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自化), 내 몸에 맞는 삶
❙ 원기 vs 곡기
요즘 여기저기서 살 좀 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몸을 움직이는 게 무겁다. 작년엔 아침에 108배하고 매일 저녁 남산에 갔었다. 술도 안 먹었고 꽤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절도 안 하고 남산도 안 간다. 그렇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년과 비교해보면 분명 살도 쪘고 움직임도 전보다 적어졌다.
"흠.. 살이 그렇게 쪘나? 빠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살이 쪄도 90kg에서 멈추고 아무리 빠져도 70kg 이하로는 안 빠진다. 내 키가 175센티 정도 된다. 키보다 어느 정도 살이 있는 상태로 몸무게가 유지된다는 것인데,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몸을 갖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이런 몸으로 살았을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말랐었다. 편식이 심해 밥을 잘 안 먹었다. 그런 나를 걱정하시던 할머니들(외할머니, 친할머니, 이모할머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밥숟가락을 들고 나를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셨고, 어머니는 같이 밥 먹을 때마다 나에게 먹어 달라고 사정도 하고 버럭 소리도 지르셨다. 그러나 나는 고기나 햄과 같은 것이 없으면 도무지 먹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고기는 지금보다 훨씬 비싼 음식이었다. 켄터키 후라이드치킨은 아버지 월급날만 먹을 수 있었고, 고기는 가족 누군가의 생일이나 제사와 같은 행사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1989년 12월. 나는 고무줄놀이(여기서 말하는 고무줄놀이는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 뛰거나 해서 고무줄을 넘는 놀이다)를 하다가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나는 왼쪽 복숭아뼈에 금이 갔다.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복숭아뼈가 사고를 당하지 않은 오른쪽 복숭아뼈보다 더 튀어나와 있다) 나는 깁스를 하고 병실에 1달간 누워 있었다.
이때 먹을 것들이 물밀 듯이 왔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아버지는 가끔 친구들과 병실에 오시면 옆 병상에 있는 아저씨와 합세하여 고기 구워 먹고 화투도 치고 술도 마셨다. 그때만 해도 병실에서 화투 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던 시절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고기를 먹었다. 마침 다친 곳이 뼈라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매일 고기뿐 아니라 초콜릿도 먹었고, 두유나 훼밀리주스 같은 음료까지 온갖 먹거리들을 쉴 새 없이 먹었다. 밥도 병원에서 주는 밥이 입에 맞지 않아 어머니께서 매일 도시락을 싸오셨다. 물론 편식을 심하게 하던 나이기에 항상 고기에 소시지가 있는 도시락밥을 먹었다.
"어떻게 병문안을 빈 손으로 올 수가 있어??"
한번 체질이 바뀌면 잘 안 변하는 것 같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말라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집에선 심심치 않게 고기를 먹은 것 같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자주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유찬(類纂)』에서는 “곡기(穀氣)를 지나치게 섭취하여 원기(元氣)를 이기면(勝) 그런 사람은 살이 쪄서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나 원기가 곡기를 이기면 비쩍 말라도 오래 산다”라고 하였다.
<類纂>曰 穀氣勝元氣 其人肥而不壽 元氣勝穀氣 其人瘦而壽.
나는 89년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진(비록 편식했지만, 사실 김치 같은 것들 말곤 먹을 게 별로 없었다.) 원기가 곡기를 이겼던 것 같다. 그때 사진을 보면 살도 별로 없고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사고 이후 지금까지 내 몸은 곡기가 원기를 이기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쭉 비만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입원했을 때 왜 많이 먹었을까? 그리고 그 기억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후 받았던 사람들의 관심이 좋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좋다. 생각해보니 연예할 때도 살이 많이 쪘었는데, 데이트할 때면 항상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었다.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여자 친구에게 받는 관심과 사랑이 좋았다. 병원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관심(걱정과 위로)받으며 기분 좋게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 ‘나’에게 적합한 氣
나는 평소 기(氣)가 부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동의보감을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곡기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여 원기를 이겼기 때문에 기가 부족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기가 위(胃)로 몰린다. 그래서 다른 몸에 기가 잘 돌지 않게 된다. 그래서인가? 가끔 단식하거나 조금만 먹으면 위(胃)에 氣가 몰리지 않게 되면서 몸이 편안해지고 정신도 맑아졌다. 아마도 이때 잠시 원기가 곡기를 이긴 때일 것이다.
