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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혈자리의 탄생! 떠돌이 의사 편작 이야기

by 북드라망 2012. 4. 6.
경혈 이야기①
ㅡ<편작> 편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떠돌이 의사, 편작(扁鵲)

옛날이야기부터 하자. 중국의 춘추전국시대(B.C 8~3세기), 발해군에는 진월인(秦越人)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름부터가 문제적인(이름의 뜻이 ‘사람을 넘어서다’이다) 이 인물의 직업은 객사(客舍)의 사장(舍長)이다. 요즘으로 치면 호텔의 총지배인쯤 되는 자리다. 객사엔 10년도 넘게 ‘죽돌이’로 살아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장상군이라는 사람으로 월인과는 남몰래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러브라인?)

그러던 어느 날, 장상군이 월인에게 작업을 걸어온다. “비전(秘傳)의 의술(醫術)을 알고 있는데 내 이미 나이 들어 그대에게 전해주려 하네.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게.” 냄새가 솔솔 난다. 그렇다. 다단계다. 원래 비전(秘傳)들이란 다단계 점조직으로만 내려오는 법이 아닌가. 장상군은 본격적으로 월인에게 제품들을 설명한다.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깨끗한 이슬이나 빗물에 타서 마신 후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네.” 복용법도 까다롭다. 여기다 덤으로 소장하고 있던 의서들도 월인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도 그는 인간이 아닌 듯하였다.” 그런데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복용한 지 30일째 되던 날. 월인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갑자기 담벼락 너머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투시능력의 발현! 월인은 이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완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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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째지 않고도 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투시능력(의술)! 이 호텔 지배인이 바로 그 유명한 까치선생, '편작'이다,

이야기는 『사기』 <편작창공열전>에 등장한다. 그렇다. 다단계 도인(道人)에게 낚여 업종을 변경해야 했던 진월인, 그가 바로 전설적인 명의 편작(扁鵲)이다. 편작(扁鵲)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만큼이나 문제적이다. 풀이하자면 ‘까치가 날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 곰곰이 생각해보자. 까치하면 뭐가 떠오르나. 예전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들 하지 않았나. 맞다. 편작이라는 이름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병을 치료해주는 반갑고 고마운 의사, 그가 편작이었던 거다.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의사가 떠돌이였나? 그렇다. 이 시대의 의사는 천하를 떠돌았다. 지금처럼 병원에 근엄한 포즈로 앉아 환자-손님을 받는 시대와는 달랐다. 아! 일정한 곳에 머물던 의사도 있긴 했다. 그들은 궁정의로 임금의 건강을 책임지는 정규직이었다. 이들 빼고는 대부분이 비정규직 떠돌이 의사였다. 일명 길 위의 의사들!

그런데 이 떠돌이 의사 편작이 동양의학의 시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특히 경혈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사기』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편작이 투시능력으로 우리 몸 안의 경락과 혈자리를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뭐 이런 사람들 꼭 있다.^^) 편작의 신화는 동양의학에서 너무나도 보편적인 진단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망진(望診)이다. 망진은 겉을 보면 안의 상태를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핵심은 안과 밖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거다. 얼굴로 보자면 눈은 간(肝)이요, 귀는 신(腎)이요, 코는 폐(肺)다.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의원에 가면 한의사들이 빤히 쳐다본다. 망진하고 있는 거다. 그 다음에는 이것저것 묻고 듣는다. 마지막으로 손목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대보고는 확신한 듯이 병에 대해 말해준다. 요게 동양의학의 진단법, 망진(望診)-문진(聞診)-문진(問診)-맥진(脈診)이다. 순서로 보자면 망진(望診)이 으뜸이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척 안다는 것이니 맥 따위 짚어서 아는 의사와 비교나 되겠나.

<편작창공열전>엔 요런 대목이 나온다. 편작이 “병의 원인이 있는 부위를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맥을 짚어서 아는 양 하였다.” 왜?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까! 당시 사람들도 몸에 손을 대야 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다. 참 요새랑 별반 다를 게 없다. 기계로 찍고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청진기를 들이대야 ‘아~ 내가 치료받고 있어~’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그런 것 없이 그냥 보기만 해도 다 알면 사람들이 피한다. 사술(邪術)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요 대목이 중요하다. 집중하시라!^^

