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년을 견뎌낸, 『논어』라는 책
위대한 스승, 남겨진 제자들
화제를 좀 돌려보죠. 이번엔 『논어』라는 책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논어』는, 제가 따로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죠. 사람은 공자, 책은 논어. 그렇죠? 아닌 게 아니라 우리도 다 예전에 한두 번쯤 『논어』 읽고, 암송하고 뭐 그러셨잖아요?(웃음) 아닌가요? 예, 농답입니다. 아닌 건 아닌 거죠. 설혹 읽어보셨더라도 지금은 그냥 모르는 체 해주실 타이밍이고요. 그래야 저 같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겁니다. 어쨌든 강의 시작하고 조금 전까지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았던 사람 공자’ 얘길 했다면, 이제부턴 ‘누구나 다 읽어본 것 같은 책 『논어』’ 입니다.
우선 『논어』라는 제목을 좀 보겠습니다. 보통 편찬하다라는 의미의 ‘논(論)’, 말씀 ‘어(語)’라고 풉니다. 선생님의 말씀들을 논찬했다는 뜻이죠. 논찬이라는 말은 편찬한다는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논어』는 제목에서 이미 공자라는 스승의 말씀들을 편집한 책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 생각보다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기회를 보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공자의 말씀들을 편집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인 겁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 공자님이 돌아가신 뒤에 어찌어찌 여차여차하게 스승님의 말씀들을 모아낸 겁니다. 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스승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한데 보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흩어져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모아 정본을 전하자’ 등등.
그런데 여기에서 변수가 생깁니다. 공자의 말을 모아 편집하고 싶었던 그 제자들이 누구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도 말이 나왔지만 공자는 73세(혹은 74세)를 사셨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만, 전염병이나 기근, 유아 사망 가능성 등이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던 시대인지라 그 속에서 70수를 넘게 누렸다는 것은 아마도 평균보다는 꽤 많이 장수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달리 말하면 이 말은 공자님에게 제자들이 아주 많았다는 말과 통합니다. 사마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공자님은 특히 제자들이 많았던 스승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특히 많았던 스승, 공자님
공자님은 삼십 대에 이미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스승, 제자 이런 말들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그냥 당연히 훌륭한 스승을 찾아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어떤 책에선가 보니 이 ‘스승, 제자’라는 관계를 만들고 스승이라는 지위와 권위가 갖추어진 게 공자에 의해서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제자들이라고는 해도 지금처럼 제자와 스승의 관계가 미리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저 따르는 무리가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스승-제자라는 관계적 모델들이 고민되고 또 창안되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 자로 같은 경우는 나이가 아홉 살밖에 어리지 않은 거의 친구(형제) 같은 제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훗날 공자의 적통이라고 보통 소개되는 증자는 무려 46살이 어렸습니다. 공자와는 말할 것도 없고, 자로와도 거의 두 세대 차이였죠. 이런 제자들이 무리로써 계속 이어졌던 겁니다. 어떻게? 공자와 더불어 일종의 공동체적 생활 및 관계로서 말이죠. 그 속에서 강학도 이루어지고, 기타 생활적인 문제들을 상의하기도 했는데, 『논어』란 결국 그러한 생활상·강학상의 말씀들을 제자 그룹들이 편집, 편찬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선후배들이 자연스럽게 겹치는 겁니다. 공자님이 오래 사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계속 생깁니다. 모든 제자가 함께 생활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말이 삼천 제자, 칠십 제자고 실제로는 오고 가고 했겠죠. 등록금 한 번 내 제자도 있을 테고, 먼 지역에서 우연히 제자가 된 이도 있었을 겁니다. 또 그 제자들도 어느 순간에는 제자들을 갖게 됩니다. 『논어』 ‘자장’편에 보면 자하의 제자들이 자장에게 ‘친구 사귀는 도리’에 관해 묻는 대목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공자의 제자들끼리 묘한 견제와 경재이 있었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공자의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다룰 텐데 그때 다시 설명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또 공자 말년에 이르면 공자보다 먼저 죽는 제자들이 생깁니다. 어떤 제자들은 세력이 커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제자들끼리 알력이랄까, 뭐 여하튼 이견들이 충분히 생길 만 해집니다. 그나마 스승님이 살아계실 때는 문제가 크지 않았겠죠. 하지만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엔 사정이 다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제자들끼리도 서로 잘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각기 자기 지역에서 공자의 말을 전하는 스승이 되기도 했을 겁니다. 나라도 다 다르고, 활약하는 지역도 다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 모여. 우리가 이렇게 흩어져서는 안 되지. 스승님 말씀 한 번 모으자.” 그렇게 결집을 하게 된 겁니다. 부처님 말씀 모으는 것처럼요.
