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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산후 허로를 위한 지혜

by 북드라망 2016. 1. 21.


산후 허로를 위한 지혜



동서양의 산모 보호를 위한 금기


아이를 출산한 후에는 몸이 축나기 마련이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일상에 복귀하기 전에 충전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동서양 문화권에서는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관습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지방에서는 일주일간 씻지도 않고 침대보도 갈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침대보의 흰색이 피를 불러서 산모에게 출혈을 유발한다고 여겨서이다. 위생의 시선으로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의역학적 시선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조치다. 씻으면 피부가 열려서 외부의 기가 몸으로 들어오기 쉽다. 기가 허약한 산모는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정도 기운이 회복될 때까지 씻지 않는 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밖에도 산모를 보호하는 조치는 다양하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40일을 격리했다. 베트남에서는 출산 후 건강한 아이의 오줌으로 만든 술과 원기를 북돋는 약을 섞어서 마신 후 숯불을 지펴서 방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여 몸을 따듯하게 했다. 아들은 7일, 딸은 9일간 숯불을 계속 지폈다고 한다. 산모의 방을 따듯하게 하는 것은 동양 대부분 문화권의 특징인데 산모의 혈액 순환을 돕고 통증을 가라앉히고 자궁 수축을 촉진 시켜서 몸을 빠르게 회복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출산 후에는 몸을 따듯하게 해야 한다.



19세기 애리조나에 살았던 그래비족은 처음 아이를 낳는 산모와 경험이 있는 산모의 격리 기간을 다르게 정하기도 했다. 초산부는 20일, 경험 있는 산모는 4일이 주어진다. 초산모는 20일째 되는 날 가족 앞에서 목욕하는 의식을 치른다. 그런 다음 아기를 양지바른 곳으로 데려가서 이름을 지어주는데, 산모가 아이의 이름을 정한다. 아이의 이름이 정해지면 칩거와 금기 기간이 끝난 것을 축하하며 가족이 함께 식사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부족들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공통적인 것은 산모는 요리하거나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을 금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힘든데 옆에서 도와주고 함께 해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산모는 아이를 낳느라 기운을 소진한 상태이다.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조절할 힘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충분히 침투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지한 사람들은 기운의 오고 감을 눈치챘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부의 삿된 기운에서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일상생활과 격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욕로(蓐勞), 산후에 몸을 돌보지 않는 대가


우리나라삼칠일이라 해서 출산 후 3주 동안은 외부의 접촉을 최대한 금해 몸을 안정시키는 금기가 있었다. 이때 금기를 지키지 못하면 외부의 기운이 침투하여 균형을 잡지 못해 욕로라는 병에 걸리는데, 동의보감은 욕로에 걸리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아이를 낳은 1달이 안 되어 감정이 과하거나 과로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생것, 찬 것, 끈끈한 것과 딱딱한 것을 마음대로 먹어서 풍한에 상하면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 후 곧 욕로가 된다.”

─『동의보감잡병편, 부인


아이를 낳은 후 감정이 상했다는 것은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는 것이다. 기가 허한 상태에서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조절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게다가 일까지 했으니 몸의 기혈은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산모는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가능한 한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것을 먹어서 몸의 기혈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 욕로에 걸린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이 산모라는 것을 망각하고 일반인과 똑같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자기 처지와 몸의 상태를 외면했으니 병에 걸린 것은 자업자득인 셈.



출산 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욕로를 산후풍으로 보기도 한다. 출산 직후에는 골반을 구성하는 관절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부분이 나사가 풀린 듯 느슨해진다. 의역학적으로 보자면 기와 혈이 부족해서 몸이 헐거워진 상태이다. 욕로의 증상은 몸이 허약해지고, 여위며, 일어났다 누웠다 하고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며, 때때로 기침하고 머리와 눈이 혼미하여, 아프고 갈증이 나며, 밤에 잠을 잘 때 땀이 나고, 학질이 걸린 듯이 한열이 왕래한다. 출산 후 몸을 보호하지 못한 대가는 이렇게 혹독하다. 내 몸을 살펴서 미리 휴식을 취해야 후폭풍을 막을 수 있다.


산후에 반드시 금해야 할 것이 있는데 성교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금기시하는 판에 성교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감수하는 짓이다. 산후 100일이 지나기 전에 성생활을 하면 죽은 것처럼 몸이 마르고 온갖 병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동의보감은 강력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십전대보탕으로 기혈을 충만하게!


