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공자, 누구나 아는 <논어>
만인을 위한 교훈이 아니라 나에게 건네는 말!
맹자, 박지원, 왕양명의 공통점은?
맹자는 자신을 공자 학맥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증자의 제자이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아니 정확하게는 자사의 문인에게 배웠습니다. 따지고 들자면 학력 세탁 논란이 좀 있을 수도 있어요. <공자 세가>에 보면 공자의 문도가 삼천 명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는 아마 등록금 정도 한 번 내었을 정도의 인연들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삼천 명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맹자는 사실 공자의 제자(증자)의 제자(자사)의 제자(자사의 문인)의 제자라는 겁니다. 이쯤 되면 학력 세탁.... 그래도 맹자님이니 아니겠죠?(웃음). 이 맹자의 일생도 파란만장합니다. 대략 80수 이상을 누렸는데, 존경하는 스승 공자처럼 맹자도 20여 년간 천하를 유랑했어요. 더구나 전쟁의 시대(戰國時代)입니다. 그런데 전쟁과 패권 경쟁으로 날이 설대로 서 있는 제후들 앞에서 할 말 다하는 대장부가 맹자입니다. 맹자 얘기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핵심은 맹자 역시 건강했고, 기개가 높았으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맹자는 공자 DNA 적통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연암 박지원. 이 분도 풍채가 남달랐어요. 공자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보다 크고 기백이 좋았습니다. 특히 주량과 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란 어른이 써놓은 아버지 연암에 관한 기록(<과정록>)에는 연암이 아침부터 손님을 맞아 계속 술로 접대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암튼 아침 점심 저녁 무렵 각각의 손님을 완전히 취할 만큼 응대해서 보내는데, 하루 내 마신 술잔 수가 50여 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마흔아홉 잔이었던가, 쉰여섯 잔이었던가 그랬어요. 또 한 번은 친한 후배이자 함께 어울렸던 무사 백동수가 술을 먹고 살짝 주사를 부렸는데, 연암께 크게 꾸지람을 듣고는 다시는 주사를 부리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어요. 물론 이 말은 연암이 백동수를 주먹으로 혼내줬다는 말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엄하고 기백이 남달랐다는 겁니다. 그 결정타는 역시 <열하일기>인데, 장장 반년 가까운 일정동안 연암은 아주 건강하게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그 어마어마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단순히 일정을 소화하는 게 아니라 거의 매일 밤 해당 지역 사람들과의 교유를 위해 밤 문화를 만들어 내시지요. 필담과 술. 가히 경이적인 체력입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는 건 보통 일이고, 무박 사흘의 초강력 스피디 행군도 버텨내죠. 박지원은 그런 강철 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하를 주유했던 이들의 공통점은?
또 한 명, 제가 좋아하는 중국 명나라의 최고 학자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명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왕양명을 배출한 공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 왕양명이라는 분도 대단히 흥미로운 분인데, 그 이유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이 분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학자=유학자 이미지를 단숨에 깨버리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왕양명은 사대부 출신 문인이고 양명학의 창시자이니 대단한 학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왕양명은 스물여덟 살에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관료로 나아간 이후, 초반 몇 해를 제외하고는 잠깐 휴직했다가 삼십 대 중반에 복직해서는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을 전쟁터에서 야전 사령관으로 살아갑니다. 각종 민란과 내란 등에 투입된 군인이었던 겁니다. 전쟁터의 유학자, 칼을 든 유학자, 이런 말들이 왕양명에게는 은유나 수사가 아닙니다. 양명학은 철저하게 야전에서 꽃피워진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다하고 지리한 말이 없고 굉장히 간명하고 직관적으로 정수리를 내려치죠. 양명학에 제대로 맞으면 아주 아찔합니다. 어쨌든 핵심은 왕양명이 평생을 말 타고 중국 전역을 누빈 군인-사령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유학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출발하고 또 아주 멋지게 꽃을 피운 학문이었던 것입니다.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환관 사마천
또 얘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데, 어쨌든 말 나온 김에 사마천 얘기까지 마저 합시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사마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게 떠오릅니까? 아무것도 안 떠오르신다고요? 네, 그렇군요.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예전에 사마천, 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사기>의 저자, 그리고 궁형 당한 사람. 궁형? 환관 내시? 뭐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고개를 끄덕이시는군요. 최근에는 사극이나 영화 등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는 멋진 환관들이 종종 등장합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환관들은 다 가느다란 목소리에 여성 같은 홀쭉한 몸을 가진 약해 보이는 남성들이었어요. 실제로 환관은 남성이 제거된 사람들이었으니 신체가 여성화됩니다. 인위적으로 여성화되는 거지요. 그런데 사마천이 여차여차해서 궁형을 당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죠. 무려 오십이만육천오백(526,500) 자입니다. (잠시 침묵). 제가 어디 가서 사마천 얘길 하게 되면 이 얘길 하는데요, 그때마다 반응이 꼭 이렇습니다. 도무지 가늠이 안 되거든요. 