말씀들을 모으다
자, 그럼 이 사람들이 모여서 뭘 했는가. 뭘 했겠어요? 당연히 자신들이 전수받은 스승님의 말씀들을 비교해 모아본 거죠. 그런데 이게 애초에 책에 기록으로 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전하는 과정에서 묘하게 달라졌습니다. 듣고 기억하는 방식에서 내용에도 미묘한 차이가 생겼던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예 자신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스승님의 말씀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당연히도 스승님께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둘이 있을 때, 셋이 있을 때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들인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수업 시간에 공식적으로 과목별 강의를 하신 걸 노트 필기한 게 아니므로 단둘이 있는 데서 자신만 아는 어떤 상황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한 마디로 ‘내(우리 그룹)가 들은 우리 스승님의 말씀들’이라는 거죠.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여시아문, 부처님 말씀처럼. 근데 한쪽에서 “무슨 소리! 난 절대로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다! 내가 듣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격렬하게 싸우는 겁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 스승님의 말씀을 제대로 된 기록으로 남기는 역사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또한 자신들 그룹의 정통성이랄까 그런 차원에서도 이 편찬 작업에는 쉽게 양보할 게 아닌 겁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재대로 기록하기 위한 제자들의 싸움
여담입니다만, 이게 다 공자님의 남다른 능력 때문입니다. 오래 사셨고, 제자들이 많았기 때문인 거죠.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입니다만, 현실은 아마도 꽤 치열했을 거예요. 제자의 제자들끼리 서로 엄정하게 스승님 말씀을 놓고 싸웠을 거란 말입니다. 현재 전하는 『논어』가 대략 15,000여자 정도입니다. 이 정도 부피는 절대 많은 양이 아닙니다. 이른 시기부터 제자들이 있었고, 그냥 말을 하면 그게 다 가르침인 건데, 그리고 직접 저술하는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알아서 모아놓은 건데 말이죠. 참고로 맹자는 공자와 거의 비슷한 일생을 사는데, 20여 년 천하유력 한 후 자기 고향 땅에 돌아와서 제자인 만장과 만장의 제자 무리와 함께 맹자 일곱 책을 저술했다고 되어 있어요. 이 맹자의 저술이 35,000여 자(字)입니다. 공자는 훨씬 더 많은 제자가 있었고 제자들이 썼지만 남아 있는 것은 겨우 1만 5천 자이고요. 이건 뭘 얘기하는가? 제자들 사이에서 『논어』라고 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었을 것이다, 라는 거죠. 뭐 직접적으로 어떻게 충돌(?)하고 선별되었는가에 대한 기록은 물론 없습니다만, 이렇게 한 번 추측해보는 겁니다.
왜? 그 이유는 그 책이 바로 『논어』이기 때문입니다. 『논어』는 공자님이 직접 저술하지도 않았고, 공자님 사후에 공자님도 모르게 만들어진 책이지만, 그 안에 있는 말들에 대해 우리는 적어도 공자님 말씀이라는 점에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의심을 하지 않는 이유는 거꾸로 이렇게 엄격한 선별 · 선정 과정을 거쳐서 남고 남은 최소한의 말씀들이라는 과정의 추론이 가능했던 결과인 거죠. 최소한 이렇게 치열하게 스승님 말씀을 필터링했으니, 적어도 여기 실린 말씀 정도는 공자님 말씀이란 걸 의심하지 않는 거죠. 사실 그렇잖아요. 공자님이 쓴 것도 아닌데 이걸 어떻게 믿어. 어떤 제자들은 공자님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공자 제자의 제자들이었을 건데요. 그러니까 『논어』는 다 같은 공문(孔門)이라고는 해도 서로 다른 이 제자 무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구심점도 되는 거죠.
말씀들을 편찬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어찌 됐건 스승이 전하는 이 말씀들을 서로 깎고 닦고 조이고 해서 만들어 낸 책이 현재 『논어』라는 책으로 전하는 오백여 문구들인 겁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자 이걸 다시 또 나눕니다. 이 구절들을 어떻게 편찬하느냐. 즉 어떻게 범주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산 넘어 산이죠. 『논어』는 현재 스무 개의 편(篇;챕터)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학이」편, 「위정」편, 「팔일」, 「이인」, 「공야장」, 「술이」 등등등 해서 맨 마지막 「요왈」편까지 스무 개입니다. 전체가 대략 오백 문구라고 했으니 한 편당 스물다섯 개 정도씩 들어가면 되는 거죠. 물론 각 편마다 꼭 스물다섯 개 씩 들어가 있는 건 아니고, 문장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등등 대략 이삼십 개 정도씩 나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논어』는 성인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책에 있는 구절들을 읽고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하고 그 책으로 공부를 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 많은 공력, 논쟁, 이런 것들을 합니다. 『논어』의 제일 첫 번째 편이 「학이」입니다. 「학이」(學而).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편에는 배움(學)에 관한 얘기인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이」편을 보니 배움에 관한 주옥같은 구절들이 많아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죠? ‘아, 이 편은 제자들에게 배움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을 중심으로 묶어놓은 거구나’ 라고요. 그다음 편을 보니까 「위정(爲政)」. 정치를 행하다라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정치에 관한 얘기들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논어』는 편명들이 주제화되어 있는 거구나.
공자님의 말씀을 스무 개의 편<篇>으로 나누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전혀 엉뚱한 대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섯 번째 편인 「공야장」편과 열다섯 번째 편인 「위령공」편. 이 두 편은 『논어』 전체 스무 개 편 중에서 세 글자 편명을 가진 두 편입니다. 아 참 그 얘기를 안 했네요. 『논어』의 편명은 대부분 두 글자로 되어 있고, 두 편만 세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편명들이 무슨 이유가 있는가, 지금 그런 맥락에서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제자들이 저 정도로 엄밀하고 격정적이게 스승님 말씀들을 정성을 달해 편집했는데 그 편집본 결과에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하는 거죠.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논어』의 편명은 각 편의 첫 번째 문구 시작하는 두 글자 내지 세 글자일 뿐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학이, 위정 등을 보고 혹시 고도로 편집된 텍스트인가 싶다가도, 「공야장」 같은 편을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제목이란 걸 알게 됩니다. 공야장은 사람 이름이라서 두 글자로 자를 수가 없었던 거고, 그나마 그 첫 번째 구절에 등장하는 것 말고는 『논어』 전체에서도 등장하는 경우가 없어요. 그럼 결국 『논어』 각 편들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뿐일까요? 이게 참 묘하고 묘합니다. 이천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뎠다는 게 결코 만만한 문제는 아닌 겁니다.
문리스 (남산 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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