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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CDLP) 스토리

Oasis, <Definitely Maybe> - 좋은 노래는 질리지 않는다

by 북드라망 2019. 2. 1.

오아시스 - 1집 <Definitely Maybe>

좋은 노래는 질리지 않는다



이제는 '밴드'로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어쩌면 십몇년쯤 후에 재결성 음반을 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사라져버린 밴드, 오아시스다. 여기까지 쓰는데도 나는 어쩐지 아쉽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들의 마지막 내한공연(이자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온 록 콘서트)을 봤다는 점이다. 


처음, 그러니까 처음 오아시스 음반을 어디서 샀는가 하면, 백화점 안에 있는 음반 매장이었다. 요즘이야 조금 이상한 것이지만, 90년대에는 백화점에서도 음반을 파는 매장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날은 엄마가 새 겨울옷을 사준다며 큰 마음을 먹었던 날이었다. 꽤 유명한 브랜드(게스였나?)의 창고정리 '기획전'에서 생각보다 저렴한 값에 떡볶이 코트 한 벌을 구입한 후, 나는 엄마를 슬쩍 떠봤다. '나 CD 한장 사면 안 돼?' 뭐 이런 식으로. 마치 내가 돈이 있는데 그걸로 CD를 사도 되느냐는 식으로 물었지만, 그 말 앞에 '엄마 돈으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쯤은 엄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평소라면 단호하게 '있는 거 들어'라며 일축하였을 엄마였지만, 그날따라 '그래 한번 가보자'며 순순히 나의 청을 들어주는 게 아닌가. 아마도 구입한 코트가 엄마가 생각한 가격보다 한참 저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 오아시스 1집 <Definitely Maybe>를 샀다. CD를 사고, 엄마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짬뽕과 군만두를 먹으면서도 내내 CD 생각만 했다. '아, 얼마나 좋을까'. 


집에 돌아와 정성스럽게(CD케이스에 기스 안 나게) 포장을 뜯고, 1번 트랙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느낌이... 그러니까..... '어, 이게 아닌데, 비틀즈의 후계자라며? 응? 뭐야 이게? 응? 뭐냐니까!?'. 대략 이런 느낌이었달까. 




그러니까 각종 음악잡지 및 외국 음악잡지를 번역해서 돌리던 PC통신상의 게시글들에서는 분명 '브릿팝의 대표밴드'이면서 그 대단한 비틀즈와 스톤즈의 후계자격인 밴드라고 오아시스를 소개했던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반도의 소년은 그 이야기를 읽고 무엇을 상상했던가. '오 이거 <Hey jude> 같은 건가? 아니면 막, <Jumpin Jack Flash> 같은 거야?' 했던 것이다. 어쩐지 쿵짝거리고, 짠짜라 하는 식의, 그러니까 복고적인 로큰롤을 떠올렸다. 요즘이야 유튜브에서 찾아보거나, 음원사이트의 미리듣기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하면 되지만, 그때만 해도 운좋게 라디오에서 듣거나 CD를 사가지고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거기에(음반에) 들어있는 노래가 어떤지 도통 알 수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면, 오아시스는 진짜 비틀즈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밴드였나 하면 그렇지가 않다. 직관적으로 딱, 들어보면 안 비슷하다. 로큰롤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타’가 악곡의 맛을 좌우하는 그러니까 ‘양념’ 그 자체의 위치에 있는 음악이다. 그런데 비틀즈와 오아시스는 무엇보다도 바로 그 기타 사운드가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신기하게도 자꾸자꾸 듣다보면 '아 이래서 후계자구나' 싶은 요소들이 있다.(저 앨범 재킷에 노엘 갤러거가 들고 있는 기타와 조지 해리슨이 페퍼상사 앨범 작업할 때 들고 있던 기타가 비슷한 모델이기도 하고…….)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지저분한 퍼즈톤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곡 자체의 특성들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사운드적으로 이른바 '몽환적'인 톤이 비틀즈의 후기 앨범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다. 아마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무슨 이유가 있으니 그러는 것이겠지. 정리하자면 '현대적 재현'인 느낌이랄까. 




