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 Timbuktu》
Ali Farka Toure With Ry Cooder
《토킹 팀북투》 - 알리 파르카 뚜레와 라이 쿠더
- 1994년 발매 / 1995년 그래미 월드뮤직앨범상 수상
소금은 북쪽에서 오고 황금은 남쪽에서 오지만,
신의 복음과 지혜의 보물은 팀북투에서 온다.
아프리카 역사에서 가장 문화적인 도시 중 하나였던 '팀북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북서 아프리카의 내륙 지역에 위치한 나라 말리의 북쪽에 있는 도시인 팀북투는 알제리에 인접해있다. 이곳은 14∼15세기경 지어진 유명한 이슬람 사원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곳으로, 이슬람 문화의 영적이고 지적인 성숙과 확장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인리히 바르트와 마틴 베르나츠가 그린 1858년의 팀북투
소금과 황금의 교역지로 크게 융성했던 팀북투의 이름 앞에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도시’, ‘황금보다 책이 더 귀하게 대접받는 문화도시’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고 한다. 이미 아프리카 역사에서 책을 다른 어떤 물질보다 귀하게 대접했던 문화는 고대에서 이어져온 것이었다.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당시에 50만권의 책을 소장)도 그 하나의 증거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도서관은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프리카 정복 여정의 결과로 지어진 도서관이었다. 말리의 팀북투는 그리스가 아닌 이슬람 세력의 정복에 의해 지배된 도시라는 점이 다른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안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4년에는 프랑스에서 제작한 ‘팀북투’라는 영화가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2012년 이슬람 극력무장집단인 알 카에다에 일시 점거된 말리의 고대 도시 팀북투의 주민들이 겪은 온갖 고초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이번 달에 소개할 앨범도 제목처럼 팀북투에 관한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그보다는 너무나도 소박하다는 게 그 특징이다. 또 몇 번이고 반복해 들어도 좀처럼 질리지 않는다. 말리의 전통 음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이 앨범만 듣고는 당연히 알 수 없을 테지만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앨범 전체에서 아프리카 사운드의 뉘앙스와 블루스적 감성이 점점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다. 블루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대개는 음악을 들어보면 바로 “아∼∼ 이런 스타일!”하고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
반복되는 형식의 음악에 가사를 얹어 노래하게 되면 이야기와 메시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데다 블루스의 음악적 DNA를 지닌 알리 파르카 뚜레의 음성이 전하는 팀북투의 이야기들은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목소리처럼 편안하고 친근하여 때론 우리의 토속민요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더하여 과장이나 오버플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아프리카 뉘앙스의 기타 연주를 듣다 보면 가벼운 춤이라도 추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 블루스 음악을 전한 본 고장이 바로 아프리카이며, 그 중에서도 말리의 음악에서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전 세계에 확실하게 알린 장본인이 바로 '알리 파르카 뚜레'다. 그가 동네의 조그마한 클럽에서 매일 연주하는 기타 연주와 노래들은 아프리카 말리의 전통음악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이자 동시에 자신의 음악이었다.
원래 열두 마디를 한 주기로 반복하는 블루스 음악은 고유의 코드와 음계의 형식 위에서 소울풀한 느낌의 선율들과 리드믹 그루브(groove)를 반복하며 진행되는데 적당한 템포에 블루스 고유의 진한 음악적인 맛에 친숙해지면 점점 신체로 스며들어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변모해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한국 전통 음악의 굿거리장단(덩-기덕 쿵-더러러 쿵-기덕 쿵따)의 12박 리듬과 블루스 음계가 만나면 매우 한국적 블루스 음악이 형성되는데 썩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오늘날 전자음악을 제외하면 대중음악의 전 장르는 블루스 음악의 계보로부터 파생되었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부 매니아 층을 제외하고는 블루스 음악이나 월드뮤직은 거의 인기가 없는 편인데다 제대로 된 아프리카 음악은 접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유튜브가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고맙기도 하다)
예전부터 해외 여러 곳의 다양한 음악 문화를 접하며 유독 한국의 음악문화가(어디 음악뿐일까) 매우 편향적이라는 사실에 종종 안타까움을 느껴 오곤 했는데 이런 문화적 빈곤함은 사실 삶의 패턴(문화)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타국의 문화나 예술에 깊게 관심을 가질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아프리카 음악과 블루스 음악은 너무 바쁜 사람들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면 블루스 음악과 아프리카 음악 그리고 많은 나라의 전통음악에는 현대인들이 잊어버린 인간의 마음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어떤 정서적 요인이 간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 음악은 특히 여름에 들을수록 좋은 것 같다. 촘촘하지 않은 소리의 공간을 통해 소박한 정서가 스며들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속에서 발견한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의 휴식 같은 여유로운 감흥도 느껴진다. 피서 삼아 꼭 시도해보시길 !
* 이 앨범을 소개하며 빼 놓아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름이 '라이 쿠더'다. 이미 블루스 기타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절친인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멋진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선 이 미국의 기타리스트는 아프리카 에서는 유명 뮤지션이지만 소박하게 쌀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진짜 ‘블루스 맨’ 알리 파르카 뚜레(1932∼2006)를 찾아가 음반을 위한 녹음작업을 제안한다. 그는 이 앨범을 프로듀스함과 동시에 투레와 함께 기타를 녹음하여 그를 백업했다. 그 결과, 다음해에 이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를 받으며 전 세계 음악 마니아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음반을 작업한 후에 라이 쿠더는 다시 쿠바로 옮겨 잊혀져가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찾아 나서 그들과 새로운 음반을 녹음 하였는데 그 앨범이 바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이 두 장의 음반 작업만으로도 라이 쿠더는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었고 월드뮤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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