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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우리는 계속 책을 만들 수 있을까?

by 북드라망 2016. 8. 8.


음악인들의 인터뷰를 보며 든,

출판에 대한 소소한 생각 몇 가지



문제는 스트리밍 시장이 음악시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다 보니 오히려 음악 구매층이 한정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음원 서비스 이용자가 500만 명 정도 되거든요. 그건 사실상 음악을 구매하는 사람이 500만 명이라는 얘기예요. 예전에는 전 국민이 음악을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산 LP가 있고, 형이 산 테이프가 있고 내가 산 테이프도 있었는데, 이제는 음악이 디바이스 산업에 종속되다 보니까 기기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음원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겁니다. 음반을 사고 싶어도 오프라인 음반사가 없잖아요. 오히려 대중이 축소된 거죠. 음악이 모든 사람이 즐기는 매체에서 일부 사람만 즐기는 매체가 된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 신대철 인터뷰,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179쪽


이 책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에 실린 인터뷰 중 네 사람이 대중음악 관련자였다. 윤종신, 신해철, 신대철, 고건혁. 그리고 이 네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음반시장’에 ‘출판시장’을, ‘음반’에 ‘책’을 대입하고 있었다.


사실 음반처럼 디지털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져 물성(物性) 자체가 사라진 상품에 비하면, 출판은 아직 물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물론 전자책 시장이 커져가고 있긴 하지만). 올해 초 시집 초판본 열풍도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물성’을 중요시한다는 걸 방증하는 사례일 것이다(아마도 현재 책을 즐겨 읽는 이들에게 책의 ‘물성’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민음사 전 대표로 『출판의 미래』라는 책을 낸 장은수 출판문화실험실 대표가 “출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 2012년 무렵에 붕괴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듯이, 나 개인적으로도 2013년을 전후해 출판시장의 변화를 체감한다. 단순히 책이 덜 팔리는 문제가 아니라 출판의 구조랄지 생태계 자체가 변한 느낌, 어떤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끈 건 물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신대철 씨가 위 인터뷰에서 스트리밍 시장이 거의 전부를 자치하면서 가져온 변화의 단점을 이야기했다면, 같은 책에서 대표적 인디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대표 고건혁 씨는 디지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고건혁 : (전략) 물리적으로 일정한 수량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음반시장과 달리 디지털은 음원을 올리는 데 비용이 들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디지털 음원을 올려두고 몇 개 매장에는 직접 CD를 납품했습니다. 그 매장들도 온라인 판매를 주로 했으니까 창고에 박아놓고 주문 오면 보내는 식으로 할 수 있었죠. 그렇게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도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중권 : 인터넷 문화와 인프라가 인디밴드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네요.

고건혁 : 그 덕에 다양성이 폭증한 것 같아요.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음악산업을 끝냈다고 하는데, 음악산업은 몰라도 음악이 망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음악 자체는 그 이후에 훨씬 풍성해졌습니다. 백만 장씩 팔리는 음반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은 천만 개의 음반이 한 장씩 팔리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전자가 나은가 후자가 나은가 하면 전 당연히 후자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음악이 생겨났고 누구나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상황이죠.


- 고건혁 인터뷰,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335쪽


"그만큼 다양한 음악이 생겨났고 누구나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상황이죠"


고건혁 씨가 보는 긍정적인 면은 출판에도 적용이 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1인출판사’의 폭발적 증가와 비례하는 다양한 취향과 소재의 책 및 잡지의 증가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른바 문화를 생산하고 또 즐기고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백만 장씩 팔리는 음반”보다 “천만 개의 음반이 한 장씩” 팔리는 게 더 낫다는 고건혁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다양한 컨텐츠들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위 인터뷰를 읽으며 든 이런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 장씩 팔리는 음반을 도대체 몇 타이틀을 내놓아야 음반사가 유지될 수 있을까?


출판계에도 “백만 부 팔리는 책 1권보다 2천부 팔리는 책 500권, 혹은 1천부 팔리는 책 1,000권”을 얘기했던 때가 있었다. 2천부나 1천부를 말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정도 부수가 1년 안에는 팔려야 최소한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똔똔’이 되기 때문이다(물론 책값을 얼마로 하느냐, 만드는 데 들인 시간이 얼마냐, 어떤 장정으로 하느냐에 따라 손익분기점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들이는 비용을 전부 최소로 잡는다고 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초판 1천부 혹은 2천부를 모두 소진하고 재쇄에 들어가는 책의 수는 절대적으로 적다.


나는 최근에 언론에서 자주 소개되는 인디출판이나 작은 서점(전문 서점) 등의 이야기를 접할 때 그 시도들이 반가우면서도 과연 이 활동으로 재생산이 가능한가, 라는 마음에 괜히 혼자 염려하기도 한다. 그 활동으로 생계까지 꾸려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일을 위해 또 다른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어떨까.


