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메시앙
-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Olivier Messiaen - Quatuor pour la fin du Temps)
‘현대음악의 성자’로 추앙받는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작곡가, 1908-1992) 두 작품을 2회에 걸쳐서 소개하려 한다. 첫번째 작품은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Quatuor pour ls fin du Temps) >. 그리고 두번째로는 인도음악의 영향이 깊게 배어있는 10악장 구성의 거대한<투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ila Symphonie)>이다. ('투랑갈릴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랑의 노래’ 를 의미하며 또한 운동과 리듬을 의미하는 리듬형식의 명칭이기도하다.)
메시앙은 평생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그 믿음을 자신의 작곡 세계와 분리하지 않았다. 그 음악적 색채감을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쏱아져내리는 빛에 비유하여, 그 음향을 ‘신학적 무지개’라 부르기도 한다. 1931년, 메시앙은 파리 상 트리니테(St. Trinité)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그리고 60여년간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수 많은 오르간 작품을 작곡 하였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바하와 비교되기도 한다.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정제된 청각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야 말로 ‘불가능의 매력’을 창조해내는 일이라는 점을 파리음악원 교수시절에 이미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던 작곡가답게 그의 수하에서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피에르 블레즈, 루이지 노노, 슈톡하우젠, 크세나키즈 등등)은 저마다 개성 있는 예술 철학에 바탕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며 20세기 중반 세계 현대 음악의 최전선을 형성하였다. 아방가르드를 이끄는 천재적 작곡가들의 스승이었으며 새로운 음악운동의 배후 조직자였지만 오히려 제자들의 음악보다 지금까지 그의 음악이 더욱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이유는 정제된 형식미와 청각적 색채감, 이와 동시에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메시앙 음악 자체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의 여러 작품들 속에는 숲과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에 대한 경외감으로부터 탐구된 새들의 음향이 독창적 스타일로 반영되어 있다. 그는 틈날 때마다 다양한 새들의 소리를 채보한 수천 건의 악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새의 카탈로그(Catalogue d'Oiseaux, 1956-58)’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새소리에 의한 새소리를 위한 음악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의 1악장에서부터 클라리넷의 속삭임 사이 사이로 절묘한 여름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다채롭고 신비한 소리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나는 요한묵시록에 대한 어떤 주석도 원치 않습니다. 단지 시간의 소멸에 대한 나의 바램을 표현했을 뿐 입니다." 작곡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작품 역시 성경의 요한 묵시록(10:1-7)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곡하였다고 하는데 무었보다 이 작품을 거론할 때 빠져서는 안되는 영화같은 이야기는 음악 감상의 감동을 배가시켜준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속에서 수용소 전체가 눈 속에 잠긴 상태였다. 악기는 엉망이었다. 파스퀴에의 첼로는 현이 3개밖에 없었고 내가 연주할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은 누를 수는 있었지만 다시 튀어 오르지 않았다. 옷가지 또한 우리를 비틀리게 했다. 나는 넝마 상태의 초록 재킷 하나를 걸치고 나무 고랑을 찬 상태였다. 청중은 사회 전계층이 포함되어 있었다.
메시앙 스스로가 묘사하고 있는 이곡의 역사적인 초연은 1941년 1월 15일 독일군이 운영하던 폴란드의 질레지아 포로수용소 내에서 5000여명의 동료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특히 5악장과 8악장의 첼로와 바이얼린 선율이 반복, 고조되며 마치 영원한 고요를 향해, 빛에 도달해가는 듯한 장엄하고 점점 고양되는 선율을 들으며 초연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영하 20도의 추위를 뚫고 모여 들어 이 낮선 음악의 초연을 들 었을 수 많은 포로들의 영혼을 꿰뚫고 수용소 가득 울려퍼지는 소리를 상상하며 감상보기 바란다.
이처럼 선율선이 분명한 5악장과 8악장은 서서히, 나즈막하게 시작하여 점점 듣는 이의 가슴을 어떤 숭고함으로 젖어들게 한다. 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음악들이 있지만 분명 인간의 영혼을 공명시키는 음악이 존재한다. 이런 소리의 공명을 듣고 있다 보면 종교와 이념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소리에 대한 경외감과 탐미적 감각이 더욱 날카롭게 살아날수도 있다.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단순한 음악 감상의 비결은 각 악장이 변화할 때마다 소리의 변화를 쫒아가보는 것이 아닐지.