_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를 위해 기가 위로 몰린다. 그래서 다른 곳에는 기가 잘 돌지 않게 된다.
『영추경』에서는 “형체와 정기가 서로 균형이 맞으면[任] 오래 살지만 서로 균형이 맞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 피부와 근육이 잘 싸고 있으면[果] 오래 살지만 서로 밀착되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 요컨대 혈기(血氣)와 경락(經絡)이 왕성하여 형체를 충분히 감당하면[勝] 오래 살지만 형체를 감당하지 못하면 일찍 죽는다. 형체가 충실하고 피부가 부드러운 사람은 오래 살지만 형체는 충실하여도 피부가 거칠고 뻣뻣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 형체가 충실하고 맥이 굳세고 큰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順]할 것이나 형체는 충실해도 맥이 약하고 작은 사람은 기가 쇠하고 기가 쇠한즉 (목숨이) 위태롭다. 형체는 충실하지만 관골(광대뼈)이 나오지 않은 사람은 골격이 작고 골격이 작으면 일찍 죽는다. 형체가 충실하고 큰 근육이 단단하여 구분이 되는 사람은 기육(肌肉:인체의 살과 근육을 가리킴)이 단단한데 기육이 단단하면 오래 산다. 형체가 충실하여도 큰 근육의 살결이 나뉘어지지 않고 단단하지 않은 사람은 기육이 무른데 기육이 무르면 일찍 죽는다”라고 하였다.
<靈樞經>(壽夭剛柔 第六(法律))曰 形與氣 相任則壽 不相任則夭 皮與肉 相果則壽 不相果則夭 血氣經絡 勝形則壽 不勝形則夭 形充而皮膚緩者 則壽 形充而皮膚急者則夭 形充而脈堅大者 順也 形充而脈小以弱者 氣衰 氣衰則危矣 形充而觀不起者 骨小 骨小而夭矣 形充而大肉 䐃堅而有分者 肉堅 肉堅則壽矣 形充而大肉無分理不堅者 肉脆 肉脆則夭矣.
氣가 부족하다는 것은 형체에 필요한 氣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나는 내 몸에 필요한 氣가 있고, 타고난 氣도 있다. 한번 태어난 이상 형체(形)는 바뀌지 않는다. 또한, 몸은 타고난 한계가 있다.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지긴 한다. 예를 들면 운동량에 따라 근육량이 늘어날 수도 적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엔 최대치와 최소치가 있다. 내 친동생은 굳이 헬스를 하지 않아도 근육량이 많다. 동생이 헬스를 한다면 동생은 지금보다 더 많은 근육을 갖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처럼 근육이 별로 없게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운동해도 동생처럼 되진 않는다.
근육을 타고나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들은 무리하게 근육을 늘린다 해도 늘어난 근육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근육은 형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헬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근육이 빨리 자라는 약을 먹으며 운동한다. 무슨 단백질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따로 먹어 줘야 근육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내 몸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그런 것을 먹는다 해도 근육이 무한대로 늘진 않는다.
_저마다 각자 타고난 체형이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근육만 원하게 되면 우리 몸에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지방도 몸에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적당량의 지방을 가지고 타고나는 것은 수억 년에 걸쳐 진화해온,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몸의 모습이라는 증거다. 이것은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타고난 데로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적당히 필요한 근육이 있고 지방이 있다. 따라서 근육은 타고난 몸에 의해 적어도 문제고 많아도 문제가 된다. (일본 스모와 미국 프로레슬링은 운동선수 중에 수명이 가장 짧은 종목에 속한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형체와 정기가 서로 균형이 맞으면 오래 살고 균형이 무너지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수명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근육보다 더 많은 근육을 가지고 있으면 몸에 무리가 오고 그런 상태로 살게 된다. 그렇게 균형이 깨지면 몸에 부작용이 일어난다.
