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하여
각자에게 좋은 책은 그 자신에게 절실한 책이죠. 그렇게 되어야 하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욕망이 나의 것이 아니듯, 나의 절심함도 나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딱히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의 문제만이 아니라서 제 능력에 부치는 질문입니다.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누가 만들어 놓은 '고전리스트'가 그 누구에게는 좋은 책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 장정일, 『장정일, 작가』, 한빛비즈, 2016, 325쪽
솔직한 말로, 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라는 질문이 어쩐지 허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좋은 책을 골라야지' 하면서 책을 고르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취미는 독서'라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지' 같은 의식이 있어서 책을 읽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딱히 그런 의식이 없이 그저 배고프면 밥먹는 것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같은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낯선 질문이 아닐까 싶다.
'절실함'도 그렇다. 무언가 '절실'하여서 책을 읽은 경우는 내 인생에 고작 3~4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읽었던 책들의 대부분을 지금은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사실 그 중에 몇몇 권은 책등도 보고 싶지가 않아서 책장에 거꾸로 꽂아 놓은 것도 있다. 이제는 '절실'하여서 그 때문에 읽지는 않는다. 그냥 그냥 느슨하게 고르고, 적당히 읽는다.
그러다보니, 책들이 평평하게 보인달까……, 잘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감각이 있다. 어느 책을 읽더라도 엔간하면 '좋은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요지는 그것이다. 말하자면, '좋은 책'은 원래 '좋은 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은 쓸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절실함'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절실'에서 흔하게 떠올리는, 그 무거운 표상에서 벗어나도 된다. 가뿐하게 읽고 읽어서, 읽은 책 모두를 좋은 책으로 만들면 된다. '고전 리스트'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절실하게, 그냥 읽는다.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지 말고, '좋은 책' 한번 만들어보자는 느낌으로 즐겁게, 자유롭게 읽으시길. 생각해보면, 아무거나 읽을 수 있는, 무거워지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는 얼마나 운좋은 시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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