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혜
- 택수곤 -
앞 괘인 ‘지풍승’은 순탄하게 올라가며 조금씩 쌓아 큰 것을 이루는 형국이었다. 성장이 정점에 도달하면 다시 곤궁함에 빠지게 되니 이것이 바로 ‘택수곤(澤水困)’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독은 바로 ‘성공’인지도 모르겠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 될 수 있으리라. 성공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늘 조심하고 신중하라는.
그런데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탄하게 살고 싶어 한다(아닌가? ^^;).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여주인공 라일리는 태어난 후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 행복이 계속될 것이라 믿었다. 영화에 나왔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라일리는 겨우 12살이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 ^^ 갑자기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는 뇌 속에 있는 조이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일이 커지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영화 속 라일리처럼,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면 어떤 행동을 할까? 무언가를 탐닉하며 곤란함을 잊어보려 한다. 하지만 잠깐일 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탐닉으로 이어지는 이 악순환! 삶은 어찌 이리도 괴로울 뿐인가.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이 택수곤 괘와 연결된다. 이름처럼 ‘곤란하고 흉한 괘’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택수곤 괘사
위[上]는 ‘택(澤)’이고 아래[下]는 ‘수(水)’이다. 물상으로 보면 澤은 연못이고, 水는 물이다. 연못이 위에 있고 물은 아래에 있다는 건 무엇일까? 연못에 찰랑찰랑해야 할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연못에는 물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곧 ‘곤(困)’이다.
困은 나무[木]를 ‘다발로 묶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어 ‘붙들다’ ‘괴로움을 겪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무가 우리[口] 안에 갇혀 자라지 못해 어려운 모양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택수곤의 이름에는 ‘곤궁하다’라는 뜻이 있다.
위는 태괘[澤], 아래는 감괘[水]로 구성되어 있다.
困 亨貞 (곤 형정)
‘곤’은 亨하고 貞하니라.
大人 吉无咎 有言不信 (대인 길무구 유언불신)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을 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彖曰 困 剛揜也 (단왈 곤 엄강야)
단전에서 말하길 곤은 剛이 감추어지는 것이니
險以說 困而不失其所亨 其唯君子乎 (험이열 곤이불실기소형 기유군자호)
험한데도 기뻐하여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 亨한 바를 잃지 않으니 그 오직 군자로다!
貞 大人 吉 以剛中也 (정 대인 길 이강중야)
“정 대인 길”은 剛을 가지고 中에 있기 때문이고
有言不信 尙口乃窮也 (유언부신 상구내궁야)
“유언부신”은 말을 앞세우면 곤궁해지기 때문이다.
象曰 澤 无水 困 (상왈 택 무수 곤)
상전에서 말하길 택에 물이 없는 것이 곤이니
君子 以 致命遂志 (군자 이 치명수지)
군자가 이로써 천명을 이루고 뜻을 이룬다.
亨은 ‘형통하다’ ‘통달하다’라는 뜻이다. 『주역』에서 형(亨)은 여름의 역할에 해당한다. 봄은 시작하는 기운, 여름은 펼치는 기운이다. ‘곤’은 침체되고 곤란한 상황이다. 그런데 괘사에서는 이를 돌파하는 힘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인은 누구이기에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했을까? 또 말을 하면 신뢰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인에는 여러 뜻이 있다. 몸집이 큰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고, 성인이나 군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높은 신분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이라는 의미로 보면 좋다.
마음 그릇이 크다는 건 어떤 것인가. 『사기』에 나오는 순임금을 떠올려보자. 아버지와 배다른 동생, 계모가 합심해 몇 번이나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한번은 창고지붕을 수리하러 올라갔을 때 아버지가 불을 질렀다. 그때 순은 부인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우물을 수리할 때였다. 순은 그 때에도 아내들이 만들어준 새 옷을 입고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업 중에 흙과 돌덩어리들이 우물을 가득 채워버렸다. 동생이 순을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순은 이때에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이 순의 집에 앉아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형을 보고 당황한 동생은 죽은 줄 알고 걱정했다고 말한다. 만약 나였다면 “뻥 치지 마, 이 XX야!”라고 하며 일단 때리고 싸웠을 것 같다.^^ 그런데 순은 다르다.
순이 말했다.
「그래, 나도 네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성이 온후했던 순은 이 두 가지 죽을 뻔한 사건을 겪고서도 부모와 동생을 대하는 것이 전과 마찬가지로 효성스럽고 우애스러웠으며 아무런 다른 점이 없었다.
