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데이비스,
1959년 콜럼비아 레코드 음반
《Kind of Blue》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5.25. ~ 1991.9.28)는 그의 음악과 삶을 통해 오늘날 재즈라는 단어 자체를 표상하는 불멸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시대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일즈도 마약을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들과의 애정행각은 물론 때로는 폭력적인 언행으로 그에 대한 인상을 얼룩지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만은 평생 동안 엄격함과 냉소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던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그가 남긴 재즈 음악을 듣다보면 신선하고 깊이 있는 아름다움의 향기에 빠져들게 되고 새로운 음악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설적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가 이룩해낸 《Kind of Blue》의 음악들은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깊고 완벽한 연주로 가득 차 있다. 마일즈 특유의 뮤트 트럼펫 사운드는 변신한 마일즈 데이비스 자체가 되어 들려온다. 드러머 제임스 코브는 《Kind of Blue》에 수록된 음악 전체가 천상의 상태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 자평하기도 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 상관없이 이 앨범이 재즈 음악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앨범 레코딩 작업 과정에서 모든 곡들을 첫 번째 테이크의 녹음을 취하기로 의도했고 한 곡을 제외하고는 정말 그렇게 음반을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정확한 악보도 없는 음악의 첫 번째 테이크를 선택한다는 것은 연주자들 직관에 의한 완벽한 경지가 아니라면 우연적으로 발생된 음악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을 감상할 때마다 느끼는 건 각 연주자들의 연주가 거의 모두 완벽하다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지휘자 카라얀처럼 유독 음악 녹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마일즈가 남긴 수많은 명반들 가운데 《Kind of Blue》는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전문가와 일반인들 모두에게 한결같은 찬사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앨범이다.
첫번째 트랙은 그 유명한 <So What>이다. (그러니까 곡 제목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음악은 정해진 코드가 따로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라는 사람들 질문에 마일즈가 한 대답이 'So What'이었고 이 대답이 곡 제목이 되었다는 다소 근거가 희박한 후문이 즐겨 회자된다.)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선 너무도 유명한 인트로의 피아노 솔로와 베이스 루프의 주제 제시부를 지나 터져 나오는 우아하고 경쾌한 마일즈의 트럼펫 솔로 연주, 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존 콜트레인의 연주로 이어지는 부분은 한마디로 절대 경지!
재즈음악 역사에서 《Kind of Blue》 앨범이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재즈화성의 복잡한 변화를 떠나 간결한 음악적 모드(mode)를 중심에 두고 펼쳐낸 선율들의 향연에 있다. 이를 ‘모달-재즈’ 기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간결함 속의 풍성함은 연주자들의 완벽하고도 고도의 연주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이 말을 반증하듯 마일즈는 이렇게 얘기했다.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 다음에 다들 열심히 불어대고, 다시 또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러면 나면 끝. 이게 재즈 연주다." “하나의 솔로는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되기만 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작곡일 수 있다”
이미 마일즈 밴드를 떠나 독자적 활동을 펼치던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는 《Kind of Blue》 녹음 작업의 편곡을 맡으며 다시 전격 선택되었다. 빌 에반스는 이 앨범 작업을 거의 마일즈와 함께 창작 해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빌과 마일즈는 서로에게 가장 큰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이기도 했다. 빌은 앨범의 창작 과정에 대하여 이렇게 밝혔다. “편곡에 있어 단순성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Freddie Freeloader>나 <So What>, 그리고 <All Blues>등 어느 곡 하나 빠짐없이 구체적인 악보 작업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존 콜트렌, 캐논볼 애덜리,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가 스튜디오에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 앨범을 통해 번져나가기 시작한 모달-재즈의 모던하고 단순한 구성이 미국의 수많은 젊은 미니멀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미니멀 음악 작곡가로 분류되는 테리 라일리, 라 몬테 영, 스티브 라이히, 존 애덤스 등이 바로 그들로, 이들은 모두 《Kind of Blue》를 수없이 듣고 채보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음악에 직접 인용하기도 하며 그들 각자의 방법을 통해 새로운 미니멀리즘 음악의 영토를 전개시켜 나갔던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한결같은 의식은 다음의 말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될 뿐이지. 박물관이나 시골 장터 같은 데서 연주하는 그런 놈들 말이야. 음악과 사운드는 언제나 온 나라를 넘나들게 마련이고, 전에 머물던 곳이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 기를 쓴다는 건 말도 안 돼.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대중들은 일단 곡이 시작되면 혼란스럽게 전개되다가 종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좋아하지. 하지만 모든 걸 그렇게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는 없어. 내 음악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연주해주길 원해. 그러나 거기에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자리에 머물러 썩게 되지. 처음엔 좋아하는 것만 연주한다고 박수를 보내다가도 어차피 사람들은 언젠가 지겨워하게 마련이야. 어떤 식의 연주자라고 한 번 정해지면, 다른 걸로 승부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일세.
- 존 스웨드 지음,『마일즈 데이비스』
재즈 음악뿐 아니라 20세게 음악사에서 음악인들에게 가장 큰 영감과 영향력을 끼친 음반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Kind of Blue》를 다 듣고 나면 평온한 침묵과 푸른 고요가 우아하게 주변 공간에 스며드는 것 같다. 이는 앨범 전체를 들어 봐야만 경험된다.
그러니 꼭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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