깊은 침묵과 영원을 향해가는 듯 하던 소리가 마침내 멈추고 소리와 공명하던 상태에서 깨어나 일상의 현실과 마주하면 때론 침묵의 의미가 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소리 속에 내포되어 있던 보이지 않는 소중한 의미들은 오히려 음악이 멈춘 후, 그 침묵의 정적감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면 가능한 침묵의 상태를 오래 지속하는 것 뿐이다. 메시앙은 인간성에 대한 거울을 마주하게하여 그 빛의 반사를 소리를 통해 들려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을 통해 침묵을 더욱 강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내면의 신성(神聖)을 밝히는 것이 ‘음악의 힘’이라는 사실을 메시앙은 평생에 걸쳐서 확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새소리를 기록하고 있는 메시앙
작품은 8개의 악장마다 다양한 표정과 기법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발전-전개로 이어지는 통상의 음악과는 다르다. 작곡가는 시간의 소멸 통해 ‘영원한 나’를 찾아가는 듯하다. 곡을 통해 자연(밖)으로부터 인간의 영성(안)을 향하는 작곡가의 의지를 느껴보기 바란다. 시간의 소멸은 침묵속에서 찾을 수 있는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초연은 1941년 1월 15일 포로수용소 내에서 5000여명의 동료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시앙이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였다. 장 르 불라르가 첼로, 앙리 아오카가 클라리넷, 에띠느 파스퀴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수용소 안에서 악기 연주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찾아 완성된 의외의 구성이 이렇듯 불멸의 4중주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메시앙은 당시의 연주에 대해 "결코, 나는 그 만큼 주의깊게, 그리고 이해하면서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하였다. 이곡과 함께 감상하면 좋을 오르간 연주곡도 함께 추천한다. (Fête des belles eaux, 1937. https://youtu.be/nrYgm5MML58)
◈ ◈ ◈
* 아래는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각 악장에 대한 메시앙의 설명들이다. 이를 참고하며 깊은 음악감상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참고-메시앙, 《The_Technique_of_My_Musical(나의 음악어법)》, 1944)
1악장 'Liturgie de cristal (수정체의 예배)'
Bien modere en poudrioiemente harmonieux / 연주시간 약 3분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 새들의 눈뜸, 무수한 음과 나무 사이를 빠져나와 멀리 사라지는 트릴의 빛에 싸여 꾀꼬리들이 즉흥 연주를 펼친다. 이것을 종교적 플랜으로 바꾸어 놓는다. 하늘의 해탈의 정적을 얻게 될 것이다."
1악장은 두 개의 층을 가지고 구성된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선율을 반복하다가 점차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하게 고조되어간다. 반면 피아노와 첼로는 계속 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피아노 성부는 17개의 리듬가(rhythmic value)와 29개의 화성이라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법이 14세기의 '아이소리듬' 원리이며 엄격하게 반복되는 음악의 패턴은 바로 메시앙이 중세음악의 작곡기법에 매우 능숙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와 유사하게 첼로는 반복되는 15개의 음가 사이에서 5개의 동기를 가진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은 새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
2악장 'Vocalise, pour I'Ange qui annonce la findu temps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보칼리즈)'
Robuste, modere - Presque vif, joyeux - Modere - Presque lent - Modere / 연주시간 약 5분
"제1, 제 3부분이 강력한 천사의 힘을 나타낸다. 천사는 머리에 무지개를감고 몸은 구름에 싸여 한쪽 발은 바다에, 또 한쪽은 땅위에 놓는다. 피아노에 배당된 불루 오렌지 화음의 감미로운 폭포가 멀리서 들리는 종의 울림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성가풍 멜로디를 감싸준다."
천사의 노래, 즉 성가이다. 힘에 넘치는 피아노로 악장을 시작하며 제 2부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2옥타브 간격을 유지하면서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물방울'을 나타내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천국의 힘을 상기시킨다.
3악장 'Abime des oiseaux (새들의 심연)'
Lent expressif et triste / 연주시간 약 7분 30초
"심연, 그것은 슬픔과 권태의 '때'이다. 새들은 '때'와 대립한다. 이것은 별과 빛과 무지개, 그리고 환희의 보칼리즈로 향하는우리의 희원이다."