―『중국신화전설1』, 위앤커, 274쪽
지나치게 쇠약해도 곤경에 빠지지만, 너무 강성해도 곤경에 빠진다. 그럴 때에는 신중하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 순 또한 그랬다. 우 임금의 눈에 띄어 두 명의 부인을 얻었고, 창고와 가축 등도 얻게 되었다. 부모와 동생은 이러한 순의 재산이 탐나 빼앗고자 했다. 그것이 순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시작되는 것처럼 궁핍하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곤궁함을 뚫고 나가려 하고, 뚫고 나가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곤괘의 상괘는 ‘태’이다. 태괘는 연못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기쁘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단전에서는 험한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다고 했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亨한 바를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연못이 물이 없으면 논에 물을 댈 수 없다. 그렇기에 연못에 물을 채워야 한다. 이것을 사람에게는 인품을 채우는 것으로 보았다. 못에 물이 차오르면 논을 풍요롭게 할 수 있고, 사람에게 인품이 흘러넘치면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온 순을 보고 깜짝 놀라는 가족들, 이때 순의 얼굴표정은 어땠을까?
택수곤 효사
효사들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까? 먼저 초육을 보자.
初六 臀困于株木 (초육 둔곤우주목)
초육은 엉덩이가 나무 그루터기에 끼여 곤란한지라
入于幽谷 三歲不覿 (입우유곡 삼세부적)
골짜기에 피하여 숨어 3년이 지나도 보지 못한다
象曰 入于幽谷 幽不明也(상왈 입우유곡 유부명야)
상전에 이르길 “입우유곡”은 어두워서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臀’은 엉덩이고, ‘株’는 나무 그루터기이다. 초육은 엉덩이가 나무에 끼여 움직일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다. 구이가 초육의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나무 그루터기’는 곧 구이다. 초육은 아직 힘이 약하고 미천한 신분이다. 계획대로라면 구사와 호응해야 하지만, 구사는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처지이니 기대할 수 없다.
원래 첫번째 효는 陽의 자리인데 여기에서는 陰이 왔고, 네번째 효는 陰의 자리인데 陽이 왔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실정(失正), 즉 바른 자리를 잃었다라고 한다. 그래서 앞(위쪽)으로 가도 나를 도와줄 구사는 오지 않고, 가지 않고 그대로 있어도 편하지 않다. 이럴 때에는 상황을 피해 은거한 후 상황이 풀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주대토’의 나무 그루터기도 곤괘의 초육에 나오는 ‘株’이다.
九二 困于酒食 朱紱方來 (구이 곤우주식 주불방래)
구이는 곤란한 상황에서 밥과 술을 먹고 있으나 제사 지낼 때 입는 옷이 도착할 것이니
利用亨祀 征凶无咎 (이용형사 정흉무구)
그것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고 따지면 흉하니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困于酒食 中有慶也 (상왈 곤우주식 중유경야)
상전에 이르길 곤란한 상황에서 밥과 술을 먹고 있으면서 中이기 때문에 경사가 있으리라
구이는 초육과 육삼, 두 陰 사이에 끼어있다. 가운데 자리, 즉 中은 얻었지만 음의 자리에 양이 왔기에 正은 아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해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매일매일 밥과 술만 먹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剛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며 산다면 결국 제사 지낼 때 입는 붉은 옷을 받는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된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것은 뭘까? 어려운 처지가 되면 누구나 그 상황을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술로 어려운 상황을 잠깐 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꼭 술이 아니더라도 흔히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빠져드는 것들이 다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이나 다른 것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中’이고 ‘剛’이다. 그러다보면 ‘붉은 옷’이 온다. 이때는 제사를 지내러 나가는 것이 이로운데, 征하면 흉하다고 했다. 征은 곧 싸우는 것이다. 초육과 육삼은 구이에게 불만이 많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는데, 여기서 망해야 허물이 없다. 즉, 져야 좋다는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바로 곤괘의 구이에 해당된다.
믿기 어렵지만(!) 전략적인 패배가 필요할 때도 있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藜 (육삼 곤우석 거우질려)
육삼은 돌에 눌려 곤란을 당하고 가시덤불을 깔고 있다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입우기궁 불견기처 흉)
집에 가 부인을 볼 수 없으면 흉하다
象曰 據于蒺藜 乘剛也 (상왈 거우질려 승강야)
상전에서 말하길 가시덤불을 깔고 있는 것은 剛을 타고 있는 것이고
入于其宮不見其妻 不祥也 (입우기궁불견기처 불상야)
자기 집에 가도 자기 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육삼은 양의 자리에 음이 온 것이니 失正이다. 상육과 응해야 하나 구사와 더 가까워 친하게 지낸다. 구사는 초육과 응해 구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구이는 억세기 때문에 억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육삼이 앞으로 가면 돌(구사)에 걸려 넘어지고, 잡고 오르려 하면 가시덤불에 찔리게 된다. 이렇게 힘든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에서 부인을 볼 수 없으니 흉하다.