편작-들, 칼을 내려놓다

<편작창공열전>을 좀 더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편작이 괵나라에 갔을 때 ‘때 마침’ (마치 짠 것처럼!) 태자가 죽는다. 편작은 곧바로 궁으로 달려간다. 거기서 태자의 스승으로 있던 중서자를 만나는데 편작은 그에게 태자의 상태를 자세히 묻는다. 중서자 또한 자신의 의학지식을 총동원해서 매우 자세~하게 답해준다. “정기(正氣)가 사기(邪氣)를 누르지 못하여 그 사기가 체내에 쌓여 발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陽)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음(陰)의 움직임이 급해져 돌연히 의식을 잃고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자의 병은... 음... 나도 잘 모른다.^^ 정기가 뭐고 사기가 뭔지, 거기다 음양이 뭐 어쩌고 저쨌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중서자 싫다~ 증말!) 간단히 말하면 태자의 몸을 흘러 다니는 기(氣)가 막혀서 죽었다는 얘기다. 이걸 전문용어로 불통즉통(不通則痛)이라고 한다. 통하지 않으면 마이 아파~. 그런데 편작은 이 이야기만 듣고는(聞診) 태자를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아니 보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칠 수 있다니 이 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나. 중서자는 곧바로 편작을 잘근잘근 씹어주신다.

선생은 함부로 말씀하시면 아니됩니다. 어찌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하시는지요? 내 듣자니 옛날 유부라는 의원이 있었다는데, 그 의원은 병을 고치는데 탕액, 예쇄, 참석, 교인, 안올, 독위를 사용하지 않고 옷을 풀어헤쳐 한 번 진찰해보는 것으로 병의 징후를 보고, 오장에 있는 수혈의 모양에 따라, 피를 가르고 살을 열어 막힌 맥을 통하게 하고 끊어진 힘줄을 잇고, 척수와 뇌수를 누르고 고황과 횡격막을 바로 하고, 장과 위를 씻어내고 오장을 씻어내어 정기를 다스리고 신체를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러할 수 있다면 태자께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겠지요. 그렇지도 못하면서 태자를 다시 살려내려 한다면, 막 웃기 시작한 갓난아기에게조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기열전』 <편작창공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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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까놓고 ‘넌 안 돼~’라는 멘트다. 그런데 중서자의 말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바로 유부라는 전설적인 의사가 수술전문의였다는 거다. 그는 과감하게도 전신성형을 넘어서 내장성형(?)의 신-지평을 연다. 내장을 꺼내서 씻고 다시 넣어서 꿰매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중서자가 유부에 대해서 핏대를 세워가며 말하는 건 대체 뭔 이유 때문일까.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답이 쪼끔 보인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 서로 치고받고 죽이기에 무지 바빴던 시대란 말이다. 전쟁이 빈번해지면 당근 환자들이 늘어난다. 특히 수술을 필요로 하는 외과환자들이 많아질 터이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외과의사들이 출현하게 되고 외과수술이 발전한다. 실제로 서양에서도 외과의사의 출현은 전쟁과 맞닿아 있다. (궁금하시면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을 탐독해보시라.^^)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에 전쟁이 빈번해지자 화타 같은 수술전문의가 등장한 것도 이런 정황하고 무관하지 않다. 재밌는 건 의(醫)라는 글자가 이 외과의사의 가방이라는 것이다. 의(醫)는 상자 방(匚), 화살 시(矢), 몽둥이 수(殳), 술 유(酉)가 합쳐진 글자다. 화살처럼 뾰족한 메스(矢), 손(又)에 쥐고 사용하던 수술도구(几), 마취제로 쓰이던 술(酉) 등을 상자(匚)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당시의 의사(醫師)였던 것이다. 이때 의사소리 좀 들으려면 수술 좀 해야 했다는 거다.

그런데 편작은 이런 수술도구를 버린 의사였다. 그는 중서자를 향해 말한다. “그대가 말하는 의술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서 하늘을 보고 좁은 틈으로 무늬를 보는 듯한 것입니다.” 수술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치료법이란다. 그럼 그가 주로 이용했던 건? 그렇다. 우리가 공부하게 될 침과 뜸이다. 잠시 편작이 괵나라 태자를 살릴 때의 광경을 음미해보자.

편작은 제자인 자양에게 침을 지석에 갈게 하여 이것으로 몸 표면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한참 지나자 태자가 소생하였다. 그러자 자표에게 오분의 위와 팔감의 약제를 섞어서 달인 다음 이것을 양 겨드랑이 아래에 번갈아 붙이게 하였다.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 다시 음과 양을 조절하여 탕약을 스무 날 동안 마시게 하자 태자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기열전』 <편작창공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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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이 침을 찌른 곳이 어디냐면 백회혈이다. 백회혈은 정수리 중앙에 있는 혈자리로 우리 몸의 경맥이 모두 집중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다 모인다는 뜻으로 백회(百會)라고 붙였다. 편작은 기가 흘러 다니는 경맥들의 ‘만남의 광장’ 백회에 침을 놔서 기가 통하도록 만든다. 태자가 쓰러진 원인이 기(氣)가 막혀서였으니까. 통즉불통(通則不痛)! 통하면 아프지 않게 되노라!^^ 그렇다고 건강한데 더 건강해지겠다고 백회를 마구 찌르면, 죽는다. 아무튼 편작은 침으로 기를 통하게 하고 약재를 섞은 곤약으로 병을 고친다. 그런데 이 시술의 핵심은 우리 몸 안에 있는 기(氣)다. 기를 다스려서 치료하는 게 편작의술의 비법이었던 거다.

