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당해 밝히려 하지 말라"
2014년 입동,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와 함께 낭송Q시리즈의 시즌 1의 동청룡편에서부터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까지, 그리고 2016년 봄 낭송Q시리즈의 시즌 2인 샛별편과 원문으로 읽는 디딤돌편의 탄생까지 대한민국 유일의 낭송 전문 출판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꾸준히 낭송책을 펴내 온 북드라망출판사. 그리고 그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나란 여자. 정말이지, 아무도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굳이 고백하자면, 내가 가장 사랑하여 내 입에 딱 붙이고 다니는 고전 구절은 우리 낭송Q시리즈의 고전 중에는 없다. (내가 우리 낭송Q시리즈의 고전들을 안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는 마시길!) 하여간 그것은 바로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이다.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리하여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본분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아니, 무슨 억울한 일을 그렇게 당하고 살기에 저 구절을 입에 딱 붙이고 다닌다는 것인가 하겠지만, 그간 살면서 그렇게 억울했던 일도 사실 별로 없다(응?).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내가 열두 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때는 보통 담임선생님이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지만 우리 때는 특별히 실과였던가, 아무튼 무슨 과목 하나를 다른 선생님이 가르쳤다. 그 수업 시간이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휘파람을 부는 거다. 나는 나름 범생으로서 그러지 말라고 주의도 줄 겸 뒤를 돌아서 그 친구를 쳐다봤는데 그 친구는 너무도 태연하게 안 그런 척을 했다. 뭐 일단 바로 앉고 다시 수업을 듣는데, 또 휘파람 소리가 나고, 난 또 뒤를 돌아보고, 친구는 또 잡아떼고, 그러기를 여러 번. 드디어 선생님이 친구와 나를 교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이유도 묻지 않고 친구와 나의 뺨을 갈기기 시작하는데…, 나는 집에서는 미제 빗자루(진짜 단단하다!)가 부러지도록 맞을 정도로 맷집이 좋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선생님들한테 그런 식으로 맞아 본 적은 없었다. 나름 범생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선생님도 나를 꽤나 예뻐했던 양반이었다. 그 분이 기술자라 그랬던 건지, 내가 맷집이 좋았던 건지 그렇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없이 따귀가 오가는 동안 좀 억울했다. 내가 휘파람을 분 것도 아니고, 수업을 방해하지 말란 의미에서 뒤를 돌아본 것인데 그게 이렇게 뺨을 맞을 일인가, 나 참.
어찌어찌 수업은 끝났고, 그날 종례 후 담임선생님이 나와 친구를 따로 불렀다. “맞았다면서?” “네.” 맞고 나서는 울지 않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보통 울음보가 터지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나 좀 짱인듯!). 사실 너무 황당해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다음에 이어진 담임선생님의 워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띠용~. 그 뒤로도 뭔가 다독여주는 말이었을 텐데 저 말이 너무 강렬해서 다 잊어버렸다. 뭘 잘못했기에 맞았느냐, 그러기에 수업 시간에 왜 그런 짓을 하느냐,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라니. 어쨌든 그 말로 모든 미스터리는 풀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한테 맞은 것이 아무리 속상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동료 교사를 지칭하여 ‘미친개’ 운운한 것은 (담임선생님도 교양 있는 분이었다. 결코 걸걸한 분이 아니었다) 아마도 나와 친구를 비롯한 아이들은 몰랐을 어떤 일이 교무실에서 있었고 나와 친구가 그 화풀이를 당한 거란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아, 어른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나는 뒤끝이 좀 더러운 편인데(흠흠), 그럼에도 날 때린 선생님 뒤에서 이를 갈거나 하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는 어른의 비겁함을 솔직하게 드러내 주었던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담임선생님은 이 정도로만 얘기해도 내가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게 아닐까? 난 조숙했으니까. 