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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원일의 락락(樂樂)

존 케이지 <4분 33초> "침묵은 없다"

by 북드라망 2016. 7. 20.


존 케이지, 4’33” ― 침묵



존 케이지 (John Cage 1912~1992)
1912년 9월 5일 로스엔젤레스 출생.
할아버지는 청교도적 감리교단의 순회 목사였고 아버지는 발명가.

어머니는 세 번째 결혼을 통해 존 케이지를 낳음.
작곡가, 저술가, 음악 시인, 뉴욕 균류학회를 설립한 버섯 전문가,


“내 생각에 가장 훌륭한 내 작품, 최소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침묵<4분33초>이다.”


작곡가이자 시인인 존 케이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침묵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침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다양한 행위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그것을 ‘침묵(silence)’이라 부른다. 그것은 우리의 질서나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질서와 표현으로 이끌어 가지만 그때 우리의 소리를 침묵시킨다.





1961년 이태리 밀라노의 잡지《메트로》에 수록된 글 <로버트 라우셴버그,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관해>라는 글 첫머리에 케이지는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다.


-관계자 여러분께-
“백색 회화는(White painting)가 먼저입니다. 내 침묵의 음악은 나중에 나왔습니다.”


헌데 내 추측으로는 케이지의 4’33”작품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벽암록> 중 세존의 침묵 설법이라 생각한다.


擧. 世尊一日陞座. 文殊白槌云, 諦觀法王法, 法王法如是. 世尊便下座.
세존께서 어느 날 법좌에 오르셔서 말없이 앉아계셨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나무 방망이를 쳐서 설법이 끝났음을 알리며 말하였다.
“법왕께서 설하신 진리를 보라. 법왕의 진리는 이와 같다.”
이에 세존께서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이상 설법 끝!


침묵의 설법, 존재하되 말하지 않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절대적 침묵. 마하가섭존자의 염화시중의 알아차림.......



부처님의 열반 이후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들어 슬퍼하였다는 이야기는 아마 다 사실일 것이다. 동물들은 침묵과 늘 함께하기에 참으로 깨어 존재하며 침묵의 시공에서 부처와 교감을 주고받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따금 새들과 함께 지저귐을 주고받으며 놀다보면 어느새 소리를 내지 않는 상태에서 더 그들과 깊은 교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때 침묵의 가치를 느낀다. 그것은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이다. 입을 다물고 대신 귀 기울여 당신 그리고 당신과 함께 존재하는 것들과의 사이에서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소리를 들어보길 권한다. 그러면 ‘지금’이 좀 더 현실적 감각으로 선명히 다가올 것이다. 그 소리들을 제대로 느끼고 인식하는 것도 ‘참 나’로서 존재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절대적 침묵이란 없다. 침묵적 상태만 있을 뿐이다. 그 상태에서 침묵은 드넓은 세상으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말하자면 침묵은 어떤 죽음과 생성을 잉태한 상태의 공간적 소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침묵을 깨고 나타날 소리들이 머무는 잠재성의 터널과도 같다.


나는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에서 내 작품이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왜냐 하면 음악은 작곡가의 느낌과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리처드 코스텔라네츠, 『케이지와의 대화』 중에서


텅 빈 시간이나 텅 빈 공간 따위는 없다. 각각의 ‘순간’이 시간이며 공간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보고 또 듣는다. 침묵 같은 것은 없다. 항상 무언가 일어나며 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침묵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공학적 목적으로 조용히 만든 방을 ‘무향실(無響室)’이라 하는데, 여섯 개의 벽면이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이 방에서는 소리의 반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하버드 대학교 무향실에 들어간 나는 두 가지 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높은 소리, 하나는 낮은 소리였다. 담당 엔지니어에게 설명하자 그는 높은 소리는 내 신경계가 작용하는 소리, 낮은 소리는 내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라고 알려 주었다. 죽을 때까지 소리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각각의 순간이 시간이며, 공간이다.

- 존 케이지, 『사일런스 :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중에서




케이지가 확실히 선불교에 깊이 영향을 받았음을 우리는 그의 사상과 작품 전반에 걸쳐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작곡가란 소리를 조직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동감한다. 서양 전통 화성의 질서 있는 음 관계성만을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작곡가들에게 적절하지 못한 이유는 이제 그들이 소리의 전 영역을 인식하고 상대하게 된 까닭이다. 현대의 작곡가는 아카데미에서 금지한 소리의 모든 ‘비음악적’ 영역을 탐구한다. 존 케이지는 그것이 가능함을 평생에 걸쳐 행동을 통해 실천한 작곡가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예술과 삶을 구별하지 않는다.”

다음의 문장들은 존 케이지의 주요 어록들 가운데 그의 작곡 성향을 드러내며 특히 침묵과 깊이 관련된 것들이다.


“고요한 마음은 좋고 싫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다.”
“좋고 싫음을 넘어섬으로써 마음을 글자 그대로 열 수 있다.”
“내가 마음을 닫으려고 노력하는 대상은 내게 너무 친숙한 것들이다.”
“굉음, 바람소리, 심장 고동 소리, 산사태 소리로 사중주를 작곡하고 연주할 수 있다. … 대중이 좋아하리라 생각한 소리만을 들려주면 … 우리는 새로운 소리의 경험으로부터 차단된다.”


리처드 코스텔라네츠가 쓴 『케이지와의 대화』 마지막에 재클린 소사르가 케이지에게 프루스트식의 질문을 던지고 이에 케이지가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 몇 가지 인상적인 질문과 대답을 꼽아보면 이렇다.


-어디에 살고 싶은가? 내가 있는 곳이다.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부처님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마음에 든다든지, 좋아한다는 것에 되도록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연이 주는 선물중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은? 나는 내게 있는 것을 갖는다.
-어떻게 죽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내 관심을 많이 끄는 해답의 비밀이다.



사일런스 :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 10점
존 케이지 (John Cage) 지음, 나현영 옮김/오픈하우스
케이지와의 대화 - 10점
리처드 코스텔라네츠 지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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