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 기대하거나, 바라지 말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살아 있는 모든 중생들, 곧 알에서 태어난 중생, 모태에서 태어난 중생, 스스로 변화해서 태어난 중생, 형체가 있는 중생, 분별이 있는 중생, 분별이 없는 중생, 분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중생 모두를 번뇌가 다 없어진 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모두 제도했을지라도, 참으로 제도되는 중생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수보리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자아라는 생각[我相], 개인적인 윤회의 주체라는 생각[人相], 어떤 실체에 의해 살아있다는 생각[象生相], 개체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생각[寿者相] 등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화 풀어 씀, 『금강경』, 법공양, 18쪽
부처님은 대체로(?) 옳거나, 그른 것을 말씀하지 않고, '좋음'과 '나쁨'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이를테면, '수많은 중생을 열성으로 제도하고서 그들이 참으로 제도되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편이 '옳다'가 아니라 '더 좋다'는 느낌이랄까.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면 되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되더라도 '옳은 것'이므로 당연하다 여길 테니, '좋다'라고 여기는 것이 그나마 '아상'(我相)에서 멀어지는 길일 것이다.
'옳다'라기 보다는 '좋다'!
'제도해야 할 중생'이란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스스로 힘을 내어 나 자신을 열심히 제도하기는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나'란 마귀와 같아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제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에 대한 기대를 버리려고 애를 쓴다. 화를 내거나, 슬픔이 몰려오는 어느 시점에선가 그 동안 수련한 바가 생각나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로써 나의 수행이 성공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는 어떤 '옳음'이 결부되고 마는데, 무엇인가 하면, '수행'을 투입하니 '수행의 성공'이라는 산출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시 같은 상황을 맞이하여 수행한 바가 발현되지 않으면 나는 절망하고 만다. 좋지가 않다.
나에게나 남에게나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그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지 일어나지 않든지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그게 좋다. 이를 매사에 확대해 보아도 마찬가지. 무슨 일이든 간에 '바라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 남은 여생을 그런 식으로 산다면 보살은 아니라도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차!)
"나에게나 남에게나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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