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 삶과 음식과 터전, 그리고 배움에 대하여
책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보통 ‘사진집’이라고 하면, 그 책에 실린 사진들이, 다른 책에 실린 사진들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세계란 그렇게 ‘차이’를 다투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진-책’은 그러한 ‘차이의 경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리에 있다. 역설적으로 그 점이 이 책과 책에 실린 사진들을 어떤 것보다 독특하게 만든다.
부제인 ‘용산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그렇다. (지금은 사라진) ‘용산성매매집결지’의 풍경과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붉은 불빛, 몸을 드러낸 여자들, 여자를 고르는 남자들이 배회하는, 도무지 ‘표준적 삶’과는 동떨어진 이상하고 괴이쩍은 그런 곳일까? 고등학교 때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기웃거리던 학교 근처 집결지의 풍경, 단속현장을 찍은 텔레비전 뉴스의 영상들, 선배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던 성매매 경험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거기에는 어쩐지 이른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떠올릴 수 있는 종류의 삶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곳에는 삶이 없다, 그렇다면, 거기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당연히, 그곳에도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삶들은 이른바 ‘보통의 삶’들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아니, 차라리 모든 삶들이 다른 삶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곳의 삶들은 다른 모든 삶들과 다르지 않다. 모여서 밥을 먹고, 술도 먹고, 화투도 치고, 슈퍼 앞에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싸우고…, 그러다가 누군가는 죽고, 떠나고…, 그러다가 살던 동네가 사라지는 것까지 다르지가 않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러한 다르지 않음을 보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것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어떤 ‘시선’ 또는 ‘태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용산은 성매매 하는 곳이 아닌 거지. 이런 곳에 살았지만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거. 사는 남자, 파는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미용실도 있고 먹고사는 공간도 있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거야.
-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봄날의박씨, 2016, 179쪽
다시, 느끼기를, 인생은 저마다 다르지가 않다. 모두가 다르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디에나 사연이 있고, 가슴 아픈 대목들을 각자의 이야기 속에 품고 있으며, 행복했던 시절 또한 곳곳에 숨어있는 법이다. 그 각각의 경험들은 모두에게 얼마나 독특한 것들인가. 그리고, 그 ‘독특함’들이 나를 또 배우게 한다. ‘배움’이 모르던 것을 새로 알고, 새로운 차이를 가늠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배웠다. 오륙십대, 도무지 다를 것만 같았던, 같은 삶을 살았던 언니들에게, 그리고, 사라진 터전을 담은 그 사진들 속에서 말이다.
판도라 프로젝트 사진들에 대해 외국의 관람자들이 보여준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이 사진들이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통념, 가지고 있던 편견을 여지없이 흔들어놓는다는 것이었다. 붉은 불빛, 치장한 여성들, 기웃거리는 남성들, 구매자의 손목을 끄는 호객꾼들, 유혹과 유인, 성의 거래, 착취와 억압 등등. 그러나 판도라의 박스 안에는 그것과는 ‘다른’ 것들, 즉 일상적인 삶과 건강한 공동체와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고 꽃을 심고 일하고 노는 하나의 오래된 터전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 같은 책, 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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