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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성인에게 배우는 난세를 사는 법 - 지화명이

by 북드라망 2015. 2. 26.


지화명이,

성인에게 배우는 난세를 사는 법




『주역』 「계사전」에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爲道)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한 것이 도(道)라는 말이다. 짧고 쉬운 문장이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좀 더 알기 쉽게 의역해보자. ‘일음일양지위도’라는 말은 음양의 끊임없는 순환이 바로 천지자연의 법도라는 뜻이다.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화지진과 오늘 살펴볼 지화명이(地火明夷)다.


화지진은 어떤 괘였나? 기억나지 않는다면 화지진의 괘상(卦象)이라도 떠올려보자. 땅(곤삼절, 팔곤지)에서 화(이중절, 삼리화)가 나와서 중천에 떠 있는 모습,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솟아올라 창공에서 타오르는 형상이 화지진이었다. 예컨대 이것을 일양(一陽)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반면 오늘 살펴볼 지화명이는 화가 땅 밑으로 떨어진, 태양이 서쪽으로 져버린 형상이다. 명이(밝을 明, 상할 夷)라는 이름처럼 밝은 것이 어두운 것에 가려져서 손상된 것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일음(一陰)이라고 할 수 있다.


지화명이, 화가 땅 밑으로 떨어져 밝은 것이 어두운 것에 가려져 손상된 형상


이처럼 일음일양이란 낮과 밤이라는 구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어디 낮과 밤뿐이겠는가. 낮과 밤이 순환하면서 빚어내는 절기와 계절(봄, 여름-양/가을, 겨울-음) 모두 일음일양이 만들어내는 ‘법칙(도)’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원한 빛도, 어둠도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뜬다!’



지화명이 괘사


지화명이괘도 마찬가지다. 화지진에서 극에 이른 양은 바로 다음 스텝인 지화명이에서 음의 기세에 눌려 손상된다. 일음일양(일양일음)의 법칙! 하여 우리는 지화명이를 흉한 괘라고 여기기 쉽다. ‘음이 양을 상하게 하다니 부정해!’라고. 물론 지화명이가 풀어낼 이야기가 가볍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지화명이가 흉한 괘는 아니다. 마땅히 ‘일음’의 시대를 거쳐야 다시 ‘일양’의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지화명이는 어둠 속에서 각개약진하며 빛을 기다리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明夷는 利艱貞니(명이 이간정)

명이는 어렵게 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지화명이괘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괘사는 쉽고 짧다. 모르는 한자도 없고 해석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품은 뜻만큼은 결코 작지 않다. 주역을 창안한 성현들은 천지가 운행하는 이치를 보고 인간이 따라야 할 규율을 만들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일러주는 것이 바로 괘사다. 가령 빛이 어둠이 가려 손상될 때, 다시 말해 지화명이의 때는 혼란하고 어려운 세상이므로 자신을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말한다. 주역은 ‘점서(占筮)’이므로 점을 쳐서 지화명이 괘가 나온다면 어려운 때를 당해서 몸과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한다. 이처럼 괘사는 ‘천기’를 읽고, ‘때’에 맞는 행동요령을 알려준다.


彖曰 明入地中이 明夷니(단왈 명입지중 명이)

단전에 이르길 밝은 것이 땅 가운데 들어감이 명이니,


內文明而外柔順하야 以蒙大難이니 文王이 以之하니라.

(내문명이외유순하야 이몽대난이니 문왕이 이지하니라.)

안으로 문명하고 밖으로는 유순해서 큰 어려움을 무릅쓰니, 문왕이 써 했느니라.


利艱貞은 晦其明也라 內難而能正其志니 箕子以之하니라.

(이간정은 회기명야라 내난이능정기지니 기자이지하니라.)

‘이간정’은 그 밝은 것을 그믐으로 하니라. 안으로 어려우면서 능히 그 뜻을 바르게 함이니, 기자가 써 했느니라.


단전에서는 어려운 때를 당해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킨 사람으로 ‘기자와 문왕’을 언급한다. 고로 지화명이괘의 주인공은 기자와 문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주지육림’으로 유명한 폭군 주왕의 시대를 살았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난세에 성인이나 영웅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이것도 일종의 음양의 법칙인 것일까? 주왕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시대는 더없이 암울했지만, 시대를 밝혀줄 성인은 여럿 나타났다. 나열해보자면 백이·숙제, 문왕, 기자, 미자, 비간 등이다.


어둠의 시대를 밝혀줄 성인들이 나타나다.


