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백수 생활이 나름 뿌듯합니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의 막막함을 말이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젊음을 불살라가며 열심히 놀다보니 어느덧 4학년 2학기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친하게 지낸 대부분의 선배들은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한해에 기천만 원씩 들여가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돈도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몇 가지 중에 단언할 수 있는 하나는 나는 수험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누르고 앉아있지 못한다. 의지도 없고 끈기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우는 걸 잘 못한다.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그 선배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선배들이랑 했던 거라고는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학생회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수다나 떨고, 주변 선배/동기/후배들에게 무분별한 연애나 부추겼을 뿐이다. (아, 보람찰지도...)
위 자막은 맞춤법도 틀렸다. 그러니까 딱 이만큼 엉망진창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도 백수였구나. 이들이 자의식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과감하게 백수가 되거나 백수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백수로 살았던 선배들 덕분이구나, 우연한 깨달음은 필연이 되었다.
- 길진숙 지음,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북드라망, 26쪽
가끔 생각한다. 왜 대학원에 간 내 대부분의 대학 선배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간 것이 얼마나 유망한 것인지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않았을까. 왜 매번 교수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술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어떤 교수가 함께 연구하는 후배들의 공을 차지하는 이야기 따위만 열심히 해주었을까. 선배들은 공부가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단지 백수로 내쳐질 시간을 뭐로든 채우기 위해서, 혹은 할 일이 없어서 대학원에 간 것처럼 보였다. 단지 그것을 위해 기꺼이 그들이 말하는 불합리를 감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든 새로운 길이 생기면 대학원을 관두고 그리로 향했다. 왜 내가 친하게 지낸 대학 선배들은 그 밖의 여러 가지 길을, 혹은 백수의 시간을 보내는 여러 가지 태도를 가르쳐주거나 보여주지 못했을까. 한편으로는 그게 단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이라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고 싶지 않은 것, 할 수 없는 것은 알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은지 몰랐다. 주변에 이런 것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해라’ 혹은 ‘대학원은 가지 마라’ 라든가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지’라든가 ‘뭐든지 하면 되지! 넌 뭐가 하고 싶은데?’ 정도가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답이 되지 않았다. 힌트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제 세상에 내던져져야 했다. 나 같은 입장의 선배들이 많았을 텐데, 그 선배들은 죄다 숨어버렸다. 나도 그들처럼 숨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왔는데 어서 취직을 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유효한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목소리들이 제일 신경 쓰였다.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대학원과 공무원 그 두 가지 말고 다른 선택을 하려면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 저, 누구 없어요? 저 갇힌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사회나 집단의 명령이 아니라, 대중들을 따르면 되는가? 혜환은 대중도 믿지 않는다. 대중추수주의 또한 미혹이다. 대중도 나와 다르지 않다. 그들도 다른 삶을 모방하면서 주체적인 삶인 양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혜환은 마음의 이치를 따르면 된다고 한다. 정말 하고 싶은가, 행할 때 마음이 편안한가를 묻고 따져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누구 때문도 아니요,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오직 나의 충만한 생명 의지를 따를 것. … 백수 선비가 아니었다면 진짜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묻기 힘들었을 것이다.
- 같은 책, 173쪽
예상대로 백수로 사는 것은 괴로웠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보다 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이 제일 괴로웠다. 밤이 늦어 택시를 타는 것도,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시간 속에서도 무언가 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때 했던 것들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처음 하는 것들이었다. 학교가 아닌 직업학교에 간 것도, 학교 외 프로그램에 가입한 것도, 영화판에 뛰어들어본 것도 모두 내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너는 니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느냐”는 질타를 버텨가며 계속 막연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 주변을 기웃거렸다. 처음이라서 부끄러웠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자신도 많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백수 시간을 보낸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 내 장기가 된 것들, 지금 선배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은 모두 백수 시절에 얻은 것들이다. 그때는 내가 따른 것이 내 마음의 이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혜환 이용휴는 스스로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찾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스스로 진짜 내가 되기 위해서 글 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나는 진짜 내가 된다거나, 진짜로 내 욕망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해내고 있노라면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남들 다 하는 일이라고 따르지 말고 계속 좋아하는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또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배웠다.
그러니까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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