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먹은 건 좀 치우면 안돼?"
은밀한 곳보다 더 잘 보이는 곳은 없다.
작은 일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일은 없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막현호은 막현호미
- 증자·자사 지음. 『낭송 대학/중용』 김벼리 풀어 읽음, 북드라망, 79쪽
위 문장은 『중용』 1장 중 한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이 작고 소소한 일상,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먹은 것은 깨끗이 치우는 일 같은, 내가 생활한 자리들을 잘 치우는 일처럼 사소한 일들을 해나가는 경우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상을 잘 꾸리는 것이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며, 이렇게 작은 일들부터 잘해 나가는 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동생이다.
나는 지난달에 부모님과 동생과 살림을 합쳤다. 원래는 부모님과 동생의 합가가 먼저 결정이 났는데, 서울 근교로 집이 구해지면서 나도 들어가게 되었다. 여러 가지 걱정이 되었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시면서 사이가 다시 좋아졌고, 내가 담배를 끊고 난 다음에는 내 생활에 비밀이 하나 사라져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출퇴근 시간이 워낙 달라서 평일에는 얼굴도 못 보니 서로 괴로운 일은 생기지 않겠다 싶기도 했다. 나도 혼자 사는 데 지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유독 외로워하시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서면 저렇게 인형들이 현관을 바라보게 놓아두셨다. 집에 올 때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어쩌다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조금 괴로웠다.
날 망설이게 한 사람은 실은 부모님보다는 동생이었다. 동생은 자정에 출근해서 정오에 퇴근한다. 도매시장에서 일을 하는데 일도 궂고 힘들뿐더러 처우도 좋지 않다. 그 일을 한 지는 6~7년쯤 되는데 어느 정도 경력도 쌓였고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던 모양이지만 가게에 대한 의리를 지키느라 옮기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일을 위해 동생이 서울로 분가를 하면서 동생과 나는 같이 살게 되었다. 합쳐서 5년 정도를 같이 살았는데, 나는 그때 절반 기간 정도를 백수로 보냈고 동생은 막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터라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백수인 나보다 동생이 월세를 더 많이 냈고, 심지어 동생에게 종종 용돈도 받았다.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나보다 크기도 했고, 통도 크고 결단력도 있는 편이어서 그 반대인 내가 의지하고 지내는 부분이 많았다. 오히려 용돈을 주고, 어느 정도는 나를 책임져 주는 동생을 주변에 은근슬쩍 자랑도 하고 다니고 그랬다. 이런 동생을 누구보다 아끼고 좋아하는 나였지만, 결국은 재계약을 기점으로 우린 갈라섰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주 간단히 말하면 동생은 청소를 너무 안 했다.
동료 분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깔끔한 편에 속한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깔끔한 사람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가 제일 위생관념이 무딘 편인데, 집에서 이런 걸로 잔소리라도 하고 있으면 내가 무슨 결벽증이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동생은 나와 다르다. 먹은 자리나 주방에 먹다 남은 음식과 쓰레기를 켜켜이 쌓아둔다. 그러다가 포화상태가 되면 가장 큰 쓰레기봉투를 사서 몰아서 버린다. 좁은 집에 사는 자취생이 대개 그렇듯이 종종 구입한 물건이 수납을 초과해 제 자리가 없는 물건들이 늘 방황하는 상태였고, 바닥이라는 바닥을 모두 채워 놓곤 했다. 같이 사는 동안에 물건이나 빨래를 어지르는 것은 괜찮았지만 음식물쓰레기를 처리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늘 화를 냈다. 동생이 바쁘니까 참고, 이거 이거는 잘못이니까 고쳐 달라는 말을 하기 싫어서 참다가 뻥하고 터지는 날이면 동생에게 온갖 못된 말을 골라 해가며 화를 냈다. 그러면 사람 상대를 잘하고 머리가 좋은 동생은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 갱생을 약속하면서 나를 달래고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실은 나와 동생의 문제는 동생의 위생관념에 있지 않다. 내가 원하는 일들을 별거 아닌 일들로 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동생에게 이런 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먹은 것을 치우는 일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누가 해도, 언제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를 가꾸고 당당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아주 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고, 다른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작은 일’에 절절매는 나를 걱정하기까지 했다. “언니,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나에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어느 날인가 또 참지 못한 분노와 경멸에 휩싸여 자기가 어지른 것을 치우는 것이 얼마나 마땅한지를 말하고 있을 때 날 달래며 동생이 말미에 한 말이다. 오 마이 갓! 동생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마치 퇴근한 남편에게 “당신은 하루 종일 집에서 뭐했어?”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니가 먹은 거 내가 치워서 니가 곰팡이와 벌레가 안 꼬이는 집에서 살 수 있는 거고, 내가 빨래해서 개 놓아서 니가 그 옷을 입고 출근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분노에 차서 대답했을 때 동생은 아주 심플하게 물었다. “누가 하래?” 그래서 헤어졌다. 계속 같이 살다가는 영영 동생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일상, 내가 든 자리들을 잘 정리하면서 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정한 내 삶의 수행법이었다. 그렇다고 동생의 삶까지 보살피며 살 수는 없었다. 그 정도 역량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아웃오브 안중' 할 수도 없었다. 내 일상까지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싶었다. 동생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먹고 눕고 쉬는 것이 얼마나 안락한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 먹은 것 정도는 치워줬으면!!
같이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동생은 아주 가끔 예전처럼 테이블 위를 어질러놓는다. 며칠 전 몸이 좀 아파 집에 일찍 들어간 날에는 너무 화가 나서 곤히 자는 애를 깨워 그 자리에서 몽땅 치우게 하고 싶었다. 같이 살기로 하며 약속한 "공동구역은 어지르지 않는다"는 말을 앞세워 가며 네가 자처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맨 처음 인용한 문장은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야 한다.
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
- 증자·자사 지음. 『낭송 대학/중용』 김벼리 풀어 읽음, 북드라망, 79쪽
동생이 잘한 것은 없지만, 과연 그것이 자초한 일이라고 윽박지르며 동생의 하루를 망가뜨려야 할 만큼 큰일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위 생각은 굉장히 못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작은 일로 만들어 버리는 무심함에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나중에 동생에 더 큰 불행에 직면했을 때 “그것 봐, 내가 뭐랬어”를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연장이다. 내가 매달려 있던 그 작은 일들을 하찮게 여긴 대가를 보라며 잔뜩 잘난 척을 하고 싶다. 얼마나 못된 마음이란 말인가. 그리고 내 몸이 아프다고 누구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냥 조용히 동생이 어지른 것들을 한 구석에 밀어놓고 내 식사를 챙겨먹고 TV를 보며 쉬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동생이 이렇게 어지른 날보다 어지르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자기가 먹은 걸 싱크대에 잘 모아놓는 일이 동생에게는 얼마나 큰 변화인가. 그런걸 알아주는 것도, 같이 사는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동생이 어지른 것을 내가 치우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득도할 생각은 없다. 자기가 어지른 것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
여전히 나는 최대한 늦게 먹은 것을 치우고, 미룰 수 있는 일들은 미룬다. 늦게 잠든 대가로 때때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출근을 한다. 때론 자매의 작은 불행에 고소해하고, 엄마의 사랑에 짜증으로 답한다. 그냥 이런 것들에 후회하고 사로잡히는 것을 덜 하고 싶다. 일상을 소소하고 즐겁게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못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일단 나 먼저 정진하는 것으로 ‘그것 봐, 내가 뭐랬어’를 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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