특히 비간, 기자, 미자는 주왕과 한 가족으로 이들의 가족사도 파란만장하기 그지없다. 먼저 주왕의 삼촌인 비간은 조카인 주왕에게 선정을 베풀라고 간언했다가 주왕이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고 하니 좀 보자.”라는 말에 심장을 꺼내 죽임을 당한다. 반면 주왕의 배다른 형제인 미자는 주왕이 얼마 못가 천명을 잃을 것을 알고 조상의 신주를 훔쳐 달아나 송나라의 시조가 된다.


죽거나 도망치거나! 이 난세에서 주왕의 또 다른 삼촌인 기자는 번민한다. 간언을 해서 죽거나, 먼 땅으로 도망치는 것 모두 조카인 주왕에게는 물론 자신의 조국인 은나라에게도 누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이 난세를 해쳐나갈 수 있을까? 그리곤 묘안을 생각해낸다. 거짓으로 미친 척을 해서 주왕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기자가 주왕의 마수를 피한데 반해 당시 은나라 서쪽 지방의 제후였던 문왕(이때는 서쪽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서백’이라고 불렸다.)은 주왕의 시샘과 노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이유는 문왕이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폭군이라고 해도 민심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주왕은 문왕을 유리옥이라는 감옥에 유폐한다. 하지만 문왕은 주왕을 원망하거나 시대를 한탄하지 않고 감옥 속에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64괘를 지었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성인들은 모두 고난의 행로를 밟았다. 죽거나, 도망치거나, 미친 척하거나, 갇히거나. 하지만 어두운 시대에도 자신을 바르게 지키면서 언젠가 다가올 빛을 기다린 자가 바로 기자와 문왕이었다. 이들은 안으로는 자신의 신념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전(문왕-64괘/기자-홍범구주)을 품고서, 겉으로는 주왕을 따르지도 거스르지도 않았다. 이른바 ‘내문명’하고 ‘외유순’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일양의 시대가 도래 했을 때 속 깊이 품고 있던 ‘문명’을 세상에 널리 쓰이도록 하였다.



지화명이 효사


初九는 明夷于飛애 垂其翼이니(초구 명이우비 수기익)

초구는 명이가 나는 데에 그 날개를 드리우니


君子于行애 三日不食하야 有攸往애 主人이 有言이로다.(군자우행 삼일불식 유유왕 주인 유언)

군자가 감에 삼일을 먹지 않아서, 가는 바를 둠에 주인이 말을 두도다.


초구는 충절의 아이콘인 백이·숙제에 대한 이야기다. 알다시피 백이·숙제는 주왕을 치고, 은나라를 멸하려는 무왕(문왕의 아들)을 막아선다. ‘신하가 임금을 벌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무왕은 백이·숙제를 물리고 주왕을 쳐서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은의 시대가 가고 주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자 백이·숙제는 주나라의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었다.


백이·숙제를 뜻하는 초구효는 불을 뜻하는 리괘의 가장 아래에 있다.(지화명이의 내괘(아래괘)는 불, 외괘(윗괘)는 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불은 그 타오르는 모양처럼 위로 솟아올라야 한다. 매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오르듯. 백이·숙제도 자신의 이상에 맞는 때를 만났다면 벼슬길로 나아가 천하를 경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이·숙제에게는 주나라 또한 암흑이긴 마찬가지였다.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무례한 나라. 하여 백이·숙제도 날개를 접고 둥지에 들어앉은 새처럼 자신의 이상을 접고 수양산에 은거한다. ‘주인이 말을 두도다.’라는 말은 무왕이 백이·숙제를 불렀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六二는 明夷애 夷于左股니 用拯馬 壯하면 吉하리라.(육이 명이 이우좌고 용증마 장 길)

육이는 명이에 왼쪽다리를 상함이니, 써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하리라.


육이는 리괘(내괘)의 가운데에 있다. 주역용어로는 ‘중(中)의 자리’에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음이 음의 자리에 있어 위치도 바르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정(正)의 자리’에 있다고 한다.(1, 3, 5효는 양이고, 2, 4, 6효는 음이다. 여기서 육이 음이고, 음의 자리인 2효에 있으니 정이라고 한 것이다.) 합치면 ‘중정한 자리’ 이렇게 위치가 중하고 정해서 합당할 때 좋은 효사가 나온다.


