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자의 후기 제자, 자장과 자하 - 과하거나 혹은 미치지 못하거나


과유불급(過猶不及),

자장자하




“자공이 물었다.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함이 있다. 자공이 말했다. 그러면 자장이 자하보다 낫다는 말씀이신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은 같은 것이다.”
(子貢問 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過商也不及 曰 然則 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논어 』, 「선진」



우리가 흔히 정도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쓰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논어(論語)』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나은가를 스승인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자장은 지나치고[過],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不及]라고 하면서 결국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은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같은 공문의 친구를 자공이 누구는 더 낫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고, 스승인 공자가 그런 질문에 자장과 자하를 한 명은 지나치고, 한 명은 미치지 못한다고 잘라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면서 지나침과 미치지 못한 것은 결국 같은 것이라는 공자의 대답은 자장과 자하를 똑같이 비난하는 걸까? 왜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유불급은 어떤 의미일까?



1. 자장은 지나치다


자장(子張)의 이름은 전손사(顓孫師)이고 공자보다 48살 아래의 진(陳)나라 사람이다. 공자 말년에 공자스쿨에 들어온 후기 제자들 중 하나였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주유를 떠나기 전에 들어 온 전기 제자들과 공자가 주유(周遊)에서 돌아와 말년에 제자로 받은 후기 제자들로 대게 나눌 수 있다. 안회와 자로, 자공 등이 전기 제자들로 이들은 대부분 공자스쿨에서 공부하고 정계에 진출해서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후기 제자들의 경우 기록이 많지 않고, 그래서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기 어렵다. 자장 역시 기록이 적고, 공자 사후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전국시대 말기 『한비자(韓非子)』의 「현학(顯學)」편을 보면 “공자가 죽은 후 자장과 자사, 안씨, 맹씨, 칠조씨, 중량씨, 손씨, 악정씨 등의 학파가 차례로 세상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자장이 공자 사후 제자를 거느리고 일정한 학파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제쳐두고 말을 신중히 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제쳐두고 조심스레 행동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벼슬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子張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논어 』, 「위정」


자장은 『논어』, 「위정」편의 학간록(學干祿)으로 유명하다. 공자스쿨의 제자들은 대부분 관직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논어』에 나타나는 제자들 중에 본인이 관직에 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제자는 자장이 유일하다. 그런데 공자의 대답을 보면 이게 관직을 구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드는 답을 한다. 지금으로 보자면 어떻게 공부해야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수 있냐고 물어 보는 격인데, 이런 저런 걸 공부해야 한다고 대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신중히 하면 관직은 저절로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관직에 나가는 방법이 시험이 아니라 추천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요즘 말로 치면 스펙보다, 처신의 문제가 더 중요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논어』 「자장」편에는 동학인 자유(子游)가 자장에 대해서 평을 한다.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데 능력은 있지만 인(仁)하지 않다.” 증자(曾子) 역시 “자장은 당당하지만 함께 인(仁)을 행하기는 어렵다.” 앞서 스승인 공자가 자장에게 요구한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과 자유나 증자와 같은 동학들이 보는 자장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일처리 똑 부러지고, 바른 말만 하지만 왠지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




