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은 피를 만든다
조선 영조시대에 살았던 사주당 이 씨(1739~1821)는 태교를 위해 『태교신기』를 지었다. 애가 나오기도 전에 주물럭거려서 좋은 아이로 만들고 싶어 했으니 매니징 엄마의 원조로 보아야 하나? 하지만 사주당 이 씨의 교육은 요즘 엄마의 교육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경쟁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달리는 목적과는 달리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덕 있는 아이로 만들자는 것. 어진 스승의 십 년 가르침이 어머니가 열 달 태교(胎敎)만 못하다고 여긴 사주당 이 씨는 태교를 위해 사서삼경과 제자백가와 의약 책을 두루 섭렵하여 태교신기를 짓는다.
태(胎)란 천지의 시발이고, 음양의 근원이며, 조화의 원동력이고, 만물의 시작이며, 태초의 왕성함이니, 음양이 혼돈하여 구멍이 뚫리지 아니하였을 때에 남녀 음양의 묘한 기운이 발휘되니 태교를 함으로써 은근히 돕는 공은 사람에게 있느니라. 바야흐로 여자의 덕(德)이 태아를 보호하고, 경맥이 달을 바꾸어 기름으로써 태아의 호흡이 통하고, 자궁의 영혈을 태아에게 공급해 주기 때문에 어머니가 병들면 자식도 병들고 어머니가 평안하면 자식도 평안하다."
─『태교신기』, <서문>, 승정원 우승지 신작
이 세상 모든 것은 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음양의 기운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흐름이 눈 앞에 펼쳐진 세계이다. 흐름을 본다는 것은 그 흐름에 개입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흐름에 개입하겠다는 의지, 그것이 바로 태교이다.
사주당 이 씨가 태교를 위해 『태교신기』를 지었다.
산모는 덕(德)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태아를 보호하고 경맥을 순조롭게 순환하게 할 수 있으며 태아의 호흡이 통하고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어머니의 성정(性情)과 재주와 덕에 따라 태아는 움직이고 정지하며, 어머니가 먹고 마시는 음식이 차가운가 뜨거운가에 따라 그것이 태아의 기혈이 된다. 그러므로 태아의 성품이 결정되지 않았을 때 태교를 하는 것은 진흙을 이기어 훌륭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몸의 진흙이란 몸의 진료인 정기신(精氣神)이다. 임신이란 산모의 정기신의 재료로 아이라는 그릇을 빚는 것이다. 정기신으로 이루어진 것 중 피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태아를 만드는 재료이다. 월경의 주요성분은 혈이다. 인체의 모든 부분의 생존과 건강은 혈의 영양과 자율에 의존하므로 혈액의 충분한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동의보감에서 혈이란 단순히 피를 공급하는 수혈의 의미가 아니다. 혈을 잘 생성하려면 덕을 행하는 마음인 태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주당 이 씨의 태교신기의 서문을 쓴 정인지는 실제로 자신의 마음가짐과 피의 생성이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원을 정하여 약을 복용하면 족히 병은 그치게 할 수 있으나 자식의 용모를 훌륭하게 하기에는 부족하여, 집안에 물을 뿌려 청소하고 조용히 거처하는 것이 태아를 편안하게는 할 수 있으나 자식을 훌륭한 재목이 되게 하기에는 부족하다. 자식은 혈을 근본으로 이루어지고, 혈은 마음에 의해 움직이니, 그 어머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식 역시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임신부의 도리는 삼가 공경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하며, 혹시라도 사람을 해치거나 미물이라도 죽일 생각을 하지 말며, 간교하게 남을 속이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질투나 훼방하려는 생각이 가슴에서 싹트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 후에는 입에는 망령된 말이 없고, 얼굴에는 원망스런 기색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잠시라도 삼가 공경하는 마음을 잊으면 이미 잘못된 혈이 되느니라.”
─『태교신기』, <음의서략>, 정인보
올바른 마음가짐은 곧바로 피의 생성과 직결된다. 덕 있는 아이의 출산을 위해 마음가짐부터 챙김으로써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개입하는 선현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오늘은 출산 후 증상 마지막 편이다. 산모가 선천적으로 약한 경우도 있지만 앞서 보았듯이 태교에 충실치 못해 산후 후유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의 수양 부족이 결국 기혈 공급을 부족하게 하고 출산 후 후유증을 크게 겪도록 한다. 순환하지 못한 삶의 패턴이 병을 부르는 것이다. 이제 출산 후 남은 증상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산후에 생기는 증상들
산후에 구역질을 하는 증상이 있다. 출산 후에 죽은 피가 비위로 들어가서 제대로 먹지 못해서 배가 그득하고 구토가 진정되지 않으면 구토가 나온다. 보통 구토가 나오는 이유는 뱃속이 차기 때문이다. 속이 따듯해야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는데 소화할 에너지가 부족하다보니 위는 저항한다. 지금 힘이 없으니 제발 들어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것이 구토이다. 이때는 비위를 따듯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저성탕과 향련환이 처방된다. 많은 약재 중 생강과 정향은 대표적인 약재로 정향은 차가운 복부를 따듯하게 한다. 생강은 위장이 차가운 것을 따듯하게 해주어서 구역질을 없애고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내려준다.
