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약선생의 도서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말년이야말로 가장 힘이 넘치는 때"

마지막 거처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2000년 9월 30일. 소년 무함마드 알두라는 아빠와 함께 중고차 시장에 갔다. 아마 아빠는 일을 얻기 위해서 싼 중고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빠는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오랜만에 구경도 시켜줄 겸 아들 무함마드와 같이 길을 나섰다.



아빠는 최근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봉쇄와 통제가 심해진 걸 피부로 느낀다. 소년이 사는 가지지구(Gaza Strip) 주변에 이스라엘군이 철조망 장벽과 검문소를 세운지 오래다. 소년은 친구들과 이 알 수 없는 장벽 밑으로 굴을 파 놀기도 한다. 소년에게 장벽 밖은 하나의 유혹이다. 그러나 그런 소년을 보고 엄마는 그러면 혼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오늘 아침도 호되게 한 소리를 들은 참이라 소년은 시무룩하다. 그런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아빠가 아들과 나섰다. 얼마 전부터 고심 중이던 차도 고를 겸 가자지구 밖 중고차 시장으로 갔다. 아내도 철조망 앞에서 놀다가 시위대에 휩쓸리는 것 보다 아빠 따라 시장에라도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장벽 밖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만 하다. 소년의 눈동자는 속임 없이 맑다.


오랜만에 잡아본 아들의 손은 참 따뜻하다. 그러나 손에 잡힌 부드러운 아이 손길과 달리, 현실은 매섭고 냉혹했다. 여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과 다름없는 아빠 자말 알두라는 매일 같이 철조망 검문소를 오가며 이스라엘 기업에 제공한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하루 풀칠하고 있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상황. 오슬로 협정[각주:1] 이후, 사람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존에 대해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기대는 점점 실망과 분노로 바뀌어 바야흐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알 아크사 인티파다(al-Aqsa Intifada, 이른바 ‘2차 민중항쟁’)[각주:2]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까지 살다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팔레스타인 저항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의 시를 인용하면서, “세상이 밀려와 우리를 마지막 거처로 밀어 넣었다”라고 설명한다.[각주:3]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53 ~ 2003)


표현 그대로 그것은 팔레스타인이 처한 기막힌 상황을 말한다. 우리는 다윗왕의 유대국가가 멸망하고 나서, 팔레스타인 땅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안다. 또 유대인은 로마와의 두 차례 유대전쟁에서 패하고, 우리 귀에도 익숙한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을 말함)가 된 것도 안다. 이때가 서기 135년.


그러나 언제나 살아남아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이슬람교 아래 단결한 이곳 아랍인들이 장장 500년을 버티고 살아남아 637년, 드디어 로마를 격파하였다. 그 이래로 팔레스타인 땅은 이슬람과 유대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곳이 되어 간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나갈수록 추해지고 나쁜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나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가 ‘시오니즘’(Zionism)[각주:4]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깃발을 들고 이 땅에 갑자기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미국이라는 슈퍼권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것이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되면서 이 지역은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3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의 터전을 잃고 난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저항이다. 전혀 친구가 없는 저항인 것이다. 그들의 저항은 전략적 동맹이 전혀 없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해방운동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들 뒤에는 식민지 운동 뒤에 흔히 서 있던 ‘소련’ 같은 나라가 하나도 없었다. 상대인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거나 사라지기만을 원했다. 조용히 자기들의 땅이 되기만을 바라고 싸우기만 했던 것이다.


이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이 직면한 상황은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었다. 둘러봐도 도무지 자신의 친구들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정당성과 도덕성마저 박탈당했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대의 박해와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로 세계인의 동정을 얻고 있었다. 당혹스럽게도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인들의 눈 먼 동정이 상대(이스라엘)의 가혹함을 덮었다. 이런 은폐가 겹치면서 이들을 적으로 삼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지대에 서 있게 된다. 사이드의 말대로 미국, 이스라엘, 이웃 아랍국가 등 온 세상이 밀려와 그들을 마지막 거처로 내몰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윽박지르는 세상만 있는 셈이었다.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뜻밖에도 푸코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가 쓴 『오리엔탈리즘』 서문만 읽으라는 과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수업에 들어갈 정도로 그에게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중동 출신의 문예비평가가 말하는 주장이 뭐 그리 별스럽겠는가, 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에 대해 설명을 듣는 수준에서 넘기고 말았다.


그와 다시 만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가 남긴 마지막 책,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On Late Style)』을 서점에서 발견하면서였다. 나는 당시 후기 푸코의 자기배려 개념에 꽂혀서 그리스와 로마에 푹 빠져 지내던 때이기도 했다.


