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비구니와 과부의 병을 치료하는 법


비구니 과부의 병을 치료하는 법,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내라! 




『촌담해이』, 대낮에 읽는 야동


조선 전기 잡기류 중 강희맹이 쓴 『촌담해이』가 있다. 촌담해이란 턱이 빠질 정도로 재미있다는 의미이다. 제목 그대로 촌담해이는 정말 웃기다. 게다가 19금으로 화끈하기까지 하다. 조선 시대에 이렇게 웃기면서 화끈한 책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또한 조선 시대에 다른 사람도 아닌 선비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조선은 명실상부 성리학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엄격한 분위 속에서 성이 억제된 사회라는 것은 통념일 뿐, 내용은 가히 엽기적이다.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의 남성 편력뿐 아니라 성적 욕망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특히 과부와 비구니는 비중 높은 등장인물이다. 왜 그럴까. 딱 봐도 성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다.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강도 높은 긴장은 시작된다.


나는 곧 인화(비구니)입니다. 사내와 계집 사이의 커다란 정욕은 곧 천지가 물건을 점지하신 참된 마음이었으므로 옛날 아난은 마등가녀라는 음녀에게 혼미하였고, 나한은 운간에 떨어졌거늘, 하물며 스님은 그 두 분에 미치지 못하겠습니까?" 하여 혜능을 매혹시켰다. 그의 말을 들은 혜능은 "애석하구나. 이제 내 법계로 이록된 몸을 헐게 되었구나"하고는 곧 서로 정교를 통하게 되었다.

─강희맹, 『촌담해이』, 신원문화사,  22~23쪽


비구니 인화가 주지 스님 혜능을 유혹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수절이나 불심을 위해 욕망을 절대 억제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도 않는다. 천지자연이 부여한 욕망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촌담해이, 웃음과 화끈함까지 보장해 드립니다~



음사를 몹시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평생소원이 양물이 큰 남자와 만나는 것이었다. 상말에 코가 크면 양물도 크다는 말을 듣고 코 큰 사람을 한 번 만나야겠다고 별렀으나 좀처럼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강희맹, 『촌담해이』, 신원문화사, 28쪽


양물 큰 남자를 만나는 게 소원인 여자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소원이 하도 간절하여 코 큰 남자를 만나긴 했으나 양물은 별 볼 일이 없었다. 코 값도 못한다며 화가 난 여인은 욕정을 막을 수 없어서 기상천외한 행동을 벌인다. 어떻게 했을까.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상상력이 다른 여타 소설과 급이 다르다. 근데 전혀 에로틱하지가 않다. 성은 야하고 끈적하면서 은밀하다는 통념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촌담해이의 성은 포복절도하게 한다.


내용은 19금이 맞는데 지금의 야동이나 포르노와 무엇이 다를까. 거기엔 은밀함이 없다. 그들은 성적으로 억압되지 않고 자유롭게 욕망을 분출한다. 그것이 웃음을 유발한다. 문제는 갇힌 욕망, 숨기려는 마음이다. 범죄도 어둠의 세계에서 발생하지 대낮에 일어나진 않는다. 포르노나, 범죄가 훤한 대낮에 유통된다면 그것은 이미 포르노나 범죄가 아닐 것이다. 아니라면? 촌담해이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될 뿐이다. 어떤 성 담론도 양지로 나오면 이야기가 되고 그 자체가 흐름이 된다. 흐르면 삶은 절대 막히지 않는다.



여성의 몸은 남성과 다르다 


억압되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삶과 몸의 핵심이다. 반대로 억압되고 막힌 것은 모두 병이 된다. 같은 성이라도 포르노와 야동이 심신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음성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병의 원인은 막힘이다. 근데 사회에서 특히 막힘을 유발하는 존재들이 있단다. 존재 자체가 불통인 자는 다름 아닌 과부와 비구니라고 딱 집어서 동의보감은 언급한다. 왜 이들을 유독 특별 취급하는 것일까. 다른 이유는 없다. 일단 여자기 때문이다. 여자가 왜? 같은 여자로서 갑자기 자의식 발동된다. 특히 페미니스트라면 더더욱~ 요즘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나홀로족이 많은 시대에 독거 남성도 있건만 유독 독거 여성을 건드리나 싶기도 하다. 이 문제를 풀려면 기존의 시선으로는 분노만 치솟을 뿐,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음양의 관점으로!



억압되고 막힌 것은 흐르게 해야 한다.



자, 음양의 세계로 고개를 돌려보자. 언덕에서 볕이 드는 곳은 양이고 그늘진 곳은 음이다. 볕과 그늘을 만드는 해는 하나고, 음양을 가르는 언덕 또한 하나이다. 밤과 낮으로 하루가 분리된 듯 보이지만 태극 하나에서 음양이 분화된다. 양이 오면 음이 물러가고 음이 오면 양이 물러가면서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음양의 시선을 좀 더 줌인으로 끌어 당겨보자. 낮에는 따듯하고, 밤에는 서늘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다. 해가 비치면 활동이 많고, 해가 지면 활동이 준다. 낮에는 공기가 올라가고, 밤에는 공기가 아래로 내려간다. 낮에는 집 밖으로 나가고 밤에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쉰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다. 여기까지 오면 여성은 음의 성향이 있음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도 우기면 좀 곤란하다.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한다. 아~ 세상에는 두 가지 다른 기운이 있구나. 어느 것도 더 우월한 것은 없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우주적 신체에 접근한 셈이다.


