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나의 고전분투기

[대학] 치국, 비록 적중하지는 못할지라도 과히 멀지는 않은 것

by 북드라망 2016. 2. 24.


정치는 갓난아기를 보호하듯이

- 여보적자(如保赤子) -




대학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推己及人(추기급인)이다. 나를 훌륭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것, 그리고 그것이 천하를 평안케 하는데 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 推己及人(추기급인)이다. 그래서 대학의 8조목은 격물에서 시작해서 평천하로 끝나고, 전의 구성도 8조목이 본말의 구도로 이어져있다. 이번 연재는 8조목 중에서 治國(치국)이다. 齊家(제가) 다음, 治國(치국). 제가가 本(본)이고 치국이 末(말)이다. 齊家治國(제가치국)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는데 있다”라고 한 것은 그 집안을 가르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께 효도를 하는 것(孝)은 군주를 섬기는 것이요, 집안의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弟)은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요, 집안의 아랫사람에게 자애롭게 하는 것(慈)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루는 것이라 했으니, 집안을 가지런히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孝(효), 弟(제), 慈(자)는 치국의 道(도)와 동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좀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집안과 나라는 스케일도 다르고, 정치란 온갖 이해가 충돌하는 대단히 시끌시끌한 장소다. 군주에게 도덕성이야 필요조건이 될지언정,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는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孝(효), 弟(제), 慈(자)가 치국의 도에 다름없다고 하는 것은 전제 군주제를 상정하는 유학의 철학적 한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의심을 예상이나 한 듯, 다음 문장이 그 의구심에 쐐기를 박는다.


康誥曰(강고왈) 강고에 이르기를

如保赤子(여보적자) 갓난아기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으니

心誠求之(심성구지) 반드시 마음을 다해 그것을 구하면

雖不中(수부중) 비록 적중하지 않을지라도

不遠矣(불원의) 멀리 벗어나지 않으니,

未有(미유) 學養子而后(학양자이후) 자식 키우는 것을 배운 이후에

嫁者也(가자야) 시집가는 이는 있지 않았다.


누구도 애 키우는 것을 다 배우고 시집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낳게 되면 키운다. 젖 물리는 것도,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목욕시키는 것도 서툴기 짝이 없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아무 경험이 없는 젊은 어미가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이유는 자신보다 아기를 먼저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툰 것도 금방 제자리를 찾게 된다. 如保赤子(여보적자)의 赤子(적자)는 갓 태어나서 새빨간 핏덩이를 말한다. 그야말로 무방비의 여린 생명이다. 이 여린 생명을 보호하듯이 정치를 하라고 하니,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지극정성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구하면, 나라 일이 100% 완벽하지는 않을 수는 있지만, 크게 도리에 어긋나서 백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배워서 임금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모든 것을 다 배워서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如保赤子(여보적자)로 나라 일을 하면, 큰 허물은 없게 되지만, 적중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대들어 보고 싶다. 우리는 유능한 지도자가 확실하게 리더쉽을 발휘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雖不中(수부중), 不遠矣(불원의). 비록 적중하지 않을 지라도, 멀리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목표치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왜 不遠矣(불원의.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에는 이에 대한 답이 속 시원하게 나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명에 대한 유가의 기본적인 사유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문명은 우임금부터라고 말해진다. 그 문명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서경 주서(周書), 「홍범(洪範)」이라는 챕터에 있다. '홍범'은 글자 그대로 “위대한 규범”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은나라를 정벌한 무왕이, 은거하고 있던 기자를 친히 방문해서 제국의 통치에 대해 자문을 구한 내용에서 시작한다. 기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인데, 기자조선의 시조라 알려진 인물이다. 무왕이 기자(箕子)에게 제국 통치의 도를 묻자, 기자는 하나라 우임금이 하늘로부터 받은 9개의 위대한 규범,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유래를 무왕에게 이야기 해 준다. 그 이야기인즉슨, 순임금 시절에 곤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토목기술자였다. 그런데 홍수가 나자, 곤은 물길을 트지 않고, 거대한 둑을 막아서 해결을 보려고 했다. 곤은 홍수에 대항해서 마치 홍수가 없었던 것처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될 턱이 없었으니, 하늘은 오행을 어지럽혔다고 노하셔서 홍범구주를 내려주지 않았다. 이에 순임금은 곤을 죽이고 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자 하늘은 우임금에게 홍범구주를 내려주었다는 것이다. 그 홍범구주의 첫 번째 규범이 바로 오행(五行)이다. 오행은 하늘의 운행질서다. 기자는 우임금이 받은 이 홍범구주를 무왕에게 전해주고는 주(周)의 신하되기를 거부하고 조선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홍수가 닥칠 때, 우리는 홍수가 마치 없었던 것 같은 상태의 해결책을 원한다. 그것이 곤이 한 일이다. 어떻게든 둑을 쌓아서 홍수가 없었던 것처럼 하려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야 가장 좋은 것은 홍수가 나지 않는 것이고, 홍수가 나더라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물길을 터줘도 홍수가 오지 않은 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라는 무대에 인간들만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는 천지만물이 칡넝쿨처럼 얽혀 사는 장소고, 그 천지만물이 얽혀 살 수 있도록 작동하는 것이 바로 오행이다. 그러니 얄팍한 속셈으로 저만 살겠다고 물길을 막아버리는 것은 우주에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 노할밖에.