지화명이 육이효도 마찬가지다. 육이는 성인들 가운데서도 문왕을 나타내는데 문왕은 앞서봤듯 64괘를 지었고, 주나라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효사에서 왼쪽다리를 상했다는 것은 유리옥에 갇혀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동양문화권에서 오른쪽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進), 왼쪽은 뒤로 물러나는 것(退)을 뜻한다. ‘용증마 장 길’도 은유다. ‘구원하는 말’은 바로 문왕의 아들 무왕을 말한다. 무왕이 주왕을 치고 문왕을 구원하는데, 무왕 자신은 물론하고 무왕을 따르는 이들이 굳건하고 장대하면 주왕을 이길 수 있으니 길하다. 정리하자면, 문왕이 비록 감옥에 갇혀있지만 아들 무왕이 구해줄 것이므로 길하다는 것이다.


九三은 明夷于南狩하야 得其大首니 不可疾貞이니라.(구삼은 명이우남수 득기대수 불가질정)

구삼은 명이에 남쪽으로 사냥해서 그 큰 머리를 얻으니, 빨리 바르게 할 수 없음이라.


구삼은 육이효에서 말한 ‘구원하는 말’, 즉 무왕을 뜻한다. 무왕은 명이의 시대에 남쪽으로 사냥 가서 큰 머리를 얻는다고 한다. 응? 이 판국에 무슨 사냥? 이미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큰 머리란 바로 주왕을 말한다. 구삼은 양이 양자리에 위치해 있다.(구삼은 양인데, 3효가 양이니까.) 고로 힘이 세다! 그 이름답게 무력의 왕, 무왕이다. 게다가 3효와 상응하는 상육은 주왕을 뜻한다. 하여 상응하는 효끼리 한바탕 쟁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사냥을 남쪽으로 가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구삼이 위치한 리괘(내괘)에서 볼 때 상육이 있는 곤괘(외괘)는 앞으로 나아가는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효의 위치와 상응하는 관계로도 은·주교체기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니 이렇게 오묘할 수가!


六四 入于左腹하야 獲明夷之心하야 于出門庭이로다.

육사는 왼쪽 배에 들어가 명이의 마음을 얻어서 문정에 나옴이로다.


육사는 주왕의 배다른 동생 미자를 말한다. 입우좌복 역시 은유다. 좌복은 왼쪽 배 깊숙이… 우리 몸에서 가장 내밀한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은 미자가 주왕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다. 혹은 국가의 가장 내밀한 곳인 종묘에 들어갔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주왕의 신뢰를 얻은 미자는 종묘에 들어가 신주를 밀반출(?)해서 멀리 달아나버렸다.


六五는 箕子之明夷니 利貞하니라.(육오 기자지명이 이정)

육오는 기자의 명이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육오는 기자를 말한다. 원래 주역에서 5효는 군주의 자리다. 그래서 주왕이 5효에 오는 게 맞다. 하지만 맹자의 말대로 주왕은 인의를 해친 도적에 불과하며, 임금이 아닌 필부이기 때문에 5효에 자리하지 못한 게 아닐지. 대신 오효는 무왕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규범인 홍범구주를 전해준 기자가 자리했다. 어려운 때 자신을 낮추고 바르게 지켰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을 때는 국가적인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무왕에게 천하를 경영하는 비전을 전해줬다. 기자야 말로 지화명이의 지혜를 삶으로 보여준 인물인 것이다.


上六은 不明하야 晦니 初登于天하고 後入于地로다.(상육 불명 회 초등우천 후입우지)

상육은 밝지 아니하여 그믐이니,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나중에는 땅에 들어가도다.


상육은 폭군 주왕을 말한다. 하여 효사부터 암울하다. 주역에서 상육은 괘의 맨 끝자리로 ‘지나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효는 좋지 못하게 해석된다. 지화명이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또 내괘인 리괘(불)로부터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둡고, 외괘인 곤괘(땅) 자체가 속이 텅 비어 있어서 휑하고 어둡다. 한데 주왕이 처음부터 ‘암흑의 제왕’이었던 것은 아니다. 주왕도 처음에는 천자로서 천하를 비추며 하늘에 올랐다. 하지만 천자로서의 지위를 망각하고 온갖 실정과 패악을 저질렀기에 결국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 독재, 경제위기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트리는 ‘어렵고 힘든 시기’는 무수히 많다. 꼭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도 매 순간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대부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원망하고, 손 놓고 좌절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어서 빨리 ‘이 또한 지나가기를’하고 바랄 뿐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일은 지나간다. 말 그대로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수동적으로 내가 직면한 문제들을 계속 건너뛰다가는 매번 같은 일로 발목이 잡힐 것이다. 일음일양의 순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습관의 반복만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이의 때’는 이런 수동적인 시간과는 다르다. 명이의 때에는 내가 직면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며, 나 자신을 바르게 지키면서 앞날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기자와 문왕이 그러했듯이.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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