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굿 바이~ 임신 톡톡, 죽을 때까지 태교가 필요하다

 

굿 바이~ 임신 톡톡,

죽을 때까지 태교가 필요하다


 


총명함의 정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ADHD 치료 약으로 알려진 항정신성 약물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원래 이 약물은 우울성 신경증, 수면발작인 사람에게 중추신경을 진정시켜서 치료하는 약이라고 말한다. 일반인이 이 약을 복용하면 신경과민, 불면증, 식욕감소, 두통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만 불면에도 피로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약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것은 많은 정보를 몸에 저장시켜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마약에 가까운 약을 복용하게 만든다. 그래야 좋은 대학을 가서 남을 이길 수 있으니까. 지금의 총명함은 좋은 스펙을 얻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몸의 원리로 보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동의보감에도 머리가 좋아지는 약들이 등장한다. 이름만 들어도 총명해질 것만 같은 ‘총명탕’도 있고 공자와 주자의 이름을 내건 약들도 등장한다. 그 이름을 보면 정말 먹고 싶어진다. 그 풀 네임을 소개하자면 주자처럼 독서 할 수 있다는 ‘주자독서환’이고 공자처럼 대성할 수 있다는 ‘공자대성침중방’이다. 이 약을 먹으면 주자나 공자처럼 된다니 누가 혹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 약에 붙은 동의보감의 멘트는 더 자극적이다. 이 약을 먹으면 건망증을 치료하고 총명해지며 심지어 천 마디 말을 외울 수 있단다. 도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말 이걸 마시면 정신이 번쩍들고 총명해지나요?

 

근데 처방된 약재들의 약성을 꼼꼼히 따져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약성은 정말 별거 아니다. 들뜬 마음을 안정시키고 막힌 것을 뚫어 주어 기혈의 순환을 원활히 해주는 것이 치료의 전부이다. 결국 몸의 순환이 총명함의 비결인 것. 약의 이치가 그러한데 요즘 시대에 총명해진다는 이름만 믿고 복용해 보았자 말짱 도루묵이다. 기혈 순환을 위해 잠이 더 오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이 우리를 속인 것인가? 그럴 리가. 총명함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동의보감의 총명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막힌 몸을 뚫어주는 일이다. 몸이 막히면 생각도 막히고 관계도 막히며 삶도 막힌다. 결국 총명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통하는 신체가 되는 것에 있다는 말씀! 솔직히 생리 대사가 왕성한 아이들에게 이런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 뚫린 하수구에 뚫어뻥을 들이붓는 격일 수도 있다.



이제마의 고백, 속이냐? 나도 속인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삶이 편안해질 줄 알았다. 웬걸? 나이가 들수록 편안은커녕 불안은 증폭되고 길을 잃었다. 근데 언제 길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아 있긴 했다. 정규 교육은 명실상부하게 선명한 길이 아니었던가. 근데 그 길이 내가 원한 길이었나. 그건 절대 아니다. 당시 정규 교육이 싫어서 빨리 어른 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나. 여전히 내 변덕은 죽을 끊고 있다. 한데 이런 불안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불혹은 가장 유혹이 많은 시기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니. 그럼 언제 안정이 되고 편안해지는 걸까? 이런 고민 중에 난 복음을 들었다. 사상의학으로 잘 알려진 이제마 선생의 고백을 듣고 어찌나 마음이 편해지던지 막혔던 체증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경계(警戒)한다는 것은 자신의 진실을 돌이키는 것인데 속이려는 마음을 벗어나지 못해서 여러 번 반복하고 여러 번 잃으니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금년에 나이가 오십칠 세인데 속이는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하므로 더욱더 스스로 경계하니 속임을 벗어난다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다. 속이는 마음이 있어서 속이는 짓이 되지만 속이는 마음이 생겨도 속이는 짓을 하지 않고 진실을 돌이키면 그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놓친 마음(放心)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격치고_반성잠, 낭송 동의수세보원, 23쪽


뭔 말인고 하니 57세가 돼서도 여전히 욕망으로 들끓는 불구덩이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마가 놀아본 선비라면 반성문일 수도 있다. 한데 타고난 지병이 있어서 젊은 시절부터 먹는 것도 절제하고 마음 수행을 한 범생이 중 범생이 선비가 이제마 아닌가. 그런 그가 57세가 돼서도 자신을 속이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니 인간의 마음이란 평생 흔들린다는 증거가 아닌가. 평생 수행을 한 이제마도 이런 고백을 하는 판에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아무 노력도 안 한 내가 불안한 것은 당연지사.



나이가 들어도 욕망으로 들끓는 불구덩이가 자신 안에 있다.

 


이제마의 커밍아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제마는 해법까지 제시해 주신다. 오직 놓친 마음을 구해야 한다고. 그것이 학문의 도라고도 말한다. 놓친 마음을 구하는 것이 학문의 도라니 이것도 신선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문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공부란 열심히 공부해서 그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우리는 열라 공부를 해왔다. 그런데 공부란 속이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보고 돌이키는 게 공부라니.


죽을 때까지 속이는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면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평생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만은 피할 비법이 있을 것만 같다. 꼼수가 통했으면 이제마가 이런 고백을 했겠나.



