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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나는 해시계였다! 경혈의 시작

by 북드라망 2012. 4. 20.
경혈 이야기③
ㅡ<해시계> 편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해시계를 품은 나(해품나?)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편작-들>, 양생의 도를 묻는 의사들의 수다 <황제내경>. 드디어 마지막이다. 해시계. 나는 이 마지막을 아주 황당한 주장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내 몸이 해시계다!’라는 주장이다. 또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려는 게냐고 분명 되물으실 거다. 어디 몸이 해시계인가. 시계의 눈금은 어디에 있는가. 맞다. 좀 그렇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면서 그것이 꼭 낭설이 아님을 알게 되실 거라고 믿는다. 지난 시간, 우리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배웠다. 계절과 일 년, 그리고 하루의 리듬에 따라 사는 것이 양생의 핵심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 한 번 묻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 시간을 알리는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음... 어렵다. 왜 어려운가. 아마도 시간을 너무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여기서 시간(時間)을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우선 시간(時間)이라는 말에 담긴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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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낭설이 또 시작됐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해시계일까? 내 안에 해시계가 정말 들어 있는 걸까? 그 큰 게?^^ 그런데 궁금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시간(時間)은 말 그대로 ‘때와 때의 사이’다. 무슨 뜻인가. 나도 잘 모른다.^^ 말을 좀 더 풀어 보자. 때를 가리키는 시(時)는 해 일(日)과 발 지(止) 그리고 마디 촌(寸)이 모여서 만들어진 글자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뜻밖에 멋진(?) 구절이 탄생한다. ‘해(日)가 걸어가는(止) 마디들(寸)’ 그렇다. '때'는 시(詩)적이다.(나만 그런가?^^) 중요한 것은 때가 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해가 어느 마디에 있는가,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 이것이 때를 오고 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때에 맞춰 몸도 마음도 변한다. 생각해 보시라. 해가 춘분점을 향해 가면 봄의 생명들이 솟아난다. 그들은 봄에 맞는 몸으로 태어나 봄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며 살다가 죽는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곧 ‘해가 걸어가는 마디’의 영향이라는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봄에 태어난 사람과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서로 다른 몸으로 다른 기운으로 살아간다. 요걸 운명과 연결시키면 사주팔자가 된다.(궁금하시면 『누드 글쓰기』를 탐독해 보시라.) 핵심은 간단하다. 내가 태어난 날은 나와 비슷한 몸의 리듬을 가진 만물이 펼쳐지는 때다. 이때를 잘 관찰하면 자신의 운명과 삶의 궤적을 읽어낼 수 있다. 믿으시라!^^ 결국 운명이란 ‘해가 걸어가는 마디’를 포착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고대인들에게는 이 해의 마디, 때를 포착하는 것이 생존의 문제였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보면 삼한을 설명한 대목에 이런 게 있습니다. 삼한에는 소도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도둑이 도망쳐 들어가도 따라가서 잡아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죠. 세상 사람들이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니, 당연히 무당의 통치영역일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큰 장대 끝에 북을 매달아놓았다고 했습니다. 왜 이랬을까요? 여기까지 글을 읽어 오신 분이라면 자연스레 답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해의 움직임을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해의 그림자가 어디에 오면 이 땅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그에 맞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훤히 예상되는 것입니다. 특히 농경이 시작되면 이 계절과 시간 예측은 한 부족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됩니다.

─정진명, 『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24~25쪽

1편 <편작-들>에서 우리는 의(醫)라는 글자가 외과의사의 수술가방이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 더 배우고 넘어가자. 의(醫)는 의(毉)와 동자(同字)다.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달라진 건 밑에 있는 술 유(酉)와 무당 무(巫)자다. 왜 이렇게 다른 글자를 같은 것으로 보았는가. 고대인들은 의사와 무당의 역할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당이란 신성한 힘과 교통하기 위해 무아(無我)의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육체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무당 그리고 의사는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사유하는 자였다.”* 의사-무당이 천문학자였다? 그렇다. 그들은 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을 통해서 몸과 우주, 몸과 운명을 탐사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마당에 커다란 해시계를 설치했던 거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해와 달, 별 그리고 인간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은 운명이자 생존이었다.