특히 스토아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노년은 나에게 독특한 감각을 키워주었다. 쇠약하기만 하고,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능동적일 수 없는 노년이 갑작스럽게 내 의식의 주제가 된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노년은 육체적 쾌락이나 야망에 결코 기대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자, 따라서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향유하는 자이다.[각주:5] 이 순간 편견이 뒤집힌다. 노년이 실존의 긍정적인 목표로 바뀌는 것이다.


이 문제를 에드워드 사이드는 좀 더 현대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다룬다. 그는 자신의 처지, 그러니까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동지도 다 빼앗겨 버린(dispossessed)[각주:6] 아포리아의 지대를 ‘말년성’(lateness)이라는 사유로 장엄하게 돌파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시의적절(時宜適切)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삶이란 때에 맞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노년이란 주제와 호응해 말한다면 ‘시의성’(timeliness)이란 시간에 맞게 늙어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현명한 노년의 이미지로 지혜롭고 느긋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이드는 예술가들의 말년을 통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토해낸다. 뜻밖에도 그것은시의적절하지 않은 노년, 모순이 가득한 말년이다. 그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예술가들의 말년은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이제까지 쌓아올린 경력과 솜씨를 허물고, 심지어 성공적으로 예술 인생을 마무리할 가능성조차 내던지는 말년이다. 한마디로 당혹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말년인 것이다.


사이드는 베토벤의 말년 작품들을 특별히 “망명의 형식”이라고 말한다.[각주:7]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명망을 쌓아 올린 작가가 생의 마지막에 가서 자신을 허물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예술과 함께 현실에 저항하여 그곳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게 아주 “뻔뻔하고 원시적인” 모양으로 나온다는데 있다. 예를 들면 중기의 작품인 「영웅」 교향곡은 대단히 설득력 있고 통합적인 논리에 따라 진행하지만, 말년의 작품인 「31번 소나타」는 산만하고, 투박하고, 때로는 반복적인 패턴만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학생이 작곡한 듯이 둔탁하다. 그곳에는 완벽하게 숙달되지 않은 재료들로 넘쳐난다. 오히려 미완성으로 느껴질 정도다. 베토벤은 더 이상 안정적이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게 뻔뻔하기만 한 음악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사이드의 말년성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용인된 것과 정상적인 것을 넘어서서 살아남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말년에 이르면 일생을 두고 이어 오던 통일성이 무의미해진다. 어떻게 연결하여 통일시켜도, 그런 통일성은 죽음으로 끊기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년성에는 누구든지 이 말년의 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또 다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즉 어느 누구나 죽음 앞에 다다르고, 결코 그것을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서 말한 비타협과 모순의 말년성을 결합하여 이것을 다시 음미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나 언젠가는 비타협적이고 모순된 지대, 정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지대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말인 것이다. 그 지대가 바로 인생의 말년(lateness)이다. 초월도 통일성도 없는 모호한 지대, 우리는 말년에 이르러 이 지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말년성의 개념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여기에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Jean Genet)가 소환된다. 장 주네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이 쓴 모든 글이 ‘자신과는 반대로’(contre moi-meme) 쓰였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사이드는 자신이 만난 장 주네의 실제 모습이 책으로 접한 이미지와는 도무지 닮지 않았음을 증언했다.


장 주네 (Jean Genet, 1910~1986). 실존주의파에 속하는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 대표작으로는 『도둑 일기』와 희곡 『하녀들』이 있다.


사이드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도둑 일기』보다 주네의 말년 작품인 『사랑의 포로』에 주목한다. 이 책은 주네가 1970년 초반에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만났던 팔레스타인 병사들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 회고를 담고 있다. 사이드의 말에 따르면 주네는 이국적 취미를 가진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아랍의 현재 모습을 즐기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아랍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네는 사이드가 비판했던 그 흔한 오리엔탈리스트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아랍을 서구화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랍을 이국적인 대상으로 신비화하는 사람들, 이른바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주네와 같은 문화적 공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 의미에서 장 주네와 아랍인들의 관계는 조용하지만 대담한, 그래서 전복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와 관련해서 사이드는 주네의 언어관을 예리하게 잡아냈다. 주네에게 언어는 늘 정체성을 위반하고 파괴하는 배반의 양태로서 나타난다고 한다. 주네는 이 배반의 황홀함이 성애의 흥분에 필적할 만하며, 이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황홀함을 전혀 모른다고까지 말했다.[각주:8] 다시 말하면 언어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황홀함을 경험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말년에 자신을 배반하는 글쓰기가 주는 황홀함이라니, 한사코 방심하지 말지어다.