“雖不中(수부중), 不遠矣(불원의)”의 의미를 여기서 찾아야 될 듯하다. 매사에 적중하게 된다는 것이야 말로 망령된 생각이다. 인간의 이해가 음양의 왕래굴신(往來屈伸)에 다름 아닌 오행과 우연히 맞아 떨어지게 된다면야 천행으로 적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雖不中(수부중)”은 인간의 조건이다. 군주혼자 정치를 통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마치 갓난아기를 보호하듯이 지극정성을 다해서 구하면, “不遠矣(불원의)”할 수 있고, 그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런데 「홍범」에서 재미있는 것은 곤이 우임금의 아비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곤은 죽임을 당하고, 그 아들 우가 왕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마냥 수동적인 존재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곤의 대책은 하수(下手)였다. 오행이 나의 이해에 맞지 않다고 그에 맞서서 해결을 보려고 한 것은 낮은 수다. 강의 범람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비옥한 토지를 얻게 된다. 물이 대신 강바닥까지 땅을 갈아엎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의 전통적인 곡창지대는 모두 강의 범람이 빈번했던 곳이다. 우는 물길을 터줘서 어느 정도의 범람을 허용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 공로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문제의 해결은 맞서는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는 오행에 맞서는 방식이 아니라 오행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물 문제를 해결했고 이것이 유가가 문명을 바라보는 기본입장이다.




天下平(천하평)을 지향하는 『대학』의 가르침에서 8조목이 격물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격물은 오행의 질서를 배우는 것이고, 눈앞의 욕심에 눈멀지 않으면, 오히려 그 오행에 올라탈 수 있다. 그러한 사리분별을 적용하고 익히는 첫 번째 무대가 齊家(제가)이다. 군주는 제가에서 무수히 깨어지면서 격물의 앎을 몸에 체화시켜 나가게 된다. 그래서 齊家(제가)는 피부 켜켜이 쌓이는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군주가 齊家(제가)를 성공적으로 한다는 것은 이제 그의 앎이 머릿속에 사변으로 머물지 않고, 온 몸에 체현되게 된다는  의미이기에, 마치 젊은 어미가 아기를 키울 수 있는 것처럼 治國(치국)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치국에 별다른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如保赤子(여보적자)면 족하다. 그러면 비록 적중하지는 못할지라도 과히 멀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다.


글_최유미


☆ 오늘의 『대학 』 ☆

* 『대학』 전 9장 2


康誥曰 如保赤子이라하니 心誠求之 雖不中이나 不遠矣 未有 學養子而后 嫁者也니라.


(강고 왈 여보적자 심성구지 수부중 불원의 미유 학양자이후 가자야)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기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으니 반드시 마음을 다해 그것을 구하면 비록 적중하지 않을지라도 멀리 벗어나지 않으니, 자식 키우는 것을 배운 이후에 시집가는 이는 있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