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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공부하기 가장 좋은 자세? 어떤 자세가 가장 독서하기 좋을까요?

by 북드라망 2016. 5. 9.


이건 운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 읽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몸을 쓰는 무언가를 배울 때 대부분 제일 처음 익히는 것은 바른 자세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운전을 배울 때도 자세부터 배웠다. 운전을 예로 들면, 운전할 때의 바른 자세란 허리를 세워 적당히 기댄 상태에서 팔이 가볍게 구부러지는 거리에 핸들이 놓이도록 시트를 조정한다. 그 위치에서 룸미러와 사이드 미러가 잘 보이도록 조절한다. 두 발은 각각 액셀과 브레이크 위에 가볍게 얹어 둔다. 가속을 하지 않을 때 왼발은 액셀 옆에 있는 발받침에 발을 올려 두면 된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며 양 손을 핸들에 얹고 운전한다. 뭐 이런 것들. 이는 모두 핸들과 기어 조정과 시야 확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운전하기에 최적의 자세라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운전 중 차를 잘못 조작하게 되거나, 시야 확보가 어려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모두 사고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최적의 자세인 거다.




기본자세를 익힌 후에 나름 심화 과정이 되고 나면 나만의 자세를 적용해보기 시작한다. 역시 운전을 예로 들면 많은 사람들은 한 손으로 운전하는 것을 편안해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창 운전을 많이 할 때는 오른발로만 액셀과 브레이크를 제어했다. 그때 왼발은 어디에 있었는지가 중요한데, 액셀 옆 발받침대가 아니라 시트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한쪽 무릎을 세워 시트 위에 얹고 한 발만으로 운전하곤 했었다. 나는 이 자세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했는데, 사실 좀 위험하다. 이 자세는 필연적으로 허리를 기울게 만든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보통 신발을 벗고 시트 위에 올려놓는데, 그러다보면 바닥에 굴러다니는 신발이 엑셀이나 브레이크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아무튼 그때는 그 자세처럼 편한 자세가 없었다. 물론 지금보다 날씬해서 가능하기도 했다. 이렇듯 나만의 자세는 나의 체형이나 습관에 맞춘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버릇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정자세가 훌륭한 교정 기준이 된다. 나는 내가 발을 올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나 지금이나 겁은 많아가지고) 벗어놓은 신발이 액셀이나 브레이크 밑에 들어가지 않도록 시트 밑으로 차 버리는 바람에 몇번인가 힘들게 한쪽 신발을 찾아 신은 다음에, 실수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을 몇번인가 액셀을 밟은 다음에(^^;;) 왼발을 시트 위에 올려놓지 않도록, 액셀을 왼발로 조작하도록 노력했었다. 그럴 때마다 정좌를 생각하고, 바르게 앉으려고 노력했다.


자세에는 그 행동을 대하는 태도가 담기기 마련이다. 당시의 나는 운전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너무나 쉬웠다. 그때가 딱 운전을 연달아 하게 된 지 2년에서 3년쯤 되었을 때였다. 그 ‘운전이 익숙해져서 방심하다가 가장 사고가 많이 난다’는 그 3년차가 된 것이다. 재미있고 쉽다고 해서 꼭 방심하게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당시의 나는 어렸고(반사도 지금보다 빨랐다^^;;;) 방심이 숙련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편한 자세를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다행히 그 3년차를 큰 사고 없이 논두렁에 차바퀴가 빠진 걸로 넘어갔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운전을 오래 쉬어서 감을 잃기도 했고, 지금의 나는 운전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안다. 사고가 난다는 것은 돈뿐 아니라 생명이 걸릴 수도 있다. 그것도 나뿐 아니라 무고한 다른 사람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운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드시 긴장하고 방심하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법규를 지켜가며 방어운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일상적으로 운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이렇게 마음가짐이 바뀐 다음부터 발은 자동적으로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몇 번 올려보려고 했는데,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세는 당연히 처음 배웠던 그 ‘바른 자세’로 돌아갔다. 심지어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음악도 틀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지만, 책을 읽는 행동 역시 몸을 쓰는 일이다. 어떤 바닥이든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손으로 책을 받치고 넘기며 눈으로 읽는다. 필요할 때는 손으로 메모를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들어가며 책을 읽는다. 당연히 책을 읽는 자세는 중요하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책 읽는 바른 자세를 배웠고, 배울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 동안(^^;;) 교과서를 포함한 책을 읽어왔다. 그 긴 시간을 거치며 학교에서 배운 정자세를 지나, 당연히 나만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나만의 자세 말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억하기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책을 읽을 때는 한 자세로 시작했다. 보통 바닥에 앉아 침대나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책을 얹고 보는 자세였다. 그러다가 다리가 불편하면 그 상태에서 아빠다리를 하기도 하고, 가끔 뻗기도 하며 다리만 바꿔가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부터인가 무릎을 세우면 발목도 아프고 골반도 불편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엉덩이가 너무 배겼다. 나는 그때까지 엉덩이가 배긴다는 것을 느껴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냥 관절이 아프고 엉덩이가 배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 자세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부터 내가 여태껏 어떤 식으로 책을 읽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떤 식으로 앉아도 불편하고 이게 내 자세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다. 방황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대체 난 어떤 자세로 책을 읽어야 하나...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반듯하게 앉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뜻을 지극히 해야 한다. 자세히 생각하면서 책을 깊게 읽어 글의 의미를 낱낱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 이이, 『낭송 격몽요결』, 김해숙 풀어 읽음, 북드라망, 2016, 65쪽


이 구절을 읽고 조선 선비들이 책을 읽는 자세를 생각해보았다.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작은 좌식 책상에 책을 펼쳐 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 책을 응시한다. 고개는 살짝 숙이고 있고 손은 페이지를 넘길 때를 빼고는 가지런히 모은다. 이 자세를 계속 유지하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책에 대한 공경의 표시다. 방심해서 책의 내용을 넘기지 않겠다는 마음, 집중해서 그 뜻을 지극히 해보겠다는 마음 말이다.


30대 초반의 나는 내가 책을 대하는 버릇을 크게 의심해 왔다. 너무 많이 띄어 먹고, 읽으면서 종종 딴 생각을 한다. 어릴 때는 책 읽기와 딴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는데(물론 착각이었을 거다), 지금은 딴생각을 하다보면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에 회의가 계속 되고 있는 와중에 여태껏 해오던 자세까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나의 책 읽는 자세가 나쁜 습관을 불러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책 읽기를 새로 배우고자 한다면 나쁜 습관을 털어내야 한다. "반드시 용맹스러운 뜻을 크게 발휘해서 마치 단칼에 뿌리를 통쾌하게 끊어 내듯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내어 털끝만큼도 남은 줄기가 없도록 해야"(『낭송 격몽요결』, 38쪽)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을 마음을 집중하고 지극히 읽고 싶다면, 엉덩이 밑에 꺼지지 않는 푹신한 쿠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배운 그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상 의자에 앉아 허리를 세워 기대고 30cm정도 거리에 책을 세워들고 읽는 그 자세 말이다. 그렇지만 집에서 혼자 그 자세를 하고 있으면 너무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부끄럽고 싫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마음이 들 때 다시 『낭송 격몽요결』을 펼쳐든다.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고 독실하지 못해 우물쭈물 세월을 보낸다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마치게 되었을 때 어찌 성취한 것이 있겠는가."(34쪽) 결정 장애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이런 질책이 도움이 된다. 구용과 구사에 앞서 이 구절을 먼저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놔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학자가 된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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