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결과
- 출산 후 여러 가지 증상들(2)-
서칭 포 슈가 맨(Searching for Sugar Man, 2011)이란 영화를 보았다. 그는 미국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음악성을 인정받아 대형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냈다. 하지만 고작 6장이 팔렸을 정도로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남아공에서 그의 노래가 불리기 시작한다. 어떤 경로로 흘러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남아공 사람들 가슴에 그의 노래는 스며들었다. 남아공에서 얼굴 없는 가수 로드리게즈는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 자살했다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이 영화는 로드리게즈의 죽음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상과 달리 그는 죽지 않았고 남아공에서 인기 폭발인지도 모른 채 그는 청소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남아공에 그가 살아있음이 전해지고 그에게 공연 제의가 들어온다. 주변 친구들은 사기일지도 모른다며 공연을 말린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은 성사되었고 그의 등장만으로 남아공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는 잠자고 일어났더니 전설이 되어버린 것. 롤러코스터도 이런 롤러코스터가 없다. 미국에서는 노동자, 남아공에서는 신화 속 인물과 진배없는 존재.
출산은 로드리게즈 만큼 엄청난 변화를 겪는 일이다.
눈 뜨고 일어났더니 인기와 돈이 생겼다면 어떻겠는가. 마냥 좋기만 할까. 어떤 연예인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한 것이 이루어지자 기쁨도 잠시 두려움과 우울증이 엄습했다고 한다. 왜일까. 의역학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북극과 열대 지방을 오가듯 급변을 겪으면 몸은 균형 감각을 잃게 되어 여러 가지 증상이 생긴다. 낯선 곳에 가서 물만 마셔도 설사를 하는 등 몸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던가. 출산도 로드리게즈 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겪는 일이다. 변화를 제대로 겪어내지 못할 때 일어나는 증상에 대해 저번 연재에 이어 알아보기로 하자.
말 못하는 증상
출산 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말을 못하는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증상은 죽은 피(敗血)가 심장으로 들어가 심장 기운을 막기 때문이다. 말을 못하는 것과 심장의 죽은 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동의보감에서 심장은 정신을 주관하는 곳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심장의 정신 작용을 통해 방향을 잡는 것에서 시작된다. 말의 방향을 결정하는 심장 기운이 막혔으니 말문이 막히는 것은 당연지사. 이 밖에도 말이란 심장과 폐 그리고 신장이 만들어내는 삼중주의 결과물이다. 그 첫 스텝인 심장이 막혔으니 폐와 신장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도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대원칙이 적용된다. 죽은 피로 인해 불통 상태를 해결하려면? 막힌 것을 통하게 하는 펄펄한 기운이 필요하다. 기를 증진 시키는 근원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먹으면 된다. 먹어야 기혈이 생성되니까. 그러므로 말 못하는 증상에 처방된 약은 어이없게도 비장의 기운을 북돋는 약이다. 하여 음식을 잘 먹게 하여 기를 생성하는 약 ‘칠기산’이 말 못하는 병증에 처방된다.
기를 증진시키려면 잘 먹으면 된다.
귀신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증상
출산 후 귀신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증상도 나타난다. 산후에 귀신을 보고 말이 안 맞는 것도 죽은 피가 심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심장이 막히면 말을 못하기도 하고 귀신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도 한단다. 더 심각한 증상도 있다. 심하면 옷깃을 쓰다듬고 허공을 더듬으며 헛소리를 하고 정신을 잃기도 한다. 발광하기도 하고 중풍으로 몸이 뒤로 젖혀지는 각궁반장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산후에 헛소리하는 것은 모두 심장의 혈이 부족하여 심신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해서이다.
잠시 귀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귀신을 본다고 하면 외부에서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 귀신이란 심장 기운이 막혔을 때 생기는 내적 사건이다. 내 몸에 기혈이 잘 돈다면 귀신은 등장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몸의 정기신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할 때 귀신은 나 스스로 불러들이는 기운이다. 귀신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몸에 기와 혈을 충만하게 생성하면 된다.
내 몸의 기혈이 잘 순환되지 않을 때 귀신이 출몰한다.
