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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청소, 단순히 더러워서 하는 거 아닙니다!

by 북드라망 2016. 9. 5.


공자가 못 되면, 청자라도…


쓱싹쓱싹



달랑 두 명이 사는 집을 놓고 내 집이네, 네 집이네 하는 것은 좀 웃기지만(그러니까 나랑 남편이 사는 집 말이다),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우리집은 ‘네 집’, 그러니까 남편 집이다. (하지만 어쩌다 집을 쪼개서 나눠야 할 일이 생기게 될 때도 ‘네 집’이란 건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심정적으로… 흠흠;;) 물론 등기부상의 명의가 남편의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이 가계 재정 관리를 총괄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남편은 우리 집의 ‘청소 반장’(청소의 요정, 이라고 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밤 10시, 12시에 퇴근하던 시절에도 집에 오자마자 하는 일이 청소였다. 그러니까 집에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전, 빤스와 난닝구 차림으로 방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런 다음, 맨손바닥으로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바닥의 먼지며 머리카락 등을 한 곳에 모은 다음, 늦지 않은 시간이면 핸디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늦은 시간에는 엄지와 검지로 집거나 때론 손가락에 꾹꾹 눌러 붙여서 쓰레기통에 털어 넣는다. 그러곤 씻으러 들어간다. 아, 씻으러 가려는데 주방에 내가 저녁을 먹고 치워놓지 않은 그릇이며 봉지며, 장을 보고도 그대로 둔… 그런 것들이 있으면 정리한다(나름 시장을 보고 내가 바로 냉장고에 정리해 놓는 것은 맥주와 달걀, 아이스크림이다. 나머지는 뭐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좀 빨랐을 뿐이다). 설거지를 바로 하지 못할 때에는 물에 대충이라도 헹궈서 개수대 한편에 정리해 놓는다. 몇 년째 보고 있는데도 너무나 신기하다. 이런 일이 10분에서 15분 정도 사이에 모두 완료된다. 그 사이에 집은 내가 있던 두세 시간 동안에 비해 한결 깔끔해진다.


주말에는 보통 늦잠을 자고 아점을 먹은 뒤 공식적인 청소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청소를 앞두고 남편은 우선 한숨을 푹 쉰 다음, “여보는 애들 방만 책임져” 하며 나를 애들 방으로 보낸다(아, ‘달랑 두 명’만 살지 않는다. 토끼 2마리가 함께 산다). 청소 ‘쪼렙’인 나는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이상한 건 내가 애들 방을 청소하는 동안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머지 방과 거실, 화장실까지 청소하는데 나보다 빨리 끝낸다. 미스터리다.


“청소를 해야 그 공간의 지형지물을 확실히 익힐 수 있다. 그래서 어딜 가든 청소만큼 확실하게 그 공간과 접속시켜 주는 활동도 드물다.”

- 류시성·송혜경 외 13명의 청년백수,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36쪽


그…그랬구나. 남편이 단시간에 청소를 샤샤샥 마칠 수 있었던 건 청소로 우리집의 ‘지형지물(이랄 것도 없지만)을 확실히 익혔기’ 때문이다. 혹시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이삿날 아침에 본 집을 오후에는 이사 간 집에 그대로 옮겨놓을 수 있는 것도 청소로 단련이 되어서일까?


"청소가 제일 쉬웠어요"


좌우간 난 청소 앞에선 늘 작아진다. 나는 어질러만 놓고 남편이 그걸 거의 다 치우니 (한번은 친구들이 놀러왔다 갈 때 ‘어질러만 놓고 가서 어쩌냐’고 미안해하기에 내가 다 치울 거니 걱정 말라 했더니 싸늘하게 ‘거짓말’이라며 돌아갔다;;;) 나는 그냥 속 편히, 몸 편히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남편이 귀가 후 10~15분 동안 집안을 파바박 정리할 때 내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집에서 난 뭘 했나 싶기도 하고, 남편이 정리를 마쳐서 집이 깔끔해지면 어색하다. 간혹 남편이 먼저 집에 들어가 있는 날에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그 깔끔함에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주말에 남편과 한바탕 청소를 마치고 나면 남편은 ‘상쾌하다’고 하는 반면 나는 ‘우리 집 같지가 않아서 불편하다’고 한다(그래서 조금씩 다시 어지르는 것이 나의 능력!). 전엔 그것이 내가 체질적으로 깔끔한 것과 맞지 않아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감이당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야 공간을 정돈하는 일이 자립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년이나 드나들었지만 낯설고 불편했던 곳이 청소 횟수가 늘고, 밥을 짓는 일에 참여하면서 순식간에 예전보다 훨씬 편해진 것이다. 예전에 세미나 참석을 위해서만 드나들 때는 나도 모르게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 최원미, 「언제나 배우는 자」,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80~81쪽


아무리 내가 사는 우리 집이지만 ‘드나들기만’ 할 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청소든 밥 짓는 일이든 빨래든 무엇으로든 집이라는 공간과 접속을 해야 편안해지기도, 당당해지기도 하는 것이다(물론 나도 빨래나 밥 짓기, 아! 무엇보다 ‘음식물쓰레기 버리기’로 우리 집과 ‘접속’을 할 때가 있다. 이게 청소에 비해 비상시적이고 티도 덜나니 내가 당당해질 기회가 그만큼 적은 것이다;;).


사실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를 작업하면서도 많이 불편했다. 남편이 치우는 것을 ‘어…어쩌지;;’ 하며 멀뚱멀뚱 쳐다볼 때의 기분이랄까. 스물, 서른에서 왔다갔다 하는 청년백수들이 한번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집을 뛰쳐나오고, 생전 해보지 않던 청소를 하고, 돈을 버는 일에 뛰어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별로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처음 보는 사람과 한 집에서 함께 살고, 벌이와 씀씀이를 공개하는 면면을 보면서 내가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부모님과 살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저들에 비해 티끌만큼이라도 더 ‘자립’했다고 할 만한 것이 있나, 라는 자문이 번번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해 보지 못했다(아, 헛되고도 헛되도다). 저들의 포부인 ‘공자’, 공부로 자립하기를 나는 감히 바랄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청자’, 청소로 자립하기를 바랄 뿐. 흠흠.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청자’가 내 평생의 원이 될 수도 있다. 좌우간 내 ‘청자’는 그렇다 치고, 이 책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가 많은 이들에게 ‘백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자’는 백수의 자립이다.^^ 


뽀너스 짤 ☆


청소의 요정 남편이 다녀간 애들 방. 난생처음 경험하는 깔끔함에 애들 역시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하다.



어떻게 백수들이 부로 립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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