욕로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은 무엇일까. 많이 들어본, 먹어본 십전대보탕을 기본 방으로 하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십전대보탕의 뜻부터 살펴보자. 동양에서 숫자는 단순히 양을 표현하지 않는다. 상수학이라고 하여 동양의 숫자는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는데 십이란 숫자는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십전대보(十全大補)라는 처방명은 십(十)이라는 완전수를 사용하여 온전하고(全) 크게(大)(補)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허약하고 피로해서 기와 혈이 모두 약해진 것을 치료하고 능히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즉, 허약하고 피로해서 저절로 땀이 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니 기와 혈이 소진된 산모에게도 십전대보탕은 딱 맞는 처방인 셈이다.


십전대보탕의 기본 구성은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숙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 황기, 육계인데 이 중에서 천궁을 빼고 속단, 우슬, 별갑, 상기생, 도인을 넣어 가루 내어 쓴다. 십전대보탕을 잘 살펴보면 두 개의 처방이 섞여 있다. 혈을 생성하는 대표방인 사물탕과 기를 생성하는 사군자탕의 조합이다. 여기에 기와 혈을 더 보충하기 위해 육계와 황기를 더하였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여기에 우슬, 별갑, 상기생, 도인을 추가로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약성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의도를 알 수가 있다.



십전대보탕은 기와 혈이 소진된 산모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속단은 간과 신장에 작용하여 뼈와 근육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우슬은 골격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근육의 수축 및 이완을 도와주고 어혈을 제거한다. 별갑(鱉甲)은 자라의 등껍질이다. 간장과 신장에 작용하여 음기를 보하는 역할을 한다. 즉, 헐거워진 기운을 조이려는 조치인 것이다. 몸에 기와 혈이 허하면 열증이 발생한다. 열은 피를 엉겨 붙게 하여서 선지궁에 선지처럼 배 속에 덩어리를 만든다. 또한 뼈마디 사이가 뜨거워지는 열증이 생기는데 그것을 노열(勞熱)이라고 한다. 별갑은 음기를 보충하여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 상기생은 뽕나무에 붙어서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약재이다. 기생충은 그곳에 붙어서 모든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이런 기운의 작용이 피를 잘 생성하게 하므로 산후 허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도인은 복숭아의 씨로 복숭아는 불로장생의 과일로 여겨져 왔다. 이유는 어린아이나 신선의 얼굴을 복숭아에 빗댈 만큼 양기가 많은 과일이기 때문이다. 복숭아의 씨앗인 도인은 강력한 양의 기운으로 뭉친 어혈과 월경이 막힌 것을 치료할 뿐 아니라 신진대사를 잘 돌게 한다. 십전대보탕에 우슬, 별갑, 상기생, 도인을 추가로 넣어서 근골과 피의 생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가며


조선 왕실에서도 출산 의식이 있었다. 비빈이 해산 후 행하던 의식의 이름은 권초례(捲草禮)이다. 태어난 날 쑥으로 꼰 새끼를 산실 문에 매달고 대신 중에 자식이 많고 재앙이 없는 자에게 명해 3일 동안 소격전에 가서 재계하고 초제를 지내게 했다. 이 또한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환영하는 의식인 것이다.


문화권마다 다른 산후 조리는 산모를 보호하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였다. 최소 30~40일의 금기일이 끝나면 감사의식의 의례를 행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충분히 산모를 보호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정도로 회복되었음을 기뻐하는 의식이다. 아프리카 어느 민족은 산모가 회복된 후에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한 바퀴를 돌면서 아이에게 하늘과 땅을 보여주며 동서남북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 과정은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야 할 장소를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집에 돌아와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데 이때 아이는 비로소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이 됐다는 것은 아이가 왔던 곳으로 다시 갈 수 없음을 알려주는 의미라고 한다. 다시 갈 수 없다는 것. 지구라는 별에 여행을 왔고 일생 여행을 충분히 한 후에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새로운 생명의 출산은 동시에 산모의 기혈 소진을 의미한다. 그런데 산모의 기혈은 단순한 기혈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의 기운과 접속하여 지구별 여행자를 탄생시킨다. 지구는 시속 16,000km의 자전과 108,000km의 공전을 하는 중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우리는 지구라는 별 위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이다. 나의 기와 혈이 새로운 생명의 토대가 된다니 이처럼 경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기혈이 소진된 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우주는 곧 기혈의 보충을 약속한다. 기혈이 보충한 뒤에는 또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다. 여성의 몸, 그 몸을 통과하면 지구별 여행자를 뚝딱 낳을 수 있으니 생각할수록 경이로울 뿐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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