*김태진,『명랑인생 건강교본』, 북드라망, 15쪽

재밌는 건 간(間)이다. 간(間)은 문 문(門)과 달 월(月)이 합쳐진 글자다. 아니 버젓이 문(門) 사이에 해(日)가 들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진정하시라. 살다보면 이런 일도 생긴다. 그냥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간(間)은 간(閒)이 변해서 생겨난 글자다. 그럼 왜 모양이 바뀌었는가. 달 월(月)과 해 일(日)의 생김새가 비슷해서다. 月과 日이 비슷한 모양 때문에 혼동되어 쓰이다가 어느 순간 日로 바뀌어 버렸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글자의 운명도 계속해서 변한다.^^ 그럼 간(間)의 원래 뜻은 무엇인가. 맞다. 이것도 무척이나 시(詩)적이다.(또 나만 그런가?^^) ‘문틈 사이(門) 비치는 달빛(月). 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간(閒)에는 ‘한가하다’는 뜻이 있다. 아니 원래 한가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한(閑)은 간(閒)의 잘못된 표기다. 이건 뭘 의미하는가. 달빛이 문틈 사이로 비치는 시간엔 한가하게 몸을 쉰다는 의미일 거다.
 
그렇다. 시간(時間)은 해와 달의 궤적,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낮과 밤을 만드는 것, 이 변화가 무한히 반복된다는 의미다. 단 이것은 매번 차이를 만들며 되돌아온다. 어찌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나만) 모를 뿐! 그래서 답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때와 때의 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만나서 생기는 하루의 변화, 열두 달의 변화, 1년 365일의 변화다. 시시때때로,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변화하는 이 우주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 모든 것은 원래 중심이 있어야 좌표와 벡터가 구성된다. 중심으로서의 내가 있어야 시간은 간다. 내가 우주의 변화와 접속해서 생긴 변화들. 우리는 이것을 시간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흘렀다.'로 시작하는 소설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해 버렸음을 감지한다. 변화가 없는 시간은 흘러가지도 도래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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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단수가 아니다. 유(有)와 무(無)의 경계를 넘나들고, 관현악의 화음처럼 중첩되어 있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다. 시공간이 연출하는 이 화려한 퍼레이드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선분 위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것들을 그저 '포스트모던'의 징후로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분명 근대 이전에도 시간은 '복수'였다. 중세적 문명론은 天, 地, 人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적 시공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 『나비와 전사』, 22쪽

동양에서는 이 변화의 마디를 숫자 대신 상징으로 처리했다. 왜 그런 것인가. 변화의 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아니 변화란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쥐의 시간, 소의 시간, 호랑이의 시간, 토끼의 시간……. 쥐가 소가 되고 소가 호랑이가 되고 호랑이가 토끼가 되는 것, 그것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변화라고 생각했던 거다. 이것은 곧 하늘의 12시(時)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자리 잡았다. 해와 달을 포함한 별들의 운행을 열두 마디로 구획한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 하늘의 12시(時)를 곧바로 몸에 적용해 버렸다. 『동의보감』에는 하늘과 우리 몸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에 십이시(十二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열두 개의 경맥(經脈)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二十四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스물네 개의 수혈(兪穴)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삼백육십오 개의 마디가 있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 몸의 경혈(經穴)이 시간의 길이자 마디라고 생각한다. 이 길과 마디는 내 몸에 펼쳐져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如環無端). 우리의 몸은 우주의 길, 우주의 시간, 해와 달 그리고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 몸은 이 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주의 흐름에 반응하는 시계다. 해시계는 해와 막대 그리고 땅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이 땅에 매번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가는 존재, 나는 해시계다.

경혈(經穴)이야기

아! 먼 길을 왔다. 편작으로부터 황제내경을 거쳐 내 안의 해시계까지. 이제 본격적으로 경혈(經穴)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간다.(이제야?^^) 이걸 알아야 앞으로 나올 전문용어들(?)에 뜨악하지 않게 된다. 경혈(經穴)은 경락(經絡)과 혈(穴)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모두 많이 들어 보신 말일 거다. 경락은 다시 경맥(經脈)과 낙맥(絡脈)으로 나뉜다. 경맥이 우리 몸의 세로를 흐르는 큰 줄기라면 낙맥은 가로로 흐르면서 경맥과 경맥을 이어주는 지류다. 우리 몸에는 12개의 경맥과 8개의 기경맥이 흐른다. 그리고 15개의 낙맥이 이들을 그물처럼 잇는다.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다. 맥(脈)이란 뭘 말하는 것인가. 아마도 이것도 많이 들어 보셨을 거다. 한의원에 가면 맥(脈)을 짚는다고 하지 않는가. 맥(脈)은 줄기라는 뜻이다. “원래 맥(脈)은 피를 뜻하는 혈(血)과 시냇물이 여러 갈래로 흐르는 모양인 파(派)가 합쳐진 글자였다. 하지만 나중에 혈이 몸을 뜻하는 육(肉=月)으로 변했다. 맥은 물길처럼 여러 갈래로 퍼져서 몸을 흐르는 피를 상형한 글자다.”* 곧 맥(脈)이란 우리 몸의 피(血)와 기(氣)가 흘러 다니는 수로다. 이 수로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맥(脈)을 짚는 거다.

