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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과거 나에게 다시 배우는 진정한 '자립'의 마음가짐

by 북드라망 2015. 9. 4.


그 활보의 흔적은 다 어디로 갔나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활동보조 일이(이하 활보) 근 한 달 전인 올해 7월부로 마무리 되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용돈을 받으며 편히 먹고 자는 생활 중.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른 지금, 활보를 하는 나와 하지 않는 나의 생활은 매우 다르다. (지하철을 달렸던 시간에 방을 기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참 낯설다. 넌 누구냐!, 활보를 하는 나의 모습이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던진 ‘활보를 하는 나는 어땠지?’라는 질문.  낯설게 느껴지는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활보를 통해 얻은 배움 중에 혹여 벌써 저 구석으로 치워 놓고 잊은 것이 있진 않을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자 활보를 통해 처음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려봤었고 자립이라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본 시간이었기에 그런지, ‘자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립이란 무엇일까? 홀로서기?



스무 살 때부터, 완전 범죄가 아닌 ‘완전 자립’을 꿈꿔왔다(^^). 받아먹을 수 있을 때 받아먹으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온실 속 화초로 곱게 크다 보니 나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경제관념과 생활력이 0인 20살짜리 아기였다. 그런데 여러 알바를 전전하면서도 나의 자립 시도는 매번 까보면 꽝이었다. 수입은 거의 용돈으로 쓰고, 부족한 생활비는 매번 불편한 맘으로 가족에게 타 쓰곤 했다. 일은 하는데 전 보다 단 한발자국도 자립에 가까워지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왔다. 나름 고액의 안정된 수입을 자랑하는 활보를 시작하며 다시 자립을 꿈꾸게 된 것. ‘2014년 1월부터 자립함. 경제적 지원 일절 사절’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결과는 또 한 번의 실패. 분명 전보다 훨씬 큰 액수를 벌었는데! 또 다시 메워질 수 없는 빵꾸가 생겼고 가족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그리고 꽤 많은 생활비를 담당했음에도 노력하고 있다는 기분 대신, 여전히 찜찜함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 찜찜함은 내가 ‘자립’이라는 단어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듣게 된 경험으로 이어졌다. 나의 이용자, 그리고 장애인 야간 학교의 많은 사람들. 신기하게도 내가 만나는 장애인들 백중에 구십구는 자립을 했거나 자립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한 이들이고 대부분은 어느 정도 가족의, 지인의, 국가의 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어마무지하게 밀려오는 이 찜찜함은 뭐지! 이들이 말하는 자립이란 뭘까? 내가 생각했던 자립은?  



그때 나는 내 자립의 방점이 ‘타인으로부터의 백퍼센트의 경제적·물리적 독립’에만 콕 찍혀 있다는 걸 알았다. 아차 싶었다. 물론 경제적·물리적 독립이 자립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의 자립에는 ‘생활’이라는 측면이 송두리째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데, 당시 나는 내가 돈을 어디에 얼만큼 쓰고 그 패턴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덮어 놓고, ‘많이 벌고 적게 쓰면 자립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ㅋㅋㅋ 이용자 언니가 언제나 염원하는 자립이 어떤 건지도 그제야 감이 좀 왔다. 다른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만, 자기의 하루를 스스로 설계하면서 어디에 가고 뭘 할지 얼마나 쓸지 등을 자신이 알고 또 결정하고 감당하는 것. 그러니까 자기 생활에 대한 권리를, 그리고 더불어 책임까지 갖는 삶 말이다.  


당시 나는 돈을 어디에 얼만큼 쓰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셈을 해본 몇 달간의 생활비 목록에서 나는 내 돈이자 마음, 욕심, 그리고 생활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꽤나 적나라해서 충격도 좀 받았다. (특히 택시비와 옷 부분… 남보고 사치스럽다 욕할 때가 아닌 걸 아주 잘 알았음.) 그리고 나름대로의 생활 재배치를 해보았다. 부모님 통장으로 자동이체가 되던, 어마무시한 핸드폰 요금비를 줄이고 줄여 나한테 가져오는 걸로 시작해 이것저것. 그러자 (슬프게도) 내 욕심을 적당히 조절하면 활보 급여와 기타 수입으로 한 달을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똑똑히 확인되었다. 그리고 들끓는 욕망으로 한 달을 더 실패하고 나서 2014 3월, 단 한 달이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찜찜한 마음 없이 자립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자 활보가 ‘직업’으로서 내게 가지는 의미도 더 굳건해졌다. 용돈벌이의 터가 아닌 밥벌이의 터! 이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신성한가. 나를 먹여 살려주고 내 생활을 돌아가게 해주는 일인데, 어찌 다른 알바처럼 쉬이 그만두거나 내 사정에 따라 오락가락 할 수 있으리오. 그리고 늦게 일을 끝내주면 항상 미안하다고 하는 이용자 언니에게, 나는 처음으로 ‘괜찮아요’ 가 아닌 ‘전 좋아요’로 대답했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맙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기껍게 일한다는 걸 언니도 느꼈는지 전보다 좀 더 많은 일을 나와 하려 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일한 것이 서로에게 윈윈이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본 내 모습은 역시나 지금과 참 다르다. 경제적으로 다시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요새 다시 내 생활에 대한 관심 줄을 뚝 끊고 살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미래의 이상으로 그려 본 내 모습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의 내 모습에 지금 생활이 환기 된다니. 유명한 누구의 말씀대로 정말로 배우고 나면 끝이 아니라 때때로, 항시 익혀야 한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깊이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이걸로 근래에 다시 찾아온 찜찜함의 원인을 찾은 듯 하다! 대학교로 돌아가려는 지금, 활보를 할 때와 똑같은 생활패턴을 유지할 순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 찜찜함에게, 내 생활을 책임지고 꾸려나가려는 시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다시 뺏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글_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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