주네는 말년에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추방자이자 이방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문화에 강한 공감을 느낀다. “내 마음은 거기에 있었다. 내 몸은 거기에 있었다. 내 영혼은 거기에 있었다.”(장 주네)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성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더 이상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편안하게 즐기고 상대에게로 들어가는 말년의 전복성. 바로 그 전복성을 이끌어 내는 언어. 이어서 그 전복적인 언어로 자신을 배반하는 황홀함. 그래서 이렇게 말할 줄 아는 말년이다. “그들 편에 흡수되어서는 안 된다. 길들여진 혁명가나 순교자가 되어서는 안돼.”[각주:9] 사이드는 말년이야말로 가장 힘이 넘치는 때라고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사이드에겐 마르크스주의자 영화감독 비스콘티도, 시칠리아의 작가 람페두사도 모두 젊은 시절의 이력을 배반한 말년의 예술가들이다. 말년에 다다른 굴렌 굴드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y, 대가적 연주기술)를 사이드는 이렇게 평한다. “굴드는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았고, 영향을 받은 음악가나 사상가도 없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관습적인 영토에서 벗어나 연주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초연한 남자의 이미지를 드러낸다.”[각주:10]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 피아노 연주자. 바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명성을 얻었다.


사이드가 굉장히 좋아했던 이븐 할둔과 비코는 역사가 인간노동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사이드에게 역사는 자연의 역사와 세속적인 인간의 역사로 나뉜다. 전자는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영역이다. 반면 후자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1] 이 과정에는 세 가지 거대한 국면이 있는데, 첫째로 시작하는 국면, 둘째로 번식하고 성숙하는 국면, 셋째로 마침내 삶의 마지막 국면으로서 신체가 부패하고, 질병이나 죽음이 공습하는 말년이다.


놀라운 것은 굴렌굴드를 두고 평했던 것처럼, 위대한 예술가들은 오히려 이 부패의 시기, 질병과 죽음의 시기인 말년에 이르러서, 아주 당혹스런 새로운 이디엄(idiom, 표현양식)을 창안해낸다는 사실이다.


바흐가 작곡한 ‘생각하는 작품’을 말년의 굴렌 굴드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개정하고 재조정한다. 그것은 바흐가 원했던 바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스스로 생각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에 따라 내용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흐가 창조한 대위법의 본질일지 모른다. 바흐와 굴드에게 대위법은 각자가 자기로 있으면서도, 상대와 완벽하게 결합하는 연주다. 이 의미에서 대위법은 대위법적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각주:12]


말년은 이렇게 대위법이 만발하는 시기이다. 통일성에 연연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기가 내몰린 마지막 거처를 초월하지도 않으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곳과 결합할 줄 아는 시기인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노년도 사이드의 이런 말년과 통하지 싶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자기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곳과 결합할 줄 아는 시기'


* * *


소년 무함마드 알두라와 아빠 자말 알두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지도 못하고, 걸어서 가자지구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좀 낙담하긴 했으나 오늘은 아들과 아빠가 같이 손잡고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충분하다. 차는 나중에 찾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시위대를 진압하던 이스라엘군과 마주치고 만다. 이스라엘군은 아빠와 아들에게 가차 없이 총을 쏘아댔다. 아빠는 벽돌담 뒤에서 아이를 자기 등 뒤로 숨기고 “아이가 있으니 쏘지 말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총을 끊임없이 쏘아댔다. 계속 총성이 울렸고, 아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측의 오인발포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그들은 전혀 세상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마지막 거처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다다른 이 ‘마지막 거처’를 사이드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의 느낌이 물론 있지만, 당신의 말대로 새로운 삶, 다시 말해 마지막 하늘과 마지막 거처를 지나면 비록 마지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길, 또 다른 하늘, 또 다른 영토가 반대편에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2012, 26쪽.


사이드의 묘소는 삶의 대부분을 살았던 뉴욕도 아니고, 그가 태어났던 팔레스타인도 아닌 레바논의 작은 마을 브루마나에 마련되었다. 그의 마지막 거처는 이곳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말년의 양식은 팔레스타인으로 상징되는 모든 마지막 거처에 다른 길, 다른 하늘, 다른 영토를 마련해 줄 것이다.


