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활보활보] 진정한 자립 - 자립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근기'


자립하고 있는 G




g는 요즘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그는 2년 전에 평생 동안 살았던 집에서 나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자립을 하기 전에 도와주는 곳이다. 여기에는 g말고 2명의 장애인이 더 살고 있다. 이들 모두 2년 안에 다른 곳으로 나가야 한다. g를 포함해서 다른 장애인들 또한 이 기간 동안 자신이 살 곳을 정하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이곳을 거쳐 가고 자립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g를 포함해서 3명의 장애인들은 모두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일단 내가 살 집부터 구해 볼까~ 어디가 좋으려나~


g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그래서 한 달에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들어온다. 따라서 g는 집만 있으면 혼자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왜냐면 내가 지금 버는 돈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돈 씀씀이가 다르겠지만.) 그래서 얼마 전까지 집 알아보는데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그런데 그는 집을 얻을 정도의 돈이 없다. 사실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 이면서 신용불량자다. 수급되는 통장을 제외하곤 모든 통장이 다 압류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에겐 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LH , SH 공사에선 임대주택사업을 한다. 내가 본 것은 2가지 경우다. 하나는 공사에서 집을 산 후 분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7500만원까지 지원해 주고 당첨자가 알아서 집을 구하는 것이다. g는 후자를 선택했다. 왜냐면 공사에서 직접 공급하는 주택은 가격도 비쌀뿐더러 집이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지조건이 좋지도 않았다. 반면 75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제도는 g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 전 집을 구했다. 하지만 그 집을 구하기까지 엄청 고생했다. 일단 집 주인들이 임대사업을 통해 집을 구한다고 하면 바로 거절했다.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하면 또한 거절했다. g를 반겨주는 곳은 오직 부동산중개사들 뿐이었다. 그들은 g에게 친절했고, (적어도 내가 만나본) 어떻게든 집을 소개시켜 주려고 했다. 물론 중개사에게는 그것이 먹고사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장애인 차별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개사들이 소개해 주는 집은 거의 대부분 반지하였다. 7500만원에 왜 반지하 밖에 소개받지 못했냐면 g가 방 2개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g는 방이 하나면 활보와 하루 종일 방에 같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싫다고 했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활보와 싸웠을 때 같은 방에 있는 건 정말 싫기 때문이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았으니 혼자 있고 싶어서 일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 살 때 자기 방이 있었으며, 또한 평생 누군가와 같은 방을 써본 적이 없다. (적어도 g의 말에 의하면 말이다.) 그러니 방 2개있는 반지하가 아닌 집을 구하는 건 그가 평생에 걸쳐 생활해 온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지하에서 살기 싫음은 다른 것보다 그의 깔끔한 성격 때문이다.)


내 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


결국 g는 방 2개짜리 지상의 집을 구했다. 그런데 이 집은 사실 기존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구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집을 구해도 반지하 뿐이 없을 때, 나는 인터넷 집구하는 유명한 사이트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곳에 있는 집을 검색하다가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곳에 g가 원하는 집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는 것. 사실 나는 내가 살 곳은 아니지만 g가 옆에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며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중개소에 전화도 열심히 걸었다. 그렇게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후 g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렇게 g가 원하는 집을 구했다.


g는 무엇 때문에 독립을 결정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집에서 나왔고, 2년이 지난 후 드디어 혼자 산다는 것이다. g는 손을 잘 못쓰기 때문에 누가 먹여주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다. 즉, 혼자선 살 수 없는 몸이다. 그래서 독립을 하긴 했지만 혼자 사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각종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수급자로서 정부에서 돈을 받기도 하고 임대주택을 얻었으며, 활보를 지원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 독립이란 부모님의 도움에서 벗어나 다른 제도의 도움을 받는 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그가 지금 받고 있는 각종 혜택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치열하게 정부와 싸웠고, 자신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각종 제도를 얻었다. 물론 혼자 그런 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들과 연대했고, 그들이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이런 제도들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투쟁이라는 행동을 통해 이룬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전에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받는 것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이런 혜택은 자신의 피와 땀이 섞인 g의 의지가 들어간 것이다. 이런 것과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너무도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이런 제도를 얻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고 혜택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g는 이런 투쟁을 통해 제도를 얻는 것 이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근기를 얻었다. 사실 지금 g를 보면 혼자 산다고 하는 그 어떤 설렘이나 두려움을 볼 수 없다. 그저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었고 가야 할 곳을 가는 것처럼 태연하다. (그가 눈에서 빛이 나고 흥분할 때는 오직 이사 갈 때 살 물건을 고를 때다.)


내가 볼 때 g는 이미 독립, 아니 자립했다. 집을 무작정 나온다고 다 자립은 아니다. 하지만 자립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행동하면서 그는 이미 자립한 존재가 됐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자립이란 단순히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나를 위해 행동한 만큼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내가 볼 때 g는 이미 독립, 아니 자립했다. 이제 남은 것은...


g는 한 달 후에 이사를 간다. 이제 집도 얻었고 돈도 매달 들어오고 혼자 사는 남자이니, 하나만 더 있으면 된다. 바로 여자다. 그는 이미 15년 넘게 연애를 못하고 있다. 나는 g의 연애상담을 했었다. 그리고 그가 왜 연애를 못하는지 안다. 그가 연애를 못하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눈이 너~ 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이상형을 밝힐 순 없지만 이상형을 유지한다면 결혼은커녕 연애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눈이 높은 덕에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여러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g는 여전히 앞으로도 눈이 높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점이 연애하기엔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눈이 없다면 세상은 그에게 눈을 낮출 것을 요구할 것이고 거기서 만족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g가 눈을 낮추지 않는 이상 계속 싸울 것이고 이런 의지는 그에게 더 낳은 세상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더 자립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글_태연(감이당 대중지성)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