아까 공자의 키가 9척 6촌이었던 것처럼요. 참고로 유학의 사서라고 일컬어지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씀드릴게요. <논어>가 대략 15,000여 자, <맹자> 35,000여 자, <대학> 1,750여 자, <중용> 2,350여 자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사서 다 합쳐도 <사기>의 10의 1인 거죠. <장자>가 좀 많은데 대략 100,000여 자, <노자>(도덕경)는 5,000여 자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사기>를 무려 526,500자! 내용상 당시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후세를 기다려야 했는데, 혹시 몰라 2부씩 작성했다고 하거든요. 이제 좀 놀라시는군요.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마천의 팔뚝 힘이 대단하겠다.(웃음) 실제로 사마천은 이십 대 초반에 수년에 걸쳐 우임금의 전설이 있는 땅에서부터 고대 역사의 현장들을 직접 답사했고, 이후 관료가 되어서도 당시 한 나라 전역을 종횡으로 휘젓고 다닌 씩씩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팔뚝 힘으로부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동아시아 유학, 이거 웬만한 학문이 아니고요, 유학자들, 이분들 웬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학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골방 샌님 학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훗날 이 학문이 문명의 권위가 되고, 이 사람들이 국가의 기득권 세력이 되고, 귀족 관료 세력이 되어 보수화되고 연성화 되는 건 역사적 문제일 뿐입니다. 특히 중국 남송대 이후, 즉 남송이 원나라를 거치는 이 시기가 주자학의 시대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바로 이 남송대 유학을 유학의 표준으로 삼았던 겁니다. 공자 맹자 등으로부터 유래하는 유학의 부정할 수 없는 핵심 줄기에는 인류의 원초적 생명성이랄까, 여하튼 그러한 아주 생동감 넘치고 에너제틱한 기운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현장에서 현장의 언어로 길어 올려진 삶의 지혜인 거죠. 저는 그러한 냄새가 나는 유학을 사랑합니다.
‘누구나’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한
<논어> 속에는 의외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공자님이 등장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어르신인 것처럼요. 훌륭한 인품을 갖췄고, 지성인의 풍모도 물론 있지만, 때론 까칠하고, 공격적이고, 화도 잘 내고, 삐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아주 유머러스한 모습 등등 제가 만난 <논어> 속 공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자만의 에너지가 있죠. 저는 그 에너지를 만나는 게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방식으로 <논어>의 구절 한두 개를 더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부터 색안경을 좀 벗고 공자와 <논어>를 만날 필요가 있어요. 분명 대화 흐름상 공자님이 삐친 게 분명한데, 그걸 굳이 아니라고 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분명 대놓고 제자들을 편애하는 게 뻔한데, 그걸 굳이 멋진 말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아! 예를 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게 또 주객이 조금만 전도되면 공자님이 금세 우스워집니다.(웃음)
<논어> 속에서 리얼한 공자님을 만나다.
요컨대 <논어>는 이러저러한 사람살이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그저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하나의 현장입니다. 이걸 굳이 공자님이 공자님의 제자들은 그랬을 리가 없다, 고 미리 쉴드치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자들끼리 서로 다틀 수도 있는 것 아녜요? 스승님이 특정한 친구만 예뻐하는데 질투도 생기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논어> 안에 보이는 구절들을 모범적이고 이상적이고 이렇게만 생각을 해서, 굉장히 도덕적 교훈이 있는 글들로만 자꾸 읽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어집니다. 맥락과 상황과 캐릭터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그냥 글귀의 문장의 내용만 남아서 전해지는 <논어>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요. 그냥 착하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책인 거죠. 저는 그런 고전을 고속도로 화장실 고전이라고 해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보면, 여자 화장실은 모르겠어요, 남자 화장실에는 종종 일보는 곳에 고전 명구들이 적혀 있곤 하거든요. 한참 일 보는데 눈높이에 쓰여 있는 거죠. “네가 원치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 그럴 때면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맥락도 없이 그저 좋은 문장이니 한 번 읽고 가라, 이런 뜻일 텐데, 그런 건 그냥 경구예요. 멋진 말들이지만 죽은 말들이죠. 우리는 이제까지 <논어>를 <맹자>를 그런 식으로 읽어온 거 아닐까요? 우리가 특정한 도덕적 방식으로 <논어>를 읽는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는 명언 명구들과 뭐가 다를까요. 그저 훌륭하고 착하게 살라는 말처럼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고전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생각 없이 일 보고 있는 사람한테 주는 명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언어=실천적 언설입니다. 만인을 위한 교훈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말을 건네는 <논어>를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위가 아니라 <논어>가 원래 그런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를 위한 책이 아니라 바로 ‘너’(즉 나)를 위한 책, 그것이 <논어>에요. 아직 못 믿으시시는 것 같으니, 그럼 간단히 <논어> 한 구절을 보고 갈까요.
문리스 (남산 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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