진중권 : 인디라고 해도 회사인 만큼 수익을 내지 않을 수 없는데요, 현재 음악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아요. 음악평론가 강헌 씨도 아이돌 스타들이 행사 뛰고 광고 찍어서 벌지 음원으로 돈을 버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붕가붕가레코드는 수입원 구성이 어떻습니까?

고건혁 : 예전에는 그래도 음반 판매 비중이 컸는데 그게 줄어들면서 저희도 많이 힘들어졌어요. 대신 공연 수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긴 해요. 기획공연을 많이 만들고 있고 또 페스티벌 시장이 늘어나고 기업 행사에 인디밴드를 불러주는 일이 늘어나면서 공연 수입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해외에서도 인디밴드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먹고사는 게 기본이에요. 한국 상황이 유별나게 특징적인 건 음원이 너무 헐값이라는 거죠.


- 고건혁 인터뷰,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336쪽


현재 한국 음악 시장에서 음원으로 수익을 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일’(혹은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일 뿐이고 정말 하고 싶은 활동은 따로 하는 게 당연히 여겨지는 세태처럼 ‘인디’ 혹은 ‘1인’이라는 말이 붙는 활동들을 하려면 생계를 위한 돈은 따로 벌어야 하는 걸까. 출판사들 역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인디출판’으로 (극히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가지 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당연히 모든 이에게 그것이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전문가들로부터 저자 ‘팬덤’ 형성이 중요하니 이것을 만들어 낼 방법을 고민하라거나, 구 마니아 신 오덕층이 형성된 컨텐츠들을 만들라거나 출판사는 컨텐츠 가공 기업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조언들이 나온다. 그러면 아직 규모를 갖추지 못한 출판사가 (아직) 이름없는 저자와 오덕층과 거리가 있는 컨텐츠를 출간한다면? 현재로서 가장 간편한(?) 방법은 소량 부수를 찍는 책을 다수 내는 수밖에(이른바 다품종 소량생산) 없을 것이다. 예컨대 예전에 1천부 팔리던 책이 이제는 500부가 팔리니, 한 달에 1종 내던 신간을 한 달에 2종 내는 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소규모 출판사가 지속적으로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큰 방식이다.


또 한편의 방법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할 수 있겠는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출판사들이 가진 컨텐츠( 및 저자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강연회 등을 가지거나 독서모임 등을 만드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도 수익으로 연결하기는 만만치가 않다. 출판의 ‘공연’이라 할 수 있는 저자들의 ‘강의’를 초기부터 ‘무료’로, 이벤트성 행사로 런칭하고 그것을 통한 ‘책 판매’ 상승을 꾀했기에, 지금도 책을 출간하며 하는 강의들은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강의이다(저자의 유료강의는 보통 출판사와 상관없이 바깥의 강의단체 혹은 강의회사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강의를 열었다고 해서 강의에 오시는 분들에게 책 구입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없기 때문에 실제 강의와 책 판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기도 쉽지 않다). 물론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료강의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공간과 이 작업을 진행할 별도의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 역시 작은 출판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써놓고 보니 물음표와 어려움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우리가 던져져 있는 상황이 이렇기에, 역설적으로 무언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아니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나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는 체질의 사람도 다른 시도를 해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그런 시도의 하나로, 북드라망은 다가오는 가을에 우리가 좋아하는 텍스트를 독자들과 직접 만나 주기적으로 함께 읽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책을 기쁘게 혹은 열정적으로 읽은 구체적 독자와의 만남이 바로 어떤 수익이나 돌파구와 연결될 리는 만무하지만, 우선 우리는 여기를 시도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신해철 : 어떤 음반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서 20대 이상은 아무도 음반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절망적으로 이야기해요. 하지만 저는 그건 현재의 진단일 뿐이고, 그렇다면 20~30대가 왜 구매층이 아닌지를 생각하면 되는 거지 끝났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극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있어요. 사람이 있고 사람은 음악을 듣는다는 단순한 사실, 이건 변하지 않잖아요.

- 신해철 인터뷰,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80쪽


사람이 있는 한 음악이나 이야기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만들고 듣고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면, 이 활동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도 생계를 유지하며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산하는 사람이 곧 소비하는 사람이기도 한 비율이 높다는 점이 문화 관련 활동의 특징이라고 할 때 1천명이 모여서(미스터리 마을, 동양고전 마을, 프랑스철학 마을, 재즈 마을, 록앤롤 마을… ) 함께 만들고 그것을 함께 소비할 수 있다면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만큼의 생계 지속은 가능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은 물음표를 가득 실은 태풍이 코앞에 다가온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태풍이 지나간 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다만, 우연히 보게 된, 신작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두고 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이, 어쩐지 태풍을 앞둔 불안과 걱정을 덜어내고 어떤 안심을 내게 주었다.    


“주인공 료타는 끊임없이 바람을 맞으며 살아왔다. 그의 인생 자체가 여러 번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태풍이 정화를 뜻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태풍은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씻어낸다. 그 결과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의 세상은 조금 달라 보이지 않나?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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