산후에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고 자기도 모르게 소변을 보는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방광은 소변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물을 받아들이고 나오는 통로가 있을 것 같은데 방광은 구멍이 하나밖에 없다. 통로가 없이 하나 밖에 없는 구멍에서 오줌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방광에 소변이 어느 정도 차게 되면 신장의 양 기운이 기화 작용을 일으켜서 오줌을 밖으로 배출하게 한다. 예컨대 방광을 시루떡 찌듯이 쪄서 수증기로 오줌이 배출되는 것이다. 방광이 쪄낼 힘이 없다면 기화 작용을 하지 못한 채 조금씩 빠져나가게 된다. 소변이 원활하게 나오지 않는 것은 신장, 방광이 기화 작용을 하지 못해서이다. 이때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 돼지나 양의 오줌보를 달인 물을 먹으면 좋다. 동물의 오줌보가 양기를 보해줄 거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이때는 삼출고가 처방되기도 하는데 양기(陽氣)를 보충하여 기화 작용을 목표로 한다.
산후에 생기는 증상들_구역질, 소변, 변비, 부종
산후에 변비 증상이 올 수도 있다. 변비는 몸에 물기가 부족해서 생긴다. 산모가 아이를 낳기 위해 기와 혈을 소모했으니 몸은 물기 빠진 장아찌가 된 상태이다. 진액과 혈이 충만해야 기운도 생성되는데 원료가 부족한 셈이다. 비위가 차서 음식을 제대로 소화 시키지 못하는 등 전체 대사가 원활하지 못하면 특히 비위와 대장이 건조해져서 변비가 심해진다. 이럴수록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하는데 더욱 예민해져서 화기를 더 조장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변비에는 소마죽이 처방되는데 기를 잘 돌게 하고 대변을 잘 나가게 한다. 소마죽의 재료는 차조기 씨(자소자), 삼 씨(마자인) 각각 같은 양을 짓찧어 물에 넣고 걸러서 즙을 짠다. 여기에 입쌀 가루를 넣고 죽을 쑤어 먹는다. 오랫동안 먹으면 더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산후에 생기는 부종이 있다. 산후 부종은 죽은 혈이 경맥을 따라 사지로 흘러들어 가서 생기는 것이다. 죽은 피를 없애야 붓는 것이 사라진다. 몸 곳곳에 죽은 피들이 잠복해 있는데 그 피의 응어리를 풀어서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약이 대조경산, 소조경산, 정비산이다. 부종(浮腫)이란 체내에 물이 정체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이다. 기는 일정한 속도로 체액을 순환시키고자 한다. 산후 부종은 죽은 피가 기를 허하게 해서 기의 속도가 느려져서 수분이 곳곳에 빠져나와 수분이 정체되는 것이다. 부종의 치료는 그 원인에 따라 다양하지만, 산후 증상에서는 우선 죽은 피를 풀어주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방들이 우선 정체된 물을 빼고 전체적인 기를 돌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덕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피는 온몸을 영양하고 촉촉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시작과 끝이 없는 고리처럼 순환하고 또 순환한다. 오장육부의 피는 12경맥으로 흘러가서 옴 몸의 장부, 형체, 구멍들의 조직기관을 끊임없이 연결함으로써 생명활동을 유지한다. 이런 활동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외물에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므로 생명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선현들이 태교까지 하면서 만들고자 했던 덕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 바로 피처럼 온몸을 연결하는 아이의 탄생일 것이다. 생명은 우월함을 중심으로 복속되는 관계가 아니다.
요즘 자살이 많아진 시대라고 정화 스님은 말씀하신다. 경쟁 사회에 맞도록 교육을 받다 보니 ‘~하면 안돼’를 많이 들어서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모르다 보니 자살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교육이란 오직 신분상승을 의미하므로 생명의 원리와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하여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열심히 살수록 자신을 부정하는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 태교의 목적이 덕이 있는 아이를 위한 교육이었음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덕 있는 아이는 피처럼 온몸을 연결하는 아이가 아닐까?
루쉰은 문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문예는 국민정신에서 발한 불빛이요, 동시에 국민정신의 전도를 인도하는 등불이다…… 중국인들은 인생을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추고 속이는 문예가 생산되고 그로 인해 삶도 그러하게 되었지만 무감해졌다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므로 작가들은 가면을 벗고 진지하게, 깊이 있게, 대담하게 인생을 살피고 또한 자신의 피와 살을 써내야 할 때가 도래했다면서 자신의 피와 살로 글을 쓸 것을 루쉰은 당부하고 있다.
피와 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덕과 피의 생성이 직결되는 교육, 피와 살이 되는 교육이 아닐까 싶다. 피가 내 몸을 영양 하듯이 피가 곳곳을 촉촉하게 하듯이 몸의 원리에 충실한 글을 쓰라고 루쉰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사주당 이 씨가 원한 덕이 있는 아이의 교육과 상통하는 글쓰기를 루쉰도 원했을 것이다. 그러니 루쉰의 피와 살이란 은유가 아니다. 진실로 그의 태도로 글을 쓴다면 피와 살이 충만한 몸과 삶이 펼쳐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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