*류시성·손영달,『갑자서당』, 270쪽 

누차 말하지만 12개의 경맥은 하루 12시(時: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와 대응한다. 그리고 오장육부(五臟六腑)와도 동급이다. 가령 폐(肺)의 경맥은 가슴부위에서 시작해 팔을 따라가서 엄지손가락 끝에서 끝난다. 이걸 그냥 ‘폐(肺)다’라고 이야기한다. 폐가 아프면 당연히 이 경맥도 아프고 경맥이 다치면 폐도 다친다. 맞다. 그거 그냥 ‘폐(肺)다.’^^ 경맥이 오장육부와 같다는 것을 까먹을까봐(?) 이름에도 장부를 넣어 놨다. 어차피 알고 넘어가야 할 거니까 지루하시겠지만 음미해 보시라. 아니 소리 내서 읽으면 더 좋다. 얘네들,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거기에 반응한다. 신심(信心)!^^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


그리고 다시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으로 이어진다. 이 길로 우리 몸의 기(氣)는 하루에 50번을 돈다. 그러니까 계산을 해보면 60분×24시간=1,440분, 이걸 50으로 나누면 28.8분이 나온다. 맞다. 이게 침을 맞고 20~30분 동안 누워 있는 이유다. 침의 자극이 온몸을 도는 기(氣)에 영향을 줘서 몸의 세팅을 다르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거다. 한 가지 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벌써 알아채셨을 거다. ‘경맥이 손과 발을 왔다 갔다 하는구나.’ 그렇다. 경맥은 손발에서 시작하거나 끝난다. 그래서 손과 발을 자주 주물러 주는 것만으로 기(氣)의 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 경맥은 손발로 갈수록 그 폭이 좁아지고 몸에 가까워질수록 넓어진다. 쉽게 물길을 떠올리시면 된다. 샘에서 시작한 물이 시내, 하천, 강, 바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샘은 손발의 끝에 있고 바다는 우리 몸통에 있다. 이 바다가 오장육부(五臟六腑)다.

(穴)은 구멍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氣)가 모여 있는 구멍이다. 실제로 혈에 침을 놓아 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혈에 제대로 들어간 침은 기(氣)가 쑥(!) 하고 빨아들인다. 그래서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그냥 좀 뻐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병이 진행되신 분들은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그러나 이 구멍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무지 아프다. 아니 몸이 거부한다. 우리 몸에는 이런 구멍들(穴)이 365개나 있다. 언제 이걸 다 찾았냐고? 이미 『황제내경』에 대부분 언급되어 있다. 그러니까 2000년 전쯤에?^^ 그래서 편작이 투시능력을 가지고 이 혈자리를 다 찾아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거다. 앞으로 우리는 이 가운데 중요한 혈자리 70개 정도를 먼저 공부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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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서당의 다음 시리즈는 수태음폐경의 오수혈이다. 수태음폐경은 중부혈에서 시작해 소상혈에서 끝난다. 폐는 우리 몸에서 가장 활발한 교환이 일어나는 시장이다. 그래서 재물과 관련된 일엔 폐와 엄지손가락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궁금하신가. 다음 주에 이어질 소상편을 기대하시라^^

자세한 내용들은 구체적인 혈자리를 공부해 가면서 알아가도록 하자. 여기다 다 쓴다고 우리가 단번에 알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들의 무식미(無識美)을 사랑하자!^^ 그래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혈자리를 공부하는 우리도 그러했다. 몰라서 부끄러운 게 아니라 몰라서 배우고 싶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침을 꽂아 가며 글을 쓰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글이 침이 되어 우리를 치유해 줄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경혈(經穴)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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