언제부터인가 밥을 하루에 2끼 먹는다. 그리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하루에 3끼를 먹든지 한 끼라도 많이 먹으면 자주 누워있게 되고 몸에 힘이 없다. 내가 감이당에 와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몸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을 알고도 계속 많이 먹을까?
❙ 스스로 생명활동을 한다는 것
사실 작년엔 술을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었다. 못 먹었음에도 술에 대한 욕망조차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달라졌다. 술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술을 먹게 되면서 살이 찌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술을 아주 가끔 내 몸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술이란 욕망을 먹는다면, 내가 그 욕망을 붙들고 산다면 나는 내 형체에 맞지 않는 몸을 갖게 될 것이다.
『내경(內經)』에서는 “각각 몸의 중심(中)에 뿌리를 박은 것을 이름하여 신기(神機)라고 말한다. 신(神)이 없어지면 기(機)도 멈춘다.
대개 기혈은 인체의 신(神)이 깃든 곳이다. 맥이 급하고 자주 뛰는 사람은 기혈이 훼손되기 쉬워 신기도 멈추기 쉬워 그 때문에 요절하는 경우가 많다. 맥이 느리고 더딘 사람은 기혈이 고르고 조화로워 신기도 잘 손상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선철(옛날 현명한 사람)이 논하기를 “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천지가 호흡하는 것으로서 하루 두 번씩 오르내릴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호흡은 하루에 1만3천5백번 숨쉰다. 그러므로 천지의 수명은 유구하여 끝이 없지만 사람의 수명은 길어도 그 숫자가 100을 채우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內經>曰 根于中者 命曰神機 神去則機息.
盖氣血者 人身之神也 脈急數者 氣血易虧而神機易息 故多夭 脈遲緩者 氣血和平 而神機難損 故多壽. 先哲 論江海之潮 則天地之呼吸 晝夜 只二升二降而已 人之呼吸 晝夜 一萬三千五百息 故天地之壽攸久而無窮 人之壽延者數亦不滿百也.
_너무 잦은 '심쿵'은 기혈이 훼손되기 쉽습니다.
신(神)은 생명활동을, 기(機)는 기전(機轉)을 가리키는데, 독립된 정신을 소유하고 스스로 생명활동을 하는 사람을 신기지물(神機之物)이라고 한다. 기전(機轉)이라는 용어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상세한 과정 및 경로’를 가리킨다. 神機(신기)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 ‘신묘한 계기(契機 :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결정(決定)되는 근거(根據)나 원인)'인데, 여기에서의 神(신)은 그 이치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이고, 機(기)는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라는 의미로 세계를 작동하게 하는 틀을 가리킨다.
따라서 神機(신기)는 생명활동의 근원적 발원이 되는 곳이다. 신기는 자화(自化)한다. 自化(자화)는 스스로 되어감이란 뜻이다. 이것은 생명활동 무대인 신체가 능동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神機(신기)가 손상되면 오래 살지 못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지 못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自化한다. 감자는 스스로 감자가 되고 나무는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모두 자기답게 산다.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스스로 생명활동을 해야 한다. 그 생명활동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하는 능동적 활동이다. 우리는 수많은 외부의 가치에 노출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외부의 가치에 자신을 맞추며 산다. 하지만 내게 맞는 양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원기가 곡기를 이긴다면, 내 몸에 외부의 힘보다 나의 힘이 더 커진다면, 또 더는 남들의 관심에 의지하며 살지 않게 된다면 진짜 ‘나’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글_태연 (낭송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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