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다시 배우기
지난 금요일 블로그에 올라온 정화스님의 말씀 중 하나가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밥을 먹는 연습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이 올라올 때쯤 나는 처음 걸린 장염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자다 몇 번이나 일어나 화장실 불을 켜면서 아, 이게 장염이구나 싶었다. 어려서부터 소화기관이 말썽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었다. 많이 먹으면 많이 먹는 대로, 적게 먹으면 적게 먹는 대로, 뭔가 잘못 먹은 것 같아도 별 탈 없이 살아왔었다. 그런데 30대 초반이 되면서 위가 탈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장까지 탈이 난 것이다. 그즈음에는 딱히 과식을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끼니를 거르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갑자기 걸린 장염에 내 장기들에게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온음료와 따뜻한 물만 먹으며 이틀 가까이 보내는 동안 배고프다고 아우성치지 않는 위장을 보면서 내가 어지간히 잘못했구나 싶었다. 어차피 먹을 것들이라고 빨리 먹은 것, 심심하다고 다른 일을 하며 먹은 것, 거기에 기왕 먹는 끼니라고 뭔가 거창한 걸 먹으려고 하고, 마음이 상한다고 자극적이고 과한 음식들을 먹으려고 해왔던 일상들이 위장에겐 어지간히 힘들 일이었구나 싶었다. 튼튼했던 내 소화기관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 일상으로는 버틸 수 없는 것이구나. 그래서 밥을 먹는 행위를 연습하라는 정화스님의 말씀은 나의 끼니, 나의 일상을 다시 연습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데햇:D
그즈음 독서를 세끼 식사와 비유한 부분을 책에서 읽게 되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낯이 뜨겁고 속이 뜨끔해서 웃음이 났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 가도 책을 읽을 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와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이 생기면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
삼시 세끼를 먹는 데 특별한 목표가 있을 수 없다. 세끼를 끼니 때마다 이유를 달고 먹지는 않는다. 먹어야 하니까 먹고, 먹는가보다 하고 먹는다. 독서도 이 경지에 이르러야 일상이 된다.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는다. 규칙적으로 먹는다. 소화가 안 되면 한 끼를 건너뛰는 수가 있기는 하다. 배고프다고 한꺼번에 폭식해 버릇하면 나중에 건강을 상한다. 독서가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진 것은 세끼 밥 먹듯 독서하는 습관이 사라진 것과 무관치 않다.- 정민 지음, 『책벌레와 메모광』, 문학동네, 214~215쪽
가끔 읽어야 하는 책이 있을 때가 있다. 보통은 세미나나 글감이 걸려 있을 때인데, 기한을 앞두고 주말에 몰아 읽으려고 할 때마다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다. 읽어야 하는 책을 미뤄두고 있노라면 읽고 싶은 책이 생겨도 왠지 공부하기에 앞서 방청소를 시작하는 수험생처럼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것도 읽지 못하겠다. 새로 생긴 책을 읽자니 앞선 책에 미안하고, 앞선 책을 읽자니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어영부영 하다보면 둘 다 제대로 읽지 못한다. 책읽기에 정체가 시작되는 흔한 루트다. 그러다가 꾸역꾸역 휴일에 몰아서 읽다보면 문장하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어도 그냥 귀퉁이만 접어두고 지나간다. 쫓기듯이 읽고 났으니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그 쫓기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선뜻 다시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이 책이 체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자투리 시간을 책 읽기와 글쓰기로 채우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 같은 책, 217쪽
익숙해지면,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스러워지면 나머지는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세끼 밥’을 먹는 것부터, 차리는 것부터 연습하고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에 있겠지만^^; 하지만 산발적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로 꿰어지는 지점이 있을 때가 있다. 이 경우가 그렇다. 일상을 소박하게 꾸리고, 틈틈이, 천천히, 하나씩, 그때그때 해 나가면 해결이 될 일이 아닐까. 단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게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습.
어렸을 때부터 해왔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 시절은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그때 좋은 일을 그때그때 해왔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과거 내 식사법이 쌓여 위염이 되고 장염이 되었듯이, 지금의 연습들이 쌓이면 내가 지금 누리고 싶은 일상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디저트도 더 맛이 있겠지. 왠지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12월에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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