명리학에 귀문관살이란 살이 있다. 귀신을 본다는 특별한 살로 취급되는데 원리적으로 보면 오행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배치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한다. 귀문관살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비관해야 하나?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보자면 귀문관살을 타고났음은 기와 혈이 충만하지 못함을 예고할 뿐이니 다른 사람보다 기혈 순환이 잘되는 일상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산후 귀신을 보는 증상에는 어떤 약이 처방될까. 매우 정교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질 것 같지만 치료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혈을 충만하게 해주는 ‘팔물탕’ 같은 약이 처방으로 충분하다. ‘궁귀조혈음’도 처방되는데 산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며, 배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눈에 꽃이 보이거나 입을 악물고 정신이 혼미한 것을 치료한다. 평소에도 기운이 머리까지 공급되지 못하면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런 때에도 기혈 공급이 핵심이다. 괜한 비싼 검사에 집착하지 말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여서 기혈 확보에 주력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젖을 나오게 하는 법
산후에 젖이 나오지 않는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기혈이 왕성하여 막혀서 젖이 나오지 않는 것과 기혈이 약하여 말라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막혀서 나오지 않을 때는 혈을 맑게 하는 '누로산'이 처방되고 젖이 말라서 나오지 않을 때는 돼지족발에 감초, 천궁, 통초로 구성된 '통유탕'이 처방된다. 이 밖에도 젖을 나오게 하는 처방은 다양하다.
* 저제죽(渚蹄粥) : 젖이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돼지 발굽 4개를 보통 해먹듯이 손질하여 물 2말에 달여 1말이 되면 돼지 발 쪽을 버리고 왕과, 통초, 뻐꾹채 각각 120g을 썰어서 함께 넣고 달여 6되가 되면 찌꺼기를 버린 다음 파 밑과 약전국, 좁쌀을 넣고 묽은 죽을 쑤어 먹는다[본초].
* 또 한 가지 처방
젖이 나오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 상추(부루)씨, 찹쌀 각각 1홉 등을 보드랍게 가루내 물 1사발에 넣고 고루 저은 다음 감초가루 4g을 타서 달여 자주 먹으면 좋다[운기].
또는 맥문동 가루 8g을 술을 두고 간 서각즙 1잔에 타 먹는다. 또는 붉은팥 달인 물을 먹는다. 또는 잉어국을 먹는다[본초].
* 또 한 가지 처방
젖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멧돼지 기름 1숟가락을 데운 술 1잔에 타서 하루에 세 번 먹으면 젖이 곧 나오고 젖이 많이 나와서 5명의 어린이에게 먹일 수 있다. 음력 섣달에 잡은 돼지기름이 더 좋다[본초].
술지게미를 끓여 먹어도 좋다[속방].
산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원인을 따지고 보면 기혈이 부족하여 뭉치고 막힌 것으로 원리는 간단하다. 막힌 것을 뚫어야 한다는 전제를 놓치고 화려한 증상에 휘말리면 출산은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 된다. 출산은 몸의 기혈을 쏟아내는 일이다. 출산 후 기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몸의 순환을 돌리기 위한 기혈 확보에 힘써야 한다. 기혈만 확보된다면 귀신을 보는 일도, 말을 못하는 것도, 유방이 막히는 일도 한 방에 해결된다.
각종 양방의 정밀 검사는 우리를 유혹한다. 정확한 원인과 병증을 알려줄 거라면서. 막상 검사를 하고 나면 결과는 결과일 뿐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보자면 화려한 병증으로 접근해서는 근원적인 치료는커녕 두려움만 낳을 뿐이다. 예컨대 말을 못한다고 이비인후과에 가거나 귀신을 본다고 정신과 치료를 해봤자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핵심은 기와 혈의 확보이다. 이런 원리를 로드리게즈는 알았던 걸까.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면 된다.
그는 공연을 갔다 온 후 바로 일상으로 복귀한다. 남아공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일상에서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가 공연을 시작할 때 한 인사말 “살아있게 해주어서 고맙다(Thanks for keeping me alive)”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기 말대로 살아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태도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다. 극과 극의 변화 속에서도 담담하게 일상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여기에서 나온 듯하다. 4번의 방문 동안 30회 정도의 공연을 남아공에서 하면서 그는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모두 나누어 주었고 일상으로 돌아와 여전히 청소와 노동을 하면서 일상을 꾸린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바꾸지도 인기를 누리려고 하지 않았다.
남아공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사는 남아공은 제한적이며 억압적이며 차별적이었다고. 남아공은 흑인과 백인이 공존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로드리게즈의 노래는 사람들의 뭉친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몸의 순환은 충만한 기혈을 통해 소통된다. 그의 충만한 기운이 남아공의 억압을 자연스럽게 푼 것이 아닐까. 인종차별의 장벽은 남아공 사람들에게 절망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드리게즈의 노래는 막힌 곳을 돌려주는 기혈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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