그럼 이게 기존의 의사들하고 뭐가 다르냐고? 달라도 한참 다르다. 기존의 의사들은 몸을 열어보고 직접 병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수술로 도려낸다. 요즘도 병원에 가면 대부분 이렇게 한다. 원인을 모를 때는 원인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째서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걸 이른바 ‘전략적 개복술(開腹術)’이라 한다. 모르니까 일단 까보자는 거다. 그런데 이런 수술 없이 기(氣)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만으로 뭐든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거. 이게 얼마나 다른가. 더구나 병이 기(氣)의 부조화에서 생긴다는 것과 특정 병원균에 의해서 생긴다는 것의 차이는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이건 몸과 병에 대한 인식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사유이자 치료법이다.

기억하시는가. 의사가 되기 전 편작의 직업이 객사(客舍)의 사장(舍長)이었다는 거. 객사(客舍)는 말 그대로 ‘객(客)이 머물다 가는 집(舍)’이다. 편작은 이 객(客)들이 머무는 곳(舍)을 관리하는 우두머리(長)다. 병은 우리 몸(舍)에 왔다가 가고 다시 찾아오는 객(客)이다. 그것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리저리 흘러 다닐 뿐! 이 흐름에 개입하는 것, 병의 원인이자 해답인 기(氣)를 관리하는 것, 이것의 핵심에 경락과 혈자리가 자리 잡고 있다. 편작은 이 둘을 통해 기존 의학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의사다. 그의 사후 2500년, 동양에서는 여전히 그의 시선으로 몸과 병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다. <편작창공열전>에 등장하는 편작의 수명이 너~무 길다는 거다.^^ 양생법의 달인, 의술의 최고봉이어서였을까? 아니다. 편작(扁鵲)은 과거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동쪽 지역에서는 훌륭한 의사를 편작이라고 불렀다.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던 일군의 의사그룹이 편작(扁鵲)이었다는 말이다. 편작-들, 이들은 주류의 의학적 담론 밖을 떠돌던 소수의학의 대가들이다. 그리고 이 소수의학들은 이후 『황제내경』을 통해서 종합되고 동양의학의 정수로 자리 잡는다. 『황제내경』의 핵심에 경락과 혈자리가 있다. 이게 오죽 중요했으면 <영추(靈樞)>라는 침경(針經)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영추(靈樞)는 ‘신령스러운 막대기’라는 뜻으로 원래는 해시계의 바늘이었다고 한다. 편작-들, 『황제내경』, 해시계. 이제 이들을 길잡이 삼아 경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To be continue! (2편을 기대하시라~^^)


※ 혈맹들의 경혈가(經穴歌)
아! 바야흐로 몸맹들의 시대다. ‘몸짱들이 넘쳐나고 쭉쭉빵빵 몸매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누구나 건강에 대해서 말하는 이 시대에 어디 그런 소릴 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보자. ‘너 니 몸에 대해서 좀 아니?’ 음... 뻘쭘하다. 그렇다. 사실 우리, 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맨날 ‘몸매타령, 건강타령’ 하는 몸맹들인 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의 족속이다.(그렇다고 오해하진 말자. 나도 몸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거지 내가 몸짱, 몸매, 건강의 화신이란 소리는 아니니까!^^)
그럼 이 시점에서 대체 뭘 해야 하나. 맞다. 몸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면 된다. 몸에 대한 앎이 의사들의 전유물일 수 없다고 믿는다면 책을 펼치면 된다. 그렇게 우리도 공부한다. 몸,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혈자리서당>은 우리 몸에 있는 365개의 혈자리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그동안 여러 혈자리 책들을 봐 왔지만 하나같이 너무 전문적이다. 일반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시 쓴다. 혈자리-리라이팅! 혈자리에 대해서 무지랭이인, 이른바 혈맹들의 경혈가(經穴歌). 자~ 이제부터 가락을 좀 타 보실까나~!^^
혈자리서당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많이 읽고 많이 만져(?)주세요~ 혈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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