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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나 혼자 '잘' 산다? 자립의 두 얼굴 - 자유와 권태 사이

by 북드라망 2015. 12. 4.


자유로움과 권태 사이

 


나는 올해들어 이용자 둘을 번갈아 활동 보조 하고 있다. 평일은 H와 함께 보내고, 일요일에는 J를 만나러 간다. (나와 J는 H와 일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센터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친구 사이인 그녀 둘을 동시에 ‘활보’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H와 J는 서른 즈음의 아가씨들로, 그 둘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그들은 같은 시설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그 곳에서 서로 친해졌다. 그들이 있었던 시설은 홀트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시설 안에는 장애인시설, 미혼모시설, 병원, 식당, 밭, 교회, 특수학교 등이 모여 있다. 그 안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시설 밖을 빠져나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시설은 곧 온 세상이었다.



어머, 둘이 친구였어?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그곳에서 나오게 된 걸까?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먼저 시작한 것은 J였다. J는 부축을 좀 받아야 하긴 하지만 혼자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립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수월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훨씬 더 유연하게 운영되는 그룹 홈 같은 곳에서 생활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자립에 관한 의사를 좀 더 일찍 관철시킬 수 있었다. 


반면, H는 성인이 되어 보다 엄격한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시설 밖을 나가서 살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립생활을 J보다 좀 늦게 시작했다. 게다가 시설에서는 신변이나 생활을 위한 모든 걸 다 해줬고, 본인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시설 안에서의 생활이 마냥 좋고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자유’가 없었다. 사적으로는 커피 자판기 동전을 제외하고는 돈을 지니고 있을 수도 없었고, 기상과 취침시간, 밥을 먹는 시간, 활동 내용 등 거의 모든 것들이 타의에 의해 정해졌다. H의 이야기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어영부영하면 점심이고, 밥 먹고 재활 프로그램이나 레크레이션 같은 걸 하고 나면 저녁이고, 밥 먹고 좀 있으면 잘 시간이었다. 그녀는 일상이 반복되는 게 숨이 막히도록 갑갑했다.


시설을 나온 지 일 년 반밖에 되지 않은 H, 나는 그녀가 만난 첫 활보였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비를 잘 넘겼고 그 동안 쭉 일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자립 생활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녀는 시설을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핸드폰을 개설했다. 그리고 주택청약, 정기 적금 등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얼마 안 되는 돈의 대부분은 적금 통장에 들어갔다. 덕분에 하루하루 늘어가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게 요즘은 그녀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자립을 하고 가장 좋은 건 하고 싶은 것을 제한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도 실컷 갈 수 있고(그래서 H는 교회를 두 곳이나 다닌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 그게 그녀한텐 ‘자유’라고 했다.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녀는 최대한 많은 활동 보조 시간을 받고 싶고, 또 돈을 많이 모으려고 한다. 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독립! 자유~!


그녀의 일상은 분주하다. 사이버대학, 전동축구, 야학, 연극, 음악단, 교회 활동 등 벌인 일도 많다. 그래서 정작 뭐 하나에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물며 친한 친구와 만나는 것도 힘들다.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그녀는 이런 바쁜 일상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힘이 달린다고 했다. 그래서 일이 없을 땐 푹 쉬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 그녀가 아무 것도 안 하고 푹 쉬는 게 더 힘들어 보였다. 카톡이나 문자, 아니면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는데다가 그녀는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립을 한 지 5년이 넘은 J. 요 몇 주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J는 나한테 그랬다. “우울해.” 속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란다.  “그냥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심란해.” 뭐라도 좋으니 왜 그러는 것 같은지 이야길 해 보라고, 얘길 하면 좀 속이 풀릴 때가 있다고 꼬셔 봐도, “별 일 없어. 그냥 재미없어. 심란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처음에 J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언어 전달이 잘 되진 않지만 필담으로, 그러니까 몇 자 안 되는 글자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해 주면 좋은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취미와 기호도 알게 되었다. 함께 피아노를 쳤고, 야학에서 인기 있는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고병권 ‘아저씨’(J가 부르는 호칭)의 책을 소리 내서 읽기도 하고, 쇼핑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그녀가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웬일인지 얼굴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


“별 일 없어. 그냥 재미없어. 심란해.”


이용자가 해 달라고 하는 걸 해 주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닌데, J처럼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옆에서 무엇을 해 줘야 할지 사실 난감하다. 그래서 요새는 뭘 하자고 하지 않고 그냥 하던 걸 한다. 기름을 잔뜩 넣어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들을 볶고(J는 느끼한 음식들을 좋아한다), 큰 밥그릇에 그걸 담아 같이 먹는다. 하지만 밥을 해 먹는 것도 기분 전환을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릇을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고, 바닥을 닦고, 빨래를 돌리고… 남은 일을 하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진다. 그녀는 노트북으로 계속 안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다 보고 나면 유투브에 들어가서 K-Pop 동영상을 틀어놓는다. 간혹 그걸 같이 보기도 하지만, 계속 그걸 보고 있으면 힘이 좀 빠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보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책을 읽게 되었고, 그녀는 내가 같이 책 읽을까 하면 싫다고 했다. 미묘하게 마음이 어긋남을 느끼는 순간, 그녀는 어김없이 그런다. “너 일찍 가고 싶으면, 일찍 가도 돼.”


몸과 마음이 한 몸이 되지 않을 때, 일은 갑절로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이 한 시간 일찍 끝나 집에 온 날, 나는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다. 씻지도 않고 바로 누워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감기 기운까지 더해져 좀 앓았다. 활보를 하면 정말 미묘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람과 기운을 주고받게 된다. 그리고 활보를 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는 자꾸 대책 없이 질문만 많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감사할 수 있을까? 우선, 나부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우리 일상의 권태로부터 처음 그들이 자립을 해야겠다고 발심한 그 ‘자유로움’으로 눈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_신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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