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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나는 못해" 과대평가를 떼어내고 스스로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

by 북드라망 2016. 9. 19.


'나'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





내 인생 최대의 걸림돌은, 크게 보면 나 자신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통제되지 않는 아침잠이다. 수도 없이 다짐을 하고 생활 패턴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늦은 밤에도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다. 침대와 침대 밖을 여러 번 왕복하는 날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나오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잠드는 이른바 ‘근대적 삶’의 패턴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이 습관.(그렇다고 이게 ‘전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차라리 ‘초현대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 습관 덕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들도 다 하는데, 심지어 나도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다 했던 것인데…, 그래서 아침이면 언제나 쫓기는 듯했고, 어쩐지 자괴감이 몰려오기까지 했었다.


벗어날 수 없는 무한 루프!


다시 한번 짚어 보자. 뭐가 문제였던 걸까? 내 괴로움의 원인은 사실 ‘현재의 내 모습’을 부정하는 데 있었다. ‘늦잠을 자고’ ‘딴짓을 하는 나’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기준에 부합되지 못한 모습들은 부족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보였다.

- 류시성·송혜경 외 13명의 청년백수,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52쪽


음……, 그러니까 나도 ‘현재의 내 모습’을 꽤나 부정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내 모습’은 어쩔 수 없으니, ‘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 나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의 상태가 명백하게 후진 걸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냥 ‘허무’말고는 남는 게 없어진다. 그러니까 ‘현재의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인정하면서 개선하는 법’을 찾는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잠깐 곁다리로 몇 마디 보태어보자면, 우리 시대에는 ‘나’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 그게 너무 넘치다보니, ‘자존감’ 관련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내가 정말이지 아무것도,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자존감’이 고개를 든다. 그걸 모르면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라, 그냥 ‘자존감’과 관련된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나’인 주제에 그 ‘나’조차도 스스로 통제를 못한다, 이럴 때 자존감이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잠드는 시간의 측면에서나 일어나는 시간의 측면에서나) 늦잠을 자는 ‘나’를 확인할 때, 그때서나 나는 내 자존감을 확인하는 셈이다.


‘인정하면서 개선하는 법’을 찾는다고 할 때, ‘인정’이란 바로 그것, ‘자존감’이라고 표현된 ‘자의식’을 해체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나의 ‘무능’을 부끄러움 없이 ‘무능’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리라. 그걸 온전히 해낸다면 와중에 ‘자기애’와 ‘자기연민’도 사라…줄어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인정’이라는 것은 ‘나’에게 덕지덕지 붙은, (내가 붙인) 과대평가들을 떼어내는 일이다.



과대평가를 떼어내고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존감'이라고 표현된 '자의식'을 해체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자립’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알던 내가 사실은 내가 아님’을 자각할 때 가능해진다. 이게 되고 나면 ‘개선’은 의외로 쉽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의 ‘늦잠습관’은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여서 장담을 할 수는 없으나, 이런저런 핑계 같은 것 없이, 그냥 나의 무능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까지는 되었다. 워낙에 자부심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었으므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였다. 뭐,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백수’여서 자립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인생 전체가 ‘자립’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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