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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나는 화장실에서 하는 모든 일을 제일 잘하지!

by 북드라망 2015. 10. 2.


화장실 청소가 가장 쉬웠어요



활동보조 일을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 스스로 돈을 버는 일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서울 오기 전 남원에 있는 돈가스 집에서 서빙을 하는 일이 내 첫 아르바이트였다. 나름대로 일을 즐겼고 싹싹하게 손님을 대해서 사장님에게 귀염을 받았었다. 하지만 일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일 나가기 싫다고 부모님께 많이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다행히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돈을 모아 감이당에 공부하러 올라왔다. 그런데 돈 관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두세 달 만에 돈이 바닥나버리고 말았다. 다시 일하려는데 이번에는 서빙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감이당 사람들은 색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활동보조이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지체 없이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 도전!



교육을 마치고 운 좋게도 바로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일하는 시간도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시간대고, 이용자들의 집이 지하철로 세 정거장밖에 차이 나지 않아 편리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용자는 두 명이다. 엄마뻘의 g언니와 스물아홉 살 h언니. 외출을 함께하거나 수업을 보조한다거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외에는 집안일을 돕는다. 그중에서 요리는… 두 언니 모두 나에게 잘 맡기지 않는다(^^;;). 나 또한 내 솜씨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설거지나 정리 등 청소에 공을 들인다. 그중에서 조금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이상하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장실과 인연이 많다. 기숙사에서 청소 제비뽑기를 하면 꼭 화장실을 뽑았다. 돈가스 집에서도 매일 화장실 청소는 내 몫이었다. 지금 Tg공부방에서도 화장실 청소는 내 담당이다. 좀 귀찮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다. 비위가 강해서일까? 청소를 마치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렇게 4년이 넘도록 나도 모르는 새에 은근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이 생각지도 못한 경력(?)이 활보하면서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청소하고 나오면 언니들이 수고했다며 미소로 답한다. 그럼 나는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애교를 덧붙인다. “우와 언니 짱 덥다. 열심히 했으니까… 잠시 쉬고 가실 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 있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목욕을 시키는 일이다. h언니에게 처음 출근한 날, 언니가 화장실에서 외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됐네~! 됐어! 잘 씻기기만 하면 오케이야~!” 언니가 깔깔 웃으며 흡족해했다. 예전에 외할머니와 가까이 살았었는데 할머니가 팔을 수술하시는 바람에 가끔 씻겨드린 적이 있다. 할머니는 평생 농사를 지으셔서 피부가 굉장히 거치셨다. 그리고 빡빡 닦는 걸 좋아하셨다. 내가 아무리 힘껏 밀어도 할머니는 “빡빡 문대! 빡빡! 그렇게 해서 쓰겄냐?!”하고 무서운 전라도 성깔을 보여주셨다. 그 말씀이 기억에 남아 h언니도 세게 씻겼다. 다행히 언니도 그걸 좋아해서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됐네~! 됐어! 잘 씻기기만 하면 오케이야~!”



그런데 과유불급이라더니… 잘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잘하려다가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내 손을 돌보지 못한 것이다. 원래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중학생 때까지 선크림과 바디 워시를 천연제품으로 사용했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나를 포함한 세 명 몫의 목욕을 하다 보니, 무리가 된 것이다. 손끝이 갈라지고 수포가 올라왔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물에 닿으면 더 심해져 버렸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으로 수술용장갑을 끼고 보조하는 것이다. 언니들에게 ‘내 손이 이렇게 됐어ㅠ’라고 엄살떨기는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둘 순 없었다.  괜히 참고 있다가 아무도 씻지 못하는…!(특히 내가 문제다. 언니들은 다른 활동보조라도 있는데 나는?!) 이런 심각한 상황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언니들에게 말을 했더니 생각보다 가볍게 받아주었다. 또 g언니는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을 끼면 손을 더 보호할 수 있다고도 알려줬다. 장갑의 느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뭔가의 벽이 생길까 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걱정해주는 언니들이 고마웠다.   


내 몸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깊숙이 소통해야 하는 이 상황이 신기하다. 이젠 내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꾀병을 부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용자들을 생각하면… 꼬박꼬박 출근하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가끔은 스스로 독려하는 의미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한다(유제품이 습진에 좋지 않아서 자제해야한단다!ㅠㅠ). 이런 내가 언니들 눈엔 한없이 어리게 보이나 보다. 얼마 전, 이번 추석에 집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는데 두 언니의 반응이 똑같았다. 웃으면서 “그래, 다녀와~”했다. ‘벌써 대타 구해 놨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엄마 많이 보고 와라’ 등등, 말은 안 했지만 언니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주는 언니들, 이런 인연을 살면서 또 만나볼 수 있을까?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주는 언니들을 또 만나 볼 수 있을까?



글_한라(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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