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나기 프로젝트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도 힘들게만 느껴졌다. 무려 삼계탕을 다섯 그릇이나 먹었는데도 기운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나를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라가느냐며’, ‘무슨 일 있는 것이냐며’ 걱정해주었다. 처음에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특별한 활동 없이도 살이 빠지니 나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체중이 줄어드니 무슨 일을 하든 쉽게 지쳤다. 게다가 날은 점점 더워져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다가도 축축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일상을 유지할 체력조차 고갈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체력이 떨어진 것일까. 밥도 제때 먹었고 잠도 잘 잤는데 말이다. 별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지내다간 내 일상이 무너질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체력 저하는 위험했다. 나는 체력저하의 원인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동의보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여름철이 힘든 이유
<衛生歌>曰 四時 惟夏難調攝 伏陰在內腹冷滑 補腎湯藥不可無 食物稍冷休哺啜
『위생가』에서 말하기를 “사철 중에 여름철이 조섭하기 힘들도다. 복음(伏陰)이 체내에 있어 배가 냉활하리니, 신장을 보할 탕약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음식물이 조금이라도 차가우면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하네.”
생명[生]을 지킨다[衛]는 의미의 『위생가』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철이 가장 조섭하기(몸을 조절하고 다스리기) 힘든 시기라고 한다. 여름철은 여섯 가지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육기(六氣) 중 서(暑)기가 주관한다. 서는 여름철의 뜨거운 기로부터 화생된 것으로, 더운 기운이 지나치면 ‘부정한 기운’ 즉, 서사(暑邪)가 된다. 서사는 떠올라 흩어지는 성질이 있는데, 서사가 인체에 침입하게 되면 몸 대부분의 주리(땀구멍)가 열려 땀이 많이 나오고, 땀이 많이 나오면 진액이 소모된다. 진액은 땀을 포함한 몸 안의 모든 수액대사를 말한다. 이 때, 기(氣)는 진액을 따라 전신을 순환하는데, 진액이 소모되면 진액을 따라다니던 기 또한 함께 빠져나간다. 그래서 여름에 ‘나쁜 더운 기운’이 생기면 쉽게 기운 없는 상태가 된다.
여름철은 서(暑)기 외에도 습(濕)기가 주관한다. 습은 여름 중에서도 장마철을 말한다. 습기는 기후나 외부 환경이 습한 외습(外濕)과 날 음식과 찬 음식을 많이 먹어 생긴 내습(內濕)으로 나뉜다. 습기가 과도해지면 습사(濕邪) 즉, 나쁜 습이 되고 몸이 장마철처럼 습한 상태가 된다. 장마철의 비가 쇠와 같은 여러 물질들을 부식시키고 산화시키는 것처럼 습은 인체의 여러 장기를 손상시킨다. 특히, 비(脾)의 운화기능인 소화에 영향을 주는데 운화기능이 떨어지면 수습이 정체되고, 음식물로부터 화생된 정미물질이 인체 곳곳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덥고 지친 날 소화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바로 나쁜 습기가 비의 소화기능인 운화기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날씨 자체도 습한데 몸을 습하게 만드는 음식까지 먹는다면 그야말로 몸은 더더욱 ‘냉활’해진다. 여름철에 찾게 되는 시원한 음식들 아이스크림, 냉커피, 무더운 밤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등이 모두 습을 발생시켜 음이 체내에 있는 ‘복음(伏陰)’상태로 만든다. 순간의 시원함이 몸을 점점 부식시킨다는 걸 잊지 말라.
여름철 아이스크림이 내 몸에는 독이라니ㅜㅠ
이처럼, 여름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액이 쉽게 소모되고 비에 습이 잘 생기는 계절이다. 계절의 기운이 내 몸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의 특징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름은 원래 조섭하기 힘든 계절이라는 점, 그래서 모두에게 힘든 계절이라는 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 여름철을 보내는 방법
心旺腎衰何所忌 特戒疎泄通精氣 寢處猶宜謹密間 黙靜志慮和心氣 氷漿菜果不益人.
심장은 왕성하고 신장은 쇠약한 여름에 무엇을 조심할까. 특히 정(精)의 소설(疎泄)을 경계하여 정기(精氣)를 통하게 해야 하네. 잠자는 곳은 의당 밀폐된 곳이 좋고 고요히 뜻과 생각을 안정시켜 심기를 편히 하세. 얼음물과 채소 과실은 사람에게 이롭지 않다네.
무더위에 쉽게 지치는 여름철엔 어떻게 지내야할까? 동의보감에서 ‘여름을 보내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정(精)의 소설(疎泄)을 경계하여 정기(精氣)를 통하게 해야 한다. 정(精)은 생명의 근원물질로 우리 몸의 생명수 역할을 한다. 정은 성생활과 지나친 감정 소모로 인해 고갈되는데, 여름철엔 특히나 조심해야한다. 왜냐하면 양기(陽氣) 충만한 여름에 그 불을 식혀줄 물이 없다면 우리 몸은 바짝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에는 밀폐된 곳에서 자야하며 고요히 뜻과 생각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는 모두 음기(陰氣)를 기르는 작업이다. 여름철은 양기의 소모가 많기 때문에 음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밀폐된 곳에서 자면서 양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음기를 기르고 심적인 노력도 해야 한다. 불이 한 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 듯, 여름철엔 사람의 마음 또한 요동치기 쉽다. 내 마음의 불, 화가 일어나도 곧 평정을 찾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평화롭고 시원한 사진도 도움이 된다^^;
‘얼음물과 채소 과실’(氷漿菜果)도 멀리 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차가운 음식은 몸을 습(濕)하게 만든다. 그런데, 얼음물뿐만 아니라 채소나 과일은 왜 피하라고 하는 것일까? 채소나 과일은 수분이 많아 기본적으로 그 성질이 차다. 이에 우리 몸은 채소나 과일을 소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열을 사용한다. 이미 진액이 빠져나가 속이 냉(冷)해진 상태에서 없는 열을 사용하려고 하니, 진액은 더욱 고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여름에 덥다고 추욱- 늘어져있지만 말고, 동의보감에서 제안하는 ‘여름철 양생법’을 잘 기억하고 실천해보자.
글_이소민(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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