이렇게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육삼이 자신의 입장[陰]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이·구사와 싸우게 된다. 음과 양은 화합해야 하는 법! 육삼이 자신만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 고집하게 되면 육삼의 부인은 등을 돌려 그를 떠나게 된다. 그런 지경이 되면 상황이 몹시 나빠진다. 그래서 부인을 볼 수 없으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육삼은 ‘나 홀로 집에’가 되면 좋지 않다!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 (구사 래서서 곤우금거 )
구사는 오면서 느릿느릿하여 쇠수레 속에서 곤란을 당하니
吝 有終 (린 유종)
부끄럽더라도 유종의 미가 있다
象曰 來徐徐 志在下也 (상왈 래서서 지재하야)
상전에서 말하길 느릿느릿 오는 것은 뜻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니
雖不當位 有與也 (수부당위 유여야)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다
구사는 음의 자리에 양이 왔으니 失正이다. 서(徐)는 천천히 온다는 뜻이다. 金車는 수레바퀴의 부품인 듯한데, 여기에 문제가 생겨 곤란한 상황이 된다.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금거’는 바로 구이이다. 그래서 「상전」에서 “느릿느릿 오는 것은 뜻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 한 것이다. 굴욕은 당하지만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굴욕까지 당하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곤괘의 구사에게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마침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구사여!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나아가라!
九五 劓刖 困于赤紱 (구오 의월 곤우적불)
구오는 의형, 월형을 함이니 붉은 제복을 입고 곤란을 겪고 있으면
乃徐有說 利用祭祀 (내서유열 이용제사)
천천히 기쁨이 있으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
象曰 劓刖 志未得也 (상왈 의월 지미득야)
상전에 이르길 의형과 월형은 뜻이 아직 통하지 않은 것이고
乃徐有說 以中直也 (내서유열 이중직야)
천천히 기쁨이 있는 것은 중심에 있으면서 정직하기 때문이다
利用祭祀 受福也(이용제사 수복야)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로운 것은 복을 받기 때문이다
구오는 양의 자리에 양이 와 正을 얻었으며, 이는 군주의 자리이다. 의형은 코를 베는 형벌이고, 월형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다. 「상전」에서는 의형과 월형을 뜻이 통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 이는 군주가 엄하게 백성을 다스려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그래서 붉은 제복을 입고 곤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오는 곤란한 상황을 바로잡을 힘이 있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포악함을 바로잡게 되면 사람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점점 곤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전」에서는 제사가 이로운 것이 복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대 중국사회에서는 제사를 전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쟁은 눈에 드러나는 무력으로 적과 싸워 자신들의 안전을 보증했지만, 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빌어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람·구름·천둥·비와 같은 자연계에 있는 현상이나 산·강·돌·나무 등과 같은 사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들 또한 이러한 믿음의 대상이었다.
‘祭祀’(제사)라는 단어의 ‘祭’에는 ‘서로 접하다’ ‘사귀다’라는 뜻이 있다. 제사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령과 인간의 사귐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福은 제사지낼 때 쓴 고기와 술을 의미한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이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신령들의 기운을 받았다. 또한 제사 고기를 먹는 것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려운 곤괘에서 구오가 마침내 화합의 장을 연 것이다.
제사에는 신령과 인간의 화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상육 곤우갈류 우얼올)
상육은 칡넝쿨 등나무넝쿨에 감기어 곤란을 당하고 위태하여
曰動悔 有悔 征 吉(왈동회 유회 정 길)
‘움직일수록 후회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상황에 빠질 것이니 과오를 바로잡으면 길하다
象曰 困于葛藟 未當也 (상왈 곤우갈류 미당야)
상전에 말하길 ‘칡넝쿨 등나무넝쿨에 감겨 곤란하게 되는 것’은 아직 마땅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動悔有悔 吉行也 (동회유회 길행야)
움직일수록 후회하게 되는 상황에서 뉘우침이 있으면 길한 것은 행해지기 때문이다
‘葛’은 칡이고, ‘藟’은 등나무 넝쿨이다. 상육은 이것에 휘감겨 곤란한 상황이 된다. 왜일까? 상육은 은퇴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버티고 있으면서 구오와 구사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게다가 상육은 구오와 구사를 무시한다. 하괘와 상괘가 서로 불통인 상태인데, 상육마저 이런 식이니 구오와 구사는 답답한 지경이다. 그래서 상육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넝쿨에 감겨 곤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상육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모두가 상육을 주목한다. 그래서 그만큼 더 어렵다. 움직일수록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수갑을 찬 사람이 수갑을 벗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더 조여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구오와 한 마음이 되어야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오와 함께 육삼 등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뉘우침이 있으면 길한 것은 行해지기 때문이라 하였다.
택수곤은 이름에서는 ‘곤란하다’고 했지만 뜻을 살펴보니 형통하고 貞한 괘였다. 왜 이런 반전이 있는 것일까? 예전에 곰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길흉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라도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 있으면 길하고, 배우지 못하면 흉하다고. 이 말씀에 따르면 곤궁한 상황은 오히려 나를 단련시키는 장인 셈이다. 그러니 이러한 어려움 위에서 우리는 지도에 다른 길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말 흉한 것은 어떤 것도 듣지 않고, 어떤 것도 보려하지 않는 상태가 아닐까. 그러니 어려운 상황일 때마다 손을 가슴에 얹고 이 말을 외쳐보자. “알 이즈 웰!”
글_만수(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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