클라리넷의 독주이다. '심연 (abyss)'은 메시앙의 음악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무(無)'에 대한 상징, 그리고 오직 죽음만을 약속하고 강요당하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상징이다. 새의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그의 정신적인 환희, 해탈에의 중심적인 이미지는 계속해서 현실화된다.
4악장 'Intermede (간주곡)'
Decide modere, un peu vif / 연주시간 약 1분 50초
"스케르초, 다른 악장들에 비해서 외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멜로디를 순환시키면서 연관성을 맺고 있다."
메시앙의 악기인 피아노가 빠진 스케르초. 전 곡 중에서 눈에 띄게 선율적이며 또 리듬적이다. 클라리넷은 여전히 새의 소리를 흉내내고 있으며 바이올린과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주고 받는다. 작곡자는 휴식을 위해 이 악장에서 빠진다.
5악장 'Louange a I'Eternite de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Infiniment lent, extatique / 연주시간 악 8분 30초
"예수는 여기에서 '말씀'으로 고찰된다. 첼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장대한 프레이즈가 힘차고 감미로운 '말씀'의 영원성을 사랑과 경건함으로 찬양하고 있다."
첼로와 피아노만으로 연주되는 악장이다. 피아노의 단조로운 반주 위에 경건하기 그지없는 첼로의 선율이 도도히 흐른다. '말씀으로서의 예수'는 피아노의 반주를 동반한 첼로의 노래에 의해 기도되어진다. 'Infiniment lent, extatique'라는 악상기호는 '기쁨에 넘쳐서, 무한히 느리게'라는 의미이다.
6악장 'Danse de la fureur, pour lessept trompettes (7개의 나팔을 위한 광란의 춤)'
Decide, vigoureux, granitique, un peu vif / 연주시간 약 7분
"음악의 돌, 강철의 저항할 수 없는 움직임, 절망적인 운명의 거대한 벽, 자포자기의 얼음, 결정적으로악장의 말미에 이러저리 움직이는 공포의 포르티시모를 들으라."
4개의 악기가 계속해서 동일한 음형을 강하게 연주한다. 악장 전체가 강력하고 리드미컬한 테마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떠한 공포와 위엄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라틴어 전례미사의 'Tuba mirum' 같다고나 할까? 메시앙은 이 악장에서 체념과 공포를 상징하려 하였다. 그는 네 개의 악기가 어떻게 트럼펫의 소리를 암시하고, 결국에는 징의 소리까지를 암시하는지를 그림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7악장 'Fouillis d'arcs-en-ciel, pour I'ange qui anonce la fin du temps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무지개의 착란)'
Reveur, presque lent-Rouste, modere-un peu vif-Extiaque-Robuste,modere, un peu vif / 연주시간 약 7분 30초
"나의 꿈 속에서 나는 낮익은 색과 모양으로 분할된 화성과 멜로디를 보고 듣는다. 그리고서 이 변화하는 풍경 뒤에 나는 비현실속을 지나가고 초인적인 색채의 소용돌이치는 침투 속에 현기증나는 황홀경으로 빠져든다."
몇 개의 2악장 동기가 등장한다. 선율적이고 다이내믹한 동기들은 우선 서로 교차되고 그리고 분할된다.
8악장 'Louange a I'mmortalite de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Extrement lent et tendre, extatique / 연주시간 약 8분 30초
"바이올린의 장대한 독주, 왜 두 번째의 송가인가. 이 송가는 특히 예수의 제 2의 모습, 즉 인간 예수로서 육체화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소행한 '말씀'으로 향하고 있다. 고음역의 정점에 이르는 온화한 고양은 인간이 '신'에게, 신의 아들이 '성부'에게 피창조물이 '천국'을 향하는 상승이다."
5악장에 대응하는 악장이다. 5악장과 마찬가지로 E장조이며 이번에는 '극도로 느리고 편안하게, 기쁨에 넘쳐'라는 악상기호를 붙이고 있다. 피아노의 반주를 받는 바이올린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신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음악은 과거의 음악으로부터 대단히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이다. 여기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지만 마찬가지로 어떠한 단절도 없었던 것이다.
작곡에 있어 구조주의도 인상주의도, 음렬주의의 작곡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색채적인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있을 뿐이다.
- 메시앙
글_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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