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은 어떻게 아이를 낳았을까?
출산, 시공간을 빌리는 것
여기 이런 주문이 있다.
“동쪽으로 열 보를 빌리고 서쪽으로 열 보를 빌린다. 남쪽으로 열 보를 빌리고 북쪽으로 열 보를 빌린다. 위로 열 보를 빌리고 아래로 열 보를 빌린다. 방의 가운데에서 사방 사십여 보를 안산(安産)을 위해 땅을 빌리니, 더러움이 있을세라, 동해 신왕도 계시고 서해 신왕도 계시며, 남해 신왕도 계시고 일유 장군도 계시다. 백호 부인은 멀리 열 길을 가고, 헌원과 초요는 위로 열 길을 가며, 천부와 지축은 땅속으로 열 길을 가서 이 땅을 비워주소서. 산부 모 씨가 편안히 거처하여 장애가 없게 하시고 두려워 꺼릴 것이 없게 하소서. 제신이 보호하사 온갖 악귀 물리침을 율령같이 급히 여기소서”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주문이다. 내용인즉슨, 이제 아이를 낳으려고 하니 방의 사방 공간을 빌리고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신에게도 자리를 비워 달라 간청한다. 아이를 낳을 시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시공간이 확보된 뒤에는 아이를 낳을 산부가 두려움 없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염원한다. 이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시공간을 빌리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안전한 출산(安産)을 위한 절차에는 산실을 치장하고 방위를 정하는 것에 할애되어 있다. 그렇다면 잠시, 조선 시대 산실 풍경을 들여다보자.
출산은 시간과~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 집안의 산실을 미리 꾸며 놓고 출산을 예비한다. 24개 방위(方位)를 방안에 표시하고 방안에 부적을 비치한다. 북쪽 벽면에 출산의 안전을 기원하는 그림, 산도(産圖)와 출산을 촉진하는 부적, 최생부(催生符), 지신(地神)에게 땅을 빌린다는 뜻인 차지법(借地法)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붙인다. 차지법의 주문은 3번 읽는다. 출산 예정일에 맞는 길방을 정하여 산모의 눕는 방향을 정하고 산모의 머리 방향 벽면에 안산실길방(安産室吉方), 발 쪽 벽면에 장태의길방(藏胎衣吉方) 부적을 붙인다. 달마다 안산실과 태반을 간직하는 곳이 모두 월덕(月德)과 월공(月空)이 있는 방위를 향하게 하고, 13가지 신살(神殺)을 모두 피해야 한다. 가령 정월의 월덕은 병방(丙方)에 있으니 안산실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고, 월공은 임방(壬方)에 있으니 태반은 그쪽으로 간직한다. 이밖에 달[月]과 날짜[日]에 따라 태살이 있는 곳이 바뀌므로 이를 피하도록 하고, 방의 일유신(日遊神)이 있는 방향도 날에 따라 변하므로 방의 치장도 이를 피해 달리해야 한다. 가령 일유신이 있는 곳에는 침상을 놓거나 휘장을 바꾸거나 무거운 물건을 침상에 두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면 임산부를 상하게 하여 유산된다.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1,696~1,699쪽 참조
『동의보감』에서 출산은 시공간을 빌리는 것이므로, 시공간의 길방(吉方)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동양사유에 있어 시간과 공간은 독립된 개념이나 독자적인 실체이기보다 상호연대성에 입각하여 시간과 공간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에 위치를 설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시간과 공간을 특정화하여 여러 특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요컨대 시간에 관한 표상을 빌려 공간상의 행위가 가능한가 하면, 공간에 관한 표상을 빌려 시간상의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우주의 특정한 양상들을 알려주는 복합적이며 상관적인 상징들을 빌려 시공상의 행위도 가능하다.
공간을 빌리는 것이다!
시(時)와 방(方), 이 두 단어를 주목해본다면, 시(時)는 시간상의 각 부분에, 방(方)은 공간상의 각 부분에 적용되며, 시간상의 부분과 공간상의 부분은 매번 특정한 양상 속에서 함께 고찰된다. 또 시(時)와 방(方)은 각기 공간이나 시간 그 자체에 대한 상기가 아니라 시(時)는 상황과 (어떠한 활동에 호기인지 아닌지의) 기회를, 방(方)은 방향과 (어떨 때 적합한지 아닌지의) 위치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규정하는 것이면서 규정되는 것인 복합적인 상징조건들을 형성했다. 즉 시간과 공간이 위치와 기회의 결합체로 여겨져 왔으며, 이 다양한 결합체들 전반이 시간과 공간 그 자체로서 줄곧 이해됐던 것이다.