음의 기운은 발산이 아니라 수렴의 기운이다. 아무리 양적 기질을 타고 난 여성도 남성보다 수렴 기운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탓에 기운이 고이고 잘 막힌다. 그 대신 남성에 비해 기운 소모는 적다. 쉽게 말해 성욕 제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억울할 것은 없다. 서로 장단점이 공존하지 않는가. 동의보감은 남성에게는 정을 아끼라고 시종일관 주문한다. 남성은 정을 허비하고 여성은 감정을 억압한다. 여기엔 더 좋고 나쁨은 없다. 일단 타고난 몸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여성이라는 몸을 가졌음을 인정해야 그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독신 여성과 쇼핑중독, 현대판 과부와 비구니


송나라 사람 자정이 비구니나 과부의 병을 치료할 때 처방을 달리 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 살기 때문에 음만 있고 양은 없으며, 욕망은 싹트나 대부분 이루지 못하여 음양이 다투기 때문에 추웠다 더웠다 하여 거의 온학(온학)과 유사하게 된다. 오래되면 허로가 된다.” 

─동의보감, 부인편


이제 여성의 몸에 대해 이해를 했으니 본격적으로 비구니와 과부의 병을 탐구해보기로 하자. 짝 있는 여성은 음이지만 양의 간섭을 받기 때문에 음양의 균형을 이룬다고 보았다. 하지만 양기의 개입이 없는 여성은 음 중의 음이라 그 자체만으로는 균형 잡기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민간인과 방위가 다르게 취급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조선 시대에는 분명 일반 여성과 과부와 비구니는 다르게 취급된다. 양의 개입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과부와 비구니는 누구일까. 단연 독신 여성이다. 특히 골드 미스들은 자신이 과부와 비구니 팔자와 비견되니 발끈할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것이 동의보감의 세계인걸. 아무리 좋은 스펙으로 포장된 커리어 우먼일지라도 우주적으로 보면 불통의 신체 이상 이하도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음의 기운을 잘 썼기 때문에 스펙도 쌓고 돈도 잘 벌 수 있었던 것. 음 기운이 나를 살리기도 하고 나를 죽이기도 한다. 음기로 충만한 여성이 균형을 잡으려면? 양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동의보감의 치료법이다.


양기의 간섭은 남성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양기란 음기를 뚫고 솟구치게 하는 변화의 힘이다. 나를 자극해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은 모두 양 기운에 속한다. 양기를 쓴다는 것은 내가 쥐고 있는 것을 흩어야 가능하다. 돈도 명예도 움켜쥐고는 절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주의 원리는 자명하지만 내 것을 놓아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게 인간의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흩어야 변할 수 있다.



쇼핑을 멈추고 욕망을 이야기하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미테이션 자극이 판을 친다. 그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쇼핑이다. 매년 새롭게 제시되는 패션 트렌드는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여기게 한다. 쇼핑은 마약과 같다. 잠시 중독 상태를 만들어 상품의 이미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도 잠시, 변화를 느끼려면 더 센 자극이 계속 필요하다. 이젠 쓰지도 않으면서 쇼핑 자체를 즐기는 자들도 있단다. 쇼핑한 상품으로 집이 가득 찬다. 그 자체가 막힌 상태이다. 우리 시대의 과부와 비구니는 바로 쇼핑을 일삼는 자들이기도 하다. 쇼핑을 멈추려면 『촌담해이』처럼 화끈하게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양기를 허하는 방법이다.


중국의 근대 사상가 캉유웨이의 『대동서』에는 그가 상상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중에 여성을 배려한 대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적이고 섬세하다. 단순히 복지 정책만을 나열하는 식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따르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기본이고 임신 초기에 사랑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환경을 보장하며 출산 뒤에는 물리 기구로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동사회란 욕망의 보편성이 인정되는 사회기 때문에 어떤 욕망도 억압받거나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캉유웨이의 생각이었다. 성욕을 대 놓고 보장해 준다니 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성욕이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순간 변태 행위는 근절될 수 있다. 이 시대의 대표 변태 행위는 쇼핑중독일 것이다. 괜히 쇼핑하느라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음적 기운을 잘 소통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니까 현대판 『촌담해이』가 필요하다. 쇼핑을 멈추고 막힌 기운을 뚫어주는 유쾌한 이야기가 곳곳에 흘러넘쳐야 한다. 이제 이해가 된다. 선비 강희맹이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굳이 <촌담해이>를 쓴 이유를! 촌담해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막힌 것을 뚫어주는 사회적 치료였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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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tasia07 2016.02.18 09:4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우와, 선비가 그런 책을 쓰다니..생각도 못했네요. 왠지 선비는 고고할 거 같다는 선입견때문이겠죠. '대동서'도 한번 보고 싶네요. 욕망을 인정한다는 거, 참 힘든 거 같아요.. 괜히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는 더 뒤틀려서 사건들을 일으키고 말이죠.

    • 북드라망 2016.02.18 09:57 신고 수정/삭제

      저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촌담해이』가 보고 싶군요, 흠흠.
      아실지도 모르겠으나, 저희 책 중에 『대동,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라는 책이 있지요. 이 책도 함께 추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