 겪어내며 얻은 삶에 대한 낙천성
길을 떠난 사수자리는 길 위에서 온갖 위험한 사건들을 겪고,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들을 겪어낼 때, 사수자리에게는 타고난 긍정성과 낙천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갈자리의 죽음을 통과하며 얻은 또 다른 선물이지요. 이들의 낙천성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긍정적 감정은 때론 자기합리화와 기만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때도 있고, 자기 성찰의 부재를 뜻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성찰이 깊고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된다. 상황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불안은 불가피한 것이다. (…) 그런 과정을 거치며 심리적 토대는 더 튼실해진다.’고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말합니다.
이처럼 건강한 불안을 겪어내며 심리적 토대를 단단하게 만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신뢰는 그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사수자리는 인간의 선함을 믿고, 우주의 순리를 압니다. 그것이 사수자리의 낙천성입니다. 그리고 이 낙천성이 솔직함을 만들고, 과감함을 만들고, 행운을 만듭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일들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수자리는 거장의 별자리이고, 구루(인도의 영적 스승)의 별자리입니다.
사수자리의 낙천성이 지나치면 속 터지는 태평스러움이 되고, 일은 크게 벌이고 뒷수습을 못하여 크게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과장, 허풍, 허세에 빠져 실속 없기도 합니다. 또한 모험과 이상만 추구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감정에 소홀할 수 있고, 매사에 디테일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활력이 넘치고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걷기 좋아하고 거친 운동도 잘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벌이거나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 경향이 있으니 간 건강에 유의하면 좋습니다.
<ET>, <인디아나 존스>, <AI> 같은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 그리고 바람의 딸 한비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두 사수자리입니다.
현실이 꽉 막힌 것 같고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왜 그런지 씩씩하게 질문을 던지며 탐구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사수 별자리처럼 쾌활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 홀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그 길엔 언제나 행운의 신이 함께 할 것입니다.
★ 그림 박희진. 별들 사이로 난 길을 동행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그림 그리면서요.
★ 글 김재의. 친구들과 함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그 여정을 글과 영화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김재의 선생님의 글은 '인문여행네트워크 여유당'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에 관심 있으신 분, 김재의 선생님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은 여유당에 들러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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