엄마의 정신 줄이 태아의 정신 줄


동양 세계관에서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황제내경 소문에서 ‘피는 인체의 정신’으로 피가 정신활동 그 자체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다. 감정이 몸의 상태를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 화를 내면 기가 치솟고, 기뻐하면 기가 원만해지며, 슬퍼하면 기가 흩어지고, 두려워하면 기가 가라앉으며.... 놀라면 기가 문란해지고 사려가 과도하면 기가 울결된다. 또한 놀라면 마음의 기운이 의지할 것을 잃게 되고 (정)신이 돌아갈 곳이 없어지며, 생각이 안정되지 않으므로 기가 문란해진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기운이 머물러서 운행되지 않으므로 기가 울결된다고 하여 기가 손상되면 (정)신이 동요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동양의학에는 전제되어 있다.


요즘처럼 정신병이 많은 시대도 없을 것이다. 서양의학은 정신병을 단순히 뇌의 이상으로 간주해서 신경 치료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기혈을 다스리지 못한 마음의 문제가 결과적으로 몸으로 드러났다고 보았다. 모든 출발점은 마음에 있다. 마음은 곧 기혈이다.



동양에서는 정신병이 기혈을 다스리지 못한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


각종 정신병이 판을 치는 시대에 이제마의 고백은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속이는 마음을 잡아라! 그것만이 정신 줄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정신 줄을 놓치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오직 마음을 돌이키는 훈련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선현들은 그 훈련의 시점을 고민했고 엄마 뱃속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 태교의 출발이기도 히다. “태(胎)를 기름에 삼가지 않으면 어찌 자식이 재주만 없겠는가. 그 형체도 온전하지 못하고, 병도 매우 많을 것이며, 또한 태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출산도 어려우며, 비록 낳아도 수명이 짧으리라. 이는 모두 태를 잘못 기름에서 연유됨이 분명한데, 그러고도 감히 (내 죄가 아니니) 나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태교신기) 태교를 위한 책 『태교신기』의 내용 일부이다.


"아이는 엄마 기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태어난 존재로 태교란 아이뿐 아니라 엄마의 수행 과정이기도 하다. “배 속의 아기는 모체와 혈맥이 이어져 있어서 어머니의 호흡에 따라 움직이므로 어머니의 기뻐하고 성내는 것은 아기의 성품이 되고, 어머니의 보고 듣는 것은 아기의 총명함이 되며, 어머니의 춥고 따듯함은 태아에게는 체온이 되며, 어머니의 음식은 아기의 살과 피부가 되는데, 어머니가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태교신기』


아이는 엄마 피의 영향을 받고 그 진동이 평생 아이의 기와 혈의 순환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태교는 엄마의 정신 줄이 아이의 정신 줄로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전히 휘청 이는 삶, 태교가 필요하다


『태교신기』는 태교를 위한 책이다. 조선 시대 사주당 이씨(1739~1821)가 지은 저술로 태교 실천서로 거의 유일한 텍스트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일찍이 태교를 네 자녀에게 해보았더니, 결과적으로 자식들의 형체와 기질이 크게 어긋남이 없더라.”는 것.


사주당 이씨가 살던 당시 조선은 파벌과 정쟁이 많은 시대였다. 사주당은 이 변고가 많은 시대를 무관하게 여기지 않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태교하지 않아서 타고난 재질이 옛사람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의 기질이 변화한 것은 아니다.” 결국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어머니가 태교를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서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태교를 열심히 했으니 과거 시험을 봐서 이름을 날리라고 할 것 같은데 사주당 이 씨는 아들 유희에게 벼슬길에 나가서 출세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린다. 그녀의 육성으로 들어보기로 하자.


 “너의 천성이 속류에 영합하지 못하니 비록 과거에 합격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보다 너의 천진(天眞)함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빛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찾아서 하도록 하라.” 


과거보다 아들의 천진함이 지켜지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 아들 유희(1773~1837)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문통』『문명고』『언문지』 등의 저술하여 남긴다. 그의 저술은 실학을 연구하는 자료로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고 한다. 유희는 어머니의 태교신기 발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갈팡질팡하고 쓰러지고 뒤집히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면서 휘청거렸던 젊은 시절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쓴 태교신기를 기억하면서 휘청이는 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이 책이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하려고 후세에 전한다는 발문을 쓰기에 이른다. 그렇다. 산다는 것은 누구나 흔들리고 넘어지고 휘청이는 일이다. 내 중심을 잡는 능력. 그 능력이야말로 어머니가 전해주고 싶은, 천지의, 우주의 마음인 것이다.



흔들리고 넘어지고 휘청일 때 중심을 잡는 능력이 중요하다.


태교신기에는 동의보감 부인편을 중심으로 많은 부분이 담겨있다. 몸과 마음이 막히지 않고 통해야 총명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어서이다. 어릴 때는 젊은 혈기로 버틸 수 있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의 중심 잡기는 더더욱 요구된다. 시간이 흐른다고 삶의 중심이 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가 필요하듯 오랜 시간 중심 잡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껏 막살았다고 자포자기는 마시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지 않는가. 지금부터 나만의 태교를 시작하면 된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휘청 이는 삶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높은 스펙이 절대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펙에 속지 마시라. 이제마의 고백처럼 죽을 때까지 저절로 주어지는 안정 따위는 없다. 죽는 그 순간까지 올라오는 사욕을 정확하게 보고 몸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 그것이 엄마가 뱃속부터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태교의 지혜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동의보감의 지혜이기도 하다.


임신 톡톡을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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