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정진! 정진!
연재는 마치지만, 공부는 계속 된다!
주역은 점치는 책인가?
어떻게 <주역서당>을 마무리 할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처음 던졌던 질문에 답하는 걸로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하는 묘안이 떠올랐다. 수미일관! 2년 전, 처음 <주역서당>을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을 기억하시는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당연히 기억 못 하시리라. 나도 조금 전 인트로 '주역은 점치는 책인가'(http://www.bookdramang.com/589)를 다시 읽고서야 생각이 났다.
단도직입으로 질문에 답하자면 대답은 ‘그렇다’다. 주역은 점을 치는 점서다. <주역서당> 독자라면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눈이 시리도록 보고 들은 얘기겠지만 주역은 천지자연의 변화를 담은 책이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천역:天易)을 보고 글로 옮긴 책(서역: 書易)이 곧 주역이라는 말이다. 고로 주역을 알면 저절로 내 운명의 지도를 볼 수 있다. 운명도 결국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길흉화복의 변화니까. 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들여다보기 위해 주역을 펼쳤다.
주역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한데 알다시피 주역으로 진입하는 게 결코 간단치가 않다. 주역으로 가는 길 도처에 우리를 까막눈으로 만들어버리는 한자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비유와 묘사로 이루어진 문장, 아무리 째려보아도 풀리지 않는 암호 같은 그림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괘는 모두 64개나 있다. 어찌나 길고 지난한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의 책처럼 운명의 길흉화복이 단 몇 글자로 눈에 들어오는 마법은 주역에선 펼쳐지지 않는다.
저절로 우리는 투덜거리게 된다. “뭐야 주역(周易)은 ‘바꿀 역(易)’, ‘쉬울 이(易)’라며, 천지자연이 변화하는 이치가 간략(簡)하고 쉬워서(易) 주역이라더니 순 뻥이자나.” 우리 <주역서당>팀도 처음엔 엄청 투덜댔더랬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이걸 가지고 글을 쓰라니!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걸 남에게 이해시키라고? 한데 이 일을 격주로 이 년 가까이 하다 보니 이젠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주역이 이렇게 생겨먹은 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일종의 트릭(trick) 같은 거 말이다.
주역의 트릭, 읽고! 새기고! 저절로 행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역이 어려운 건 시간 탓이라고. 주역이 만들어진 때부터 현재까지는 몇 천 년이라는 시간차가 있다. 우리가 쉽사리 주역에 접근하지 못하는 건 이 시간의 간극이 빚어낸 수많은 변화 때문이라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과거 사람에게도 주역은 난해한 텍스트였다. 오죽하면 인류 최고의 스승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공부 멘토인 공자도 위편삼절(韋編三絕)하면서까지 주역을 읽고서야 지천명(知天命)했을까.
이후 공자는 주역을 좀 더 쉽게 풀어쓴 열 가지 해설서를 짓는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를 십익전(十翼傳)이라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좀 더 수월하게 주역을 공부하도록 한 공자의 배려였다. 한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우리는 공자의 배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확 뜯어고쳐서 재밌고 쉽게 풀어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공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역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세 성현(복희, 문왕, 주공)의 가르침을 본받을 뿐, 마음대로 창작하지는 않은 것이다.(술이부작:述而不作) 나는 여기서 감히 발칙한 가정을 하나 해본다. 공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은 거라고.
작자미상, <위편삼절>《공부자성적도》, 1904년, 목판채색, 27.6×37.8cm,장서각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역을 만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읽는 것! 우리가 경험했듯이 한두 번 읽어서는 아무것도 눈에 밟히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주구장창 읽는 수밖에 없다. 읽는다는 건 단순히 앎을 쌓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몸에 새기는 일이다. 예컨대 과거의 선비들은 하나의 텍스트를 몇천 번, 몇만 번, 심지어는 몇억 번에 걸쳐서 읽었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조선 현종 시대의 문신이자 시인인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열전」을 1억 1만 3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몇백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저절로 기억하게 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저렇게나 고약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럼 대체 왜?
예상치도 못했던 환란이 닥쳤을 때, 우리는 종종 머릿속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을 발견한다.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급박한 순간이 닥치면 우리는 결국 평소의 습관대로 행동하고 만다. 익숙한 습관은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법. 결국 우리는 매번 똑같은 모양새로 좌충우돌한다. 과거의 선비들은 이것을 경계했으리라.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몸이 알아서 반응하도록, 무의식적으로 배움을 행하도록 텍스트를 몸에 새긴 것이다.
내 생각에 주역은 읽고-새기고-저절로 행하는 패턴이 몸에 새겨지도록 구조화된 텍스트다. 이렇게 인체공학적인(?) 책이 있다니! 먼저 한자에 문리가 트이고, 주역의 지혜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다. 그전에는 대강도 맛볼 수 없다. 모 아니면 도! 완전히 습득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그렇게 읽다보면 몸에 새겨지고 저절로 행하는 단계가 온다. 아마도. 물론 나도 아직 경험이 없는지라 추측하는 거지만 나는 나의 추측을 확신하다. 추측의 근거이자 완벽한 모델인 공자를 보라, 주역을 읽고 지천명하지 않았나.
읽고-새기고-저절로 행하고
자 이제 주역이 어떤 책인지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는 대강은 살펴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역을 공부하는 이유, 주역을 몸에 새겨야 하는 이유로 끝을 맺고자 한다. 인간은 천지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고로 천지자연의 변화에 따라 언제 물러나고, 머무르고, 나아갈지를 선택하는 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요체다. 주역은 그것을 풍부한 레퍼토리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여 주역을 익힌다는 건 천지자연의 변화를 몸에 체득하는 일임과 동시에 내 운명을 바르게 조율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종종 남을 통해서 내 삶과 운명의 비의를 듣고자 한다. 한데 이건 엄연한 반칙이다. 점을 치기 전에 엄연히 지켜야 할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궁리해보아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점을 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점은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란다. 자 운명이 궁금하신가? 우리 손에 주어진 주역이라는 훌륭한 고전이 있다. 함께 끝까지 궁리해보지 않겠는가?
에필로그
북드라망 블로그에는 다양한 ‘서당’ 시리즈가 연재됐다. <본초서당>, <혈자리서당>, <절기서당>, <별자리서당>. 이중에서 <혈자리서당>, <절기서당>, <별자리서당>은 이미 책으로 출판되어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만나 볼 수 있다. 우리 <주역서당>은 다른 서당 시리즈에 비해 한발 늦게 시작한 데다 64괘라는 먼 길을 빙빙 돌아오느라 이제야 겨우 피니시 라인(finish line)에 도착했다.
피니시 라인에 서고 보니 앞서 이곳을 지났던 선배 서당생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얼굴에는 끝을 맺었다는 기쁨보다는 무언지 모를 차분함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고민이 있고,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게 참 의아했다. 끝났으면 후련하고 기쁠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풀이 죽었지? 연재 일정에 맞춰서 책 읽고 글을 쓰느라 힘들었나?
아... 이제야 선배 서당생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연재를 마치는 게 곧 공부의 완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분량이 끝나서 연재는 마치지만, 내가(아니 우리 <주역서당>팀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멀다는 걸 알겠다. 어쩌면 <주역서당>을 마치며 우리가 얻은 가장 값진 결과는 현재 우리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됐다는 점이 아닐까.(우리는 이제야 주역이라는 산맥 끝자락에 있는 작은 언덕을 넘었다.) 우리는 지금의 아쉬움과 주역 공부의 갈망을 동력 삼아 앞으로도 정진 또 정진할 생각이다. 그게 어떤 방식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독자 여러분도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끝)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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