하여 이 결합체들은 하나의 앎의 대상이 되었다. 고대의 현자들은 이러한 앎에 입각한 성찰을 통해 어떤 지고한 기술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물리와 윤리를 대신하는 이 기술들은 우주와 사회의 안배를 목적으로 했다. 시간과 공간을 분할하여 그에 따라 기회와 위치의 다양성을 알려주는 표상들을 항목별로 분배한 것이다. 이러한 시공관은 모든 기술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 기본적인 틀은 전적으로 교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앎에 의거하는데, 고대인들은 이 틀을 통해 효능적인 표상들을 사용함으로써 사회를 안배하고 사회의 안배에 따른 세계의 안배를 구현하고자 했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한길사, ‘시간과 공간’ 참조
그렇다. 동양사유에서 출산은 그냥 단순히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다. 출산 자체가 시공간의 안배이면서 사회적 삶의 창조요, 세계의 창조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세계관으로 조상들의 생각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다만 담론의 질서가 다를 뿐이다. 차이를 인정하면 그만큼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우리의 시야는 확장된다.
부적과 주문, 문자와 소리가 시공간을 지배한다
시공간의 문제를 제외하면 이제 조선 시대 산실 풍경의 특이점은 부적(符籍)과 주문(呪文)이다. 부적과 주문은 문자와 소리로써 재앙을 예방하고 악귀를 물리친다. 이는 곧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 소리와 문자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각각의 개별적 본질을 총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름은 개인의 본질을 호명하고, 개인의 본질을 현실로 불러낸다. 따라서 이름을 소리 내 부른다는 것은 곧 존재를 취하는 것이자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말하고, 명명하고, 지칭하는 행위는 바로 현실로서 현상을 통섭하기 때문이다. 주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문을 외운다는 것은 그 시공간을 지배하는 신들을 불러내 현실화시키는 행위다. 주문을 외우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시공간과의 마주침! 그 감염력과 작용력의 한계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자나 그림을 이용하는 부적은 어떨까? 부적은 문자나 그림이 어떤 의미를 표상하므로 표상 문자라고 할 수 있다.
부적과 주문에 담긴 간절한 마음.
공자는 개의 형상기호인 견(犬)은 하나의 완벽한 소묘라고 천명했다. 이 기호와 함께 공자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의 묘사는 굳이 대상의 모든 특성을 재현하지 않아도 적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묘사의 적절성은 바로 어떤 유형의 행동이나 관계를 특징짓거나 함축하는 하나의 태도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이는 형상관념에도 공히 적용된다. 친구나 우정의 관념은 맞잡은 두 손을 도상화한 단순글자인 우(友)로 형상된다. … 문자기호는 먼저 일련의 양식화된 여러 동작을 상기시키면서 일반적인 가치를 지닌 한 관념을 지시한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유병태 옮김, 한길사, 65쪽
문자표상은 양식화된 동작을 간직하고자 하며 의례적 의미의 동작을 형상화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문자표상이 일련의 상(象)의 흐름을 촉발하여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부적이 재앙을 없애고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문자표상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재구성이 유발하는 무한한 창조력 때문이다. 이로써 문자표상은 단순의미작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작용력과 실제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동양사유에서 우주는 일종의 시공간적인 장을 의미한다. 우주의 ‘우’(宇)가 사방과 상하로 표현되는 공간을 뜻한다면, ‘주’(宙)는 과거와 현재로 표현되는 시간을 뜻했다. 결국 ‘우’는 기의 역동성이 전개되는 장소인 공간을, ‘주’는 기의 역동성으로 발생하는 생성과 그로부터 드러나는 시간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러니 기의 역동성이 전개되는 공간과 시간은 분리된 것일 수가 없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출산은 시공간을 안배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새로운 기운과의 접속이다. 그 생성의 여정에서 문자와 소리는 시공간을 지배하면서 태어날 아이와 조화된 기운을 만들어 준다. 이 역동적 활동을 조상들은 온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맞았던 것이다.
출산은 새로운 기운과의 접속이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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