여하간에 그때는 음반 한장이 너무너무 소중했던 10대 시절이었는지라, 처음의 당황스러웠던 기분을 뒤로 하고 좋아질 때까지 계속 들었다. 계속 듣는데, 와 진짜, '어째서 이 음악은 질리지도 않는가!'. 그 정도로 좋았다. 어느 정도로 안 질리냐 하면, 처음 음반을 구입해 들었던 그때로부터 20년 동안 계속 듣고 있는데도 안 질린다. 들을 때마다 반갑고, 반가우면서도 새롭다. 간략한 리듬, 익히기 쉬운 멜로디, 그 간략과 쉬움을 밋밋하지 않게끔 만드는 강력한 사운드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음반은 '히트송의 교과서'같은 음반이었다. 오죽했으면 밴드 해체 후에 나온 노엘 갤러거의 솔로 앨범을 홍보할 때, 프로듀서였나 엔지니어였나 어쨌거나 그 솔로 앨범 스태프가 사전 인터뷰에서 '노엘은 지금 <Definitely Maybe>를 만들던 시절처럼 곡을 쓰고 있다'고 했을까. 


그리하여, 오아시스는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의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나는 약간 뻘쭘하다(했다). 이걸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그러니까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나처럼 CD를 1천장 정도, LP도 수백장쯤 가지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들이 안 듣는 거'를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누군가 '네 인생의 밴드는 뭐냐'라고 물을 때, 물어본 사람이 전혀 모르는 밴드의 이름을 대면서 '내가 이 정도야. 들어는 봤니?' 하며 우쭐거리게 되는 것이, 아니 그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이 감정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닉 혼비가 쓴 『하이 피델리티』나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보시길 바랍니다. 반대 사례로는 잭 블랙이 나오는 <스쿨 오브 락>이 있고요.) 그런데, 오아시스라니……. 오아시스의 누적 음반 판매량은 대략 4800만장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밴드'라고 하기에는 조금 남사스러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 뭐, 그냥 다들 그렇게 좋아해 버리면 '소중한 느낌'이 좀 떨어진달까……. 그래서 내 CD장에 오아시스 정규 앨범이 전부 다 있다는 걸 감추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지금은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그러나, 사진을 보자, 내가 그 4800만장 중에 저 정도, 사진에 안 나온 것까지 하면 조금 더 도왔다. 그러니까, 너무 인기가 많아서 '차별점'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오아시스를 좋아했고, 좋아하며, 좋아할 것 같다. 노엘 갤러거의 솔로음반도 두 장 가지고 있다. 노엘의 동생 리엄과 나머지 오아시스 멤버들이 만든 비디아이 앨범도 다 있다. 말하자면 '인생의 밴드'란 그런 것이다. ‘이번 건 그렇게 좋지는 않다던데’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일단 사고 보는 그런 거다.



이게 1집,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은 앨범이다. 이게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사진은 1집 활동 당시의 멤버들이다. 사진 속 인물들 중 밴드가 해체될 때까지 남아있었던 멤버는 갤러거 형제 둘이 유일하다. 뭐 각종 마약문제, 노엘 갤러거의 독재적 운영 등등이 이유였다고 하는데, 속사정이야 모를 일. 다만, 재미있는 것은 '오아시스'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사운드의 이미지는 1집부터 3집까지, 그러니까 멤버가 다 바뀌기 전까지의 사운드가 먼저 떠오른다. 내가 10대였을 때 들어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시절의 뭉근하면서도 거칠거칠했던 사운드를 내가 더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리스트인데, 굳이 이걸 찍어서 올린 이유는 강조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뭐냐하면, 어느 곡 하나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트랙이 짱짱하게 좋다는 점이다.(나만 그런가.) 특히 그 유명한 'Rock 'n' Roll Star',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꽤 재미있다. 영국에서 유명 록밴드들이 모여서 자선축구경기 같은 걸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참가신청서'의 직업란에 다른 사람들은 '뮤지션', '로커', '연예인' 뭐 이런 식으로 적었다는데, 노엘 갤러거만 '록스타'라고 적었다는, 크하 으헉 푸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꺄르륵……(이것도 나만 웃긴가…….) 어흠, 마무리 하자면, 나는 여전히 오며 가며 오아시스의 앨범들을 자주 듣는다. 편안하기도 하고,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게 들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아시스 덕분에 '좋은 노래'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좋은 노래는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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