글_약선생(강민혁)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1. 각주 1)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 자치국가를 설립케 하는 대신,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 간 협정('팔레스타인자치협정선언', 일명 ‘오슬로협정’[Oslo Accords]. 1993년 9월 13일)을 말한다. 협정은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이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서의 철군을 진행시켰고, 팔레스타인은 1996년 2월 잠정 자치정부를 본격 출범시켰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협정 직후 인터뷰(1993년 9월 27일)에서 이 협정은 “시온주의가 거둔 두 번째로 위대한 승리의 날”이며, “팔레스타인의 항복”이라며, “수치스럽기 그지없다”고 평가하였다.[에드워드 사이드, 데이비드 버사미언 지음, 『펜과 칼:침묵하는 지식인에게』, 장호연 옮김, 마티, 2011, 93~94쪽.] [본문으로]
  2. 각주 2) 알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는 성전산[mount Moriah,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예루살렘의 산으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남쪽에 위치한 은색 둥근 지붕의 이슬람교 사원이다. 이 사원이 있는 동예루살렘의 주권을 둘러싸고, 양 당사자 간 주장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2000년 9월28일, 이스라엘 리쿠드당 당수인 샤론이 무장 경찰 수백 명을 대동하고 당시까지 금기였던 이곳을 방문해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주권을 주장했다. 다음 날 금요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통곡의 벽을 향해 투석했고, 대응 사격에 나선 이스라엘군에 의해 팔레스타인인 4명이 죽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기점으로 서안과 가자지구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데, 이를 두고 ‘인티파다’(intifada), 즉 (2차) 민중항쟁이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3. 각주 3) 에드워드 사이드, 데이비드 버사미언 지음, 『펜과 칼:침묵하는 지식인에게』, 장호연 옮김, 마티, 2011, 26쪽.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도 에드워드 사이드와 같이 오슬로 협정을 반대했다. 그는 1978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들어가 집행위원, 대변인, 문교상 등을 역임했으나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관한 집행부 내의 이견으로 탈퇴했다. [본문으로]
  4. 각주 4) 시온(Zion)은 예루살렘의 작은 산이다. 다윗은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나중에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 이 후 시온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신들이 그들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시온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시오니즘’이라고 붙였다. [본문으로]
  5. 각주 5) 미셸 푸코 지음,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143쪽. [본문으로]
  6. 각주 6)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 단어를 자주 썼다고 오에 겐자부로가 알려준다.[오에 겐자부로 지음, 『읽는 인간』, 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228쪽] 나는 “모조리 빼앗김”이야말로 극한의 수동성에서 반전의 능동성이 솟아나는 극적 지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빼앗겨야만 그게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극적 지대를 일상에서 매 순간 생성해내는 역량은 무척 중요하다. 거칠게 말하면 그 역량을 만드는 훈련이 바로 고대의 숱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죽음의 훈련’이었다. [본문으로]
  7. 각주 7)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과 예술』, 장호연 옮김, 마티, 2012, 29쪽. [본문으로]
  8. 각주 8)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같은 책, 119쪽. [본문으로]
  9. 각주 9)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같은 책, 125쪽. [본문으로]
  10. 각주 10)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같은 책, 174쪽. [본문으로]
  11. 각주 11)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같은 책, 25쪽. [본문으로]
  12. 각주 12) 사이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대위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많은 목소리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종의 ‘대위법적 독서‘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데이비드 버사미언 지음, 『펜과 칼:침묵하는 지식인에게』, 장호연 옮김, 마티, 2011, 6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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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혜진 2016.03.23 06:1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약샘글이 연재되고 있다는걸 이제야 알았어요. ㅎㅎ 보물창고를 또 발견했네요.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와 푸코의 [주체의 해석] 찜입니다~

    • 북드라망 2016.03.23 15:26 신고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이혜진 독자님. 지금도 늦지 않았지요!
      연재는 앞으로가 더 많이 남았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약샘 덕에 저도 온라인 서점 카트가 든든해지는 기분입니다. ^^

    • 약선생 2016.03.25 22:14 수정/삭제

      제 글들이 보물창고라니,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디 또 오셔서 즐겁게 읽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호연지기 2016.03.27 20:34 답글 | 수정/삭제 | ADDR

    기존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과격한 노년. 그것이 자기에게서 기쁨을 찾는 것이었다니.."안정된 노년"을 꿈꾸었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어렵네요~ 쩝..;;

    • 북드라망 2016.03.28 10:01 신고 수정/삭제

      저도 안정된 노년을 꿈꾸었던지라.. 하하하;;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자신을 계속 고쳐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저런 경우들을 보며 공부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D

    • 약선생 2016.03.30 09:58 수정/삭제

      자신을 배반하는 것이 최고로 황홀하다는 말은 "쾌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생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적인 쾌락이 얼마나 반-쾌락적인지 깨닫게 되지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