또 『논어』에 나오는 그의 말을 가만히 보면 그의 성격이 성급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장은 “선비가 위험을 보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덕에 대한 집념이 굳세지 못한 사람이나 믿음이 두텁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의욕적이긴 하지만 너무 급하게 판단하고, 단정적으로 말을 해 버리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불편할 때도 있다. 아마 이런 태도 등이 자장의 친구들로 하여금 “너는 참 능력 있고 똑똑하지만 함께 어떤 일을 하기는 불편하다.”라는 평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자가 자장이 지나치다고 말한 부분이 바로 이런 이유에 있지 않을까? 어떤 일을 하는데 자기가 의욕적으로 나서서 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어떤 일에 대해서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해 버리면 같이 하는 사람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2.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자하(子夏)의 이름은 복상(卜商)이며 공자보다 44살 아래의 위(衛)나라 사람이다. 자장과 같이 후기 제자에 속한다. 공자는 말년에 정치 참여의 길이 막히고, 교육 사업과 문헌 정리에 힘썼다. 그래서인지 공자의 말년 그의 곁에 있던 제자들은 대부분 공자가 죽고 난 후 각각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하나의 학파를 형성했다. 앞서 본 『한비자』에 나오지는 않지만 자하의 경우 『논어』 「자장」편에 자하왈(子夏曰)이 대거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영향력 있는 학파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자하가 문헌 연구에 뛰어났다는 것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문학(文學)에 이름을 올린 자하는 스승인 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기에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어』를 읽어보면 관직을 구하는 방법을 물었던 자장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기 어려운데 오히려 자하는 거보 땅의 관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공자는 자하에게 일을 결과를 성급하게 보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하의 성격이 어때했는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공자와의 대화나 동학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서 본 자하는 문헌 연구와 같은 일에 능했고, 그래서인지, 작은 일 하나하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자하를 두고 동학인 자유(子游)는 자하의 제자들이 “물 뿌리고 청소하고 손님 접대하고 어른 앞에서의 행동등 사소한 예절에는 잘하는데 반해서 근본은 모르는구나.”하고 평했다. 그러나 자하는 오히려 그러한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장과 자하의 어떤 면을 보고 공자가 과(過)와 불급(不及)을 이야기 했는지 확실시 알 수 없지만 자하의 제자와 자장의 대화를 보면 자하와 자장이 어떻게 성격이 다른지 확연히 볼 수 있다.


“자하의 제자들이 자장에게 사람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 물었다. 자장이 그대의 스승인 자하는 뭐라고 하시더냐고 물었다. 자하의 제자가 대답하기를 사귈만한 사람과는 사귀고, 사귀지 못할 사람은 거절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자장은 내가 들은 것과 다르다고 하면서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받아들인다. 또 좋은 사람을 격려해 주지만 모자라는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지극히 현명하다면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리 있겠는가. 만약 내가 현명하지 못하다면 사람들이 나를 거절할 것이니 내가 다른 사람을 거절할 기회나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子夏之門人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 其不可者拒之 子張曰 異乎吾所聞 君子尊賢而容衆 嘉善而矜不能 我之大賢與 於人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 『논어, 「자장」


사람을 사귀는 일에 대해서 자하의 제자들이 자장에게 묻는다. 그러자 자장은 자하와 다른 대답을 한다. 자하는 사귈만한 사람과는 사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반면에 자장은 현명하다는 것은 현명한 사람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포용해야 하는 것이므로 사귀지 못할 사람이란 없다고 대답한다. 확실히 적극적인 성격의 자장에 비해서 소극적인 자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문헌을 정리하면서 문장의 의미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승에게 질문하는 자하는 마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그가 제자들과 공부하는데 있어서 작은 일 하나까지 신경을 썼던 것은 단지 그의 공부가 문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작은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자신의 깨달음에서 기인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가 관직에 있으면서 어떻게 정치를 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큰 일이 중요하다고 작은 일에 소홀히 하면 결국 아무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작은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에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면 큰 일을 도모하기 어렵기는 하다. 공자가 자하에게 “미치지 못한다(不及)”라고 그래서 말한 것은 아닐까?


3. 과(過)와 불급(不及)은 같다


‘공자스쿨’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제자들의 질문에 항상 그에 꼭 맞는 대답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자는 제자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따라서 자공의 질문에 공자가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은 자장의 성격과 자하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더 나으냐고 묻는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은 결국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은 결국 같다


우리가 보기에 자신만만하고 어떤 일에서든지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자장에 훨씬 좋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자공 역시 공자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공자는 과(過)와 불급(不及)은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너무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한 것은 또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때, 그 상황, 그 자리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가장 적확한 것을 해 내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선비가 위험을 보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고 하는 자장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항상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때로는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자하의 신중한 태도도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살면서 때로는 대범하게 행동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남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더 고민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따라서 자장과 자하를 통해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더 나은 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는 일들 속에서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때에 맞추어 행동하는 시중(時中)의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글_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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