음하하하하하) 담임선생님이 고마웠고, 어쨌거나 그 일로 분명 내가 조금 더 성장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수업 중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습관도 생겼고^^ 이런 건 트라우마인가?ㅋㅋ). 본의 아니게 결과적으로는 억울함이 수행이 된 셈이었다. 몸으로 겪었기에(응?)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이 사무치게 와 닿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아무튼, “억울함을 당해 밝히지 말라”, “억울함을 수행의 본분으로 삼으라”는 이 말씀은 참 좋은 말씀이지만 나쁜 점도 있다. 당최 친절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립문자’라고 해도 그렇지, 억울함을 밝히는 것이 왜 허망한 것이며, 그걸 수행으로 삼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질 않는다. 안 그래도 억울해 죽겠는데 답답해 죽을 지경까지 이르기 전에, 이럴 땐 『낭송 격몽요결』에서 빨리 해답을 찾아야 한다. 145쪽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방하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비방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면 스스로 꾸짖고 마음으로 뉘우쳐 잘못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잘못이 적은데 그가 보태어 말했다면 그 말이 지나쳤을지라도 나에게 실제로 비방을 받을 만한 싹이 있는 것이니, 전에 저지른 잘못을 쳐내어 털끝만큼도 남겨서는 안 된다.
나에게 본래 잘못이 없는데 그가 거짓말으로 날조했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진실과 거짓을 따지겠는가. 또 그 허황한 비방은 귀를 스쳐가는 바람이요, 허공을 흘러가는 구름과 같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와 같이 비방이 생겼을 때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고칠 것이 없어도 더욱 노력하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나의 허물을 듣고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 허물이 없다고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이이, 『낭송 격몽요결』, 김해숙 풀어 읽음, 북드라망, 2016, 145~146쪽
‘(감히!) 누가 (어떻게!) 나를?’이라며 최초 유포자(?)를 찾기보다 나부터 살핀다. “비방받을 만한 행동”뿐 아니라 “비방을 받을 만한 싹”까지 찾아보아야 한다. 대개 없을 리 없다(--;).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 하기보다 나부터 바로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귀싸대기 사건’만 보더라도 뒤에서 휘파람을 불든 꽹과리를 치든 그걸 제지시키는 건 내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보기엔 그냥 수업시간에 뒤돌아 장난치는 애에 불과했을 것이다(뭐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건 아니다;;). 아무튼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나에게 정말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거짓으로 날조한 경우, “귀를 스쳐가는 바람”과 “허공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무시하라’는 것이다(책의 제목의 격몽‘요결’임을 생각할 때 이보다도 ‘중요하고 간단한 비결’일 수는 없다^^). 그가 망령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태여 바로잡아줄 필요도 없다. 그저 나에게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고칠 것이 없어도 더욱 노력하면” 그뿐! 하지만 "나에게 본래 잘못이 없는" 건 어렵고, 내 잘못을 "귀를 스쳐가는 바람"이나 "허공을 흘러가는 구름"으로 여기기는 쉽다. 해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망령된 사람”을 “미친개”로 바꿔 읽으며 혼자 슬쩍 웃고 말았다(흠흠). 아직 '격몽'(擊蒙)이 덜 되어 그런 것이니 부디 용서하시길!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 씨앗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행한 체험일수록 좀 더 나아지기 위한 기회가 된다." (0) | 2016.05.18 |
---|---|
『금강경』씨앗문장 :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 것, 그게 좋다 (0) | 2016.05.11 |
공부하기 가장 좋은 자세? 어떤 자세가 가장 독서하기 좋을까요? (2) | 2016.05.09 |
동거인에게 "작은 일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일은 없다" (4) | 2016.03.28 |
『낭송 천자문/추구』 그리고 해피(?) 엔딩을 하려면 진심을 다해서... (0) | 2016.03.23 |
낮에는 조선의 백수, 밤에는 한국의 백수와 놀았다더라 (0) | 2016.02.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