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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원일의 락락(樂樂)

20세기 가장 위대한 고전음악 작곡가의 현대적 실험, 〈무지카 리체르카타 〉

by 북드라망 2016. 8. 10.


리게티 - 무지카 리체르카타




리게티 죄르지 샨도르 (Ligeti György Sándor, 1923년 5월 28일 ~ 2006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트란실바니아에서 유대계 헝가리 인으로 태어나 이후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에 정착. 함부르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진은숙 등을 배출. 평생에 걸쳐 자기 작품에 대하여 냉정하고도 엄격한 비평적 태도를 유지하였으며 어떤 악파에도 소속됨이 없었던 예술가.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았고, 다의적이며 모호하고 암시적인 의미로 가득한 작품들을 작곡했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의 비밀스러운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가면 아래 많은 비밀들을 숨긴 사람들의 욕망과 심리를 대변하듯 인상적으로 흐르는 피아노 연주곡이 바로 〈무지카 리체르카타〉(Ricercata : ‘실험해보다’ ‘탐색하다’, ‘추구하다’의 뜻) 2악장이다. 리게티는 생전에 부인과 함께 이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자신의 음악들이 무단 사용되었던 점에 분개하여 6년간 소송을 진행했었던 악연이 있긴 하지만 큐브릭 감독의 영화에는 상당히 만족했다고 한다.


전체 열한 곡의 피아노 모음으로 구성되었으며 한 곡씩 전개될 때마다 반짝이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리드미컬한 활기를 맛볼 수 있는 〈무지카 리체르카타〉는 리게티의 세계로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음반이다. 이 작품에 대해 공산당국은 '퇴폐적이고 퇴화한 음악'이라는 이유로 연주 금지령을 선고했지만, 실은 그 덕에 음반이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리게티의 음악은 과도한 12음렬주의 음악기법과 아방가르드적 과도함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 중에서 단연 가장 꾸준하고 활발하게 전 세계에 걸쳐 연주되고 있다. 그의 음악의 극단에는 초현실주의적인 신비함, 간결하면서도 동시에 양식을 통한 감정의 복잡함과 우아함, 그에 더하여 그로테스크함까지 다양한 성격과 표정이 깃들어 있다.


음악적 대비를 패러독스적 전복을 통해 자주 드러내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표제 없는 표제음악’, ‘무질서의 질서’, ‘얼어붙은 시간’ 등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독창적 수식어를 사용하는 그는, 폴리포니에 의한 음악복합체와 ‘음악적 망’을 구축해가며 전개되는 독자적 작품 양식을 완성했다. 한국의 현대 음악계에서 리게티의 다양한 음악을 접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유튜브 등을 통해서라면 그의 음악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이번에 소개하는 〈무지카 리체르카타〉는 전곡을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 지적인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음악이 될 것이다.





“내 양식이 변화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입니다. 나는 칠십이 다 된 오늘날까지도 항상 새롭고자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음악은 내게 일차적으로 직관적인 그 무엇이다. 그 후에야 사색적인 작업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순수하게 음향적인, 음악적인 비전이 구체화된다. (…) 이렇게 합리적인 것, 구성된 것, 꿈꾸어진 것 간의 긴장이 내 작업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상상한다. 작곡의 첫 단계는 언제나 ‘내면의 귀’로 작품 전체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악기의 구체적인 음색이 떠오르지 않고서는 상상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 나는 결코 ‘추상적인’ 음악을 구상할 수 없다.”


“나는 지금 내 음악이 어는 방향으로 향할지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매 작품마다 마치 맹인이 미로에서 그러하듯이 여러 방향으로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지요. 한발 나아가면 그것이 이미 과거가 되어 다음 발걸음을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무지카 리체르카타(Musica Ricercata)〉는 피아노 독주를 위한 열한 곡의 모음집이다. 작품의 첫 곡은 한 음(A)으로만 이루어지며(마지막 종지음은 D로 마침), 두 번째 곡은 세음(E, F#, G), 세 번째 곡은 네 음(C, Eb, E, G) 등으로 해서 열한 번째 곡에서는 열 두음이 모두 사용된다. 각 곡에는 고유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는데, 예를 들어 첫 다섯 곡이 아주 단순한 음고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리듬이나 음색, 강세 등의 다른 구성 방식을 실험해 본 것이라면, 6번은 믹솔리디안(Mixolydian) 선법에 대한, 7번은 오스티나토(ostinato)에 대한 연습이라 할 수 있다. 8번이 헝가리의 작곡가 바르토크의 민속주의 정신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라면, 9번은 "벨라 바르토크를 기리며"라는 부제가 붙은 역붓점의 ‘롬바르디적인’ 리듬에 대한 연구이고, 10번은 빠르고 변덕스럽다. 이어지는11번은 잔신의 오르간 곡 〈리체르카레〉에서 가져온 프레스코발디의 테마에 따른 엄격한 푸가이다. 단순함에서 점차 복잡함으로 진행되는 방식.


추신: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곡이지만 배럴 오르간(건반을 눌러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천공 종이테이프를 돌려서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오르간) 버전에서도 그 음색의 독특함으로 인해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으며 작곡자 자신도 배럴 오르간 버전을 매우 좋아했으니 이 버전의 〈무지카 리체르카다〉도 한번 감상해보시길. (들으러가기)


* 참고 및 인용 - 이희경 지음, 『리게티, 횡단의 음악』


리게티, 횡단의 음악 - 10점
이희경 지음/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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