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대충 '도덕'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을 갖게 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그에 호감을 가져본 적이 나는 없다. 이른바 도덕적 명제들에 관해 떠올려보면 '지켜야 한다'는 느낌보다는 '왜 그런 거지' 싶은 생각이 언제나 더 강하게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일상생활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나는 '지켜야 한다' 또는 '지켜라'라는, 당위나 명령의 형식이 가끔 못 견디게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런 형태의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또는 (자의식이라는) '감시자'가 상정된 형태의 양식이 아닌 무언가가 분명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가 '도덕'이나 그로부터 딸려 나오는 당위, 명령들을 몹시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길에 침을 뱉거나, 누구를 때리고 죽이거나, 남의 돈을 훔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에는 대략 두 가지 가능성이 숨어 있는데, 한 가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도덕적 규율을 내면화하였을 가능성,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런 규율을 대체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윤리' 같은 것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누군가를 때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가 단기적으로는 나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며, 장기적으로는 인류 모두에게 그다지 득될 게 없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도덕적 명령'을 대체하는 특정한 윤리를 창출하는 것, 이게 어쩌면 삶을 꽤 살아볼 만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서설이 참 길었는데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결국 '도덕'과 '윤리'의 대립 속에서 '윤리'가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이거 참, 대단한 첫문장 아닌가? 솔직히 나는 그 유명한 『설국』의 첫문장보다도, 이 첫문장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외계의 어느 생물학자가 새로운 종(種)을 찾아서 지구에 당도하여 인간을 연구한다면 아마 저런 문장을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구에서 꿀벌은 꿀을 먹고 사는데, 인간이라는 종은 특이하게도 나무를 베어 가공한 돈이라는 걸 먹고 산다' 뭐 이런 식. 각설하고, 말하자면 이 소설은 상속받은 거액의 돈과 그 돈을 노리는 누군가와 지켜려는 누군가, 그리고 그 돈을 모조리 써 없애려는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돈을 모조리 써 없애려는 누군가'는 (독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돈의 소유에 몰두할 때, 그 소용돌이의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인간, '로즈워터씨'이다. 그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거대한 부(富)가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어째서 그 돈이 자신의 것인지도 이해되질 않았고, 그걸 또 자신의 자손에게 상속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되질 않았던 것인데 그런 (자연스러운) '의문'은 사실상 광기에 다름 아니다. 그의 아버지인 로즈워터 상원의원은 어떻게든 이 재산을 지켜서 자손만대에 전하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고, 그 돈을 가로채려는 변호사 무샤리는 말하자면 탐욕의 화신이다(어쩌면 이 양반이 '독자'와 가장 가까운 인물일수도……).
독자를 다루는 보네거트의 솜씨도 대단하다. 그는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를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지금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 욕심을 내지는 않더라도 들어올 돈을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주인공 로즈워터는 독자가 보기에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조금 미치기도 했고. 여하간, 그런 느낌을 안고서 끝까지 읽고나면, 도대체 미친 것이 누구인지 헷갈리고 만다.(작은 반전이 있다.) 그 말인즉, 지금 '정상' 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아니 너무 믿어서 그 믿음을 의심할 필요도 없는 가치들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현대인의 도덕은 보네거트가 펼쳐놓은 '블랙 코미디'의 세계 속에서 흔들리고 만다. 결국 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독자를 흔들어 놓는 사람이다. 무엇을 흔드는가? 믿었던 가치들, 숨겨놓았던 욕망들,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던 탐욕들…… 그런 것들이 무너지고 나면, 마치 '자기원인'과 같이 스스로 특정한 삶의 원리들을 창출해야내야 한다. 그러니까 좋은 소설은 가치를 흔들고, 훌륭한 소설은 가치들의 뿌리를 뽑고, 위대한 소설은 다른 원리를 창출한다.(재미있는 소설은……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또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소설을 읽는 내내 다른 소설 한편이 생각났다는 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체스코』라는 소설인데, 교황님이 선택한 그 이름,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일대기에 관한 소설이다. 로즈워터는 현대적 버전의 성자 프렌체스코처럼 보인다. 모두가 '미쳤다'고 인정하고, 실제로도 미친 것 같은 행동들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을 하는 인간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종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교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좋은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법과 도덕을 잘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걸 잘 지키고도 모두가 인정할 만큼 충분히 나쁜 인간이 될 수 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 "착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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