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밝은 불이 땅 위로 나오다 - 화지진


화지진,

나 자신을 명출지상케 하라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장(大壯) 괘는 군자의 힘이 강해진 상태였다. 군자가 힘을 길렀으니 이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대장 괘 다음에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진(晋) 괘가 나온다. 진 괘를 보면 공자가 떠오른다. 공자는 오랫동안 학문을 갈고 닦으면서 수신하다가 쉰 살에 비로소 공직에 나아갈 결심을 한다. 그때 공자는 화지진(火地晋) 괘를 만나지 않았을까?


공자(孔子)는 삼십 대에 이미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고, 그때부터 세상에 나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소인의 시대가 계속되므로 후학 양성에 힘쓸 뿐 정치에 선뜻 나가지 못하였다. 한 번은 노나라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양화(陽貨)가 공자를 청한 일이 있었다. 양화는 소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공자는 그와 대면하는 일을 피하려고 온갖 애를 썼다. 양화가 새끼돼지를 선물로 보냈을 때도 공자는 양화가 집에 없는 것을 틈타 답례 인사를 하러 간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양화와 딱 마주쳐버렸다.


쉰 살에야 공직에 나아간 공자.


이때 양화는 공자에게 말한다. 보배로운 능력이 있는데도 나라 사정이 혼란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대서야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이에 공자는 옳은 말이라고 승복하며 장차 관직에 나아갈 생각이라고 답을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양화 너 같은 소인이 득세하는 시대가 지나면 나도 정치에 나갈 것이다.’라는 속뜻을 품고 말한 것이다. 공자는 양화가 세력을 잃자 그제야 관직에 나아갔고, 당시 공자 나이는 쉰 살이었다고 한다.



화지진 괘사


晉은 康侯를 用錫馬蕃庶하고 晝日三接이로다. (진 강후 용석마번서 주일삼접)
진은 (나라를) 편안케 하는 제후에게 말을 많이 주고 하루에 세 번 접하도다.


화지진은 해가 땅 위로 나와서 중천에 떠 있는 형상이다. 해가 떠서 밝은 세상이라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둔 괘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군자가 물러났다가 밝은 세상이 되었으니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시대라든가 어지러운 때에는 천자가 제후를 접하기가 힘이 들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니 천자는 제후를 자주 접해야 한다. 천자는 제후에게 상으로 귀한 말을 주면서. 처음에 제후가 천자한테 조공을 바칠 때 한 번 접하고, 중간에 잔치를 벌일 때 한 번 접하고, 또 가서 잘 다스리라는 의미에서 돌아갈 때 한 번 접하니 하루에 총 세 번을 접하는 것이다.


彖曰 晉은 進也니 (단왈 진 진야)

단전에 이르길 진은 나아가는 것이니


明出地上하야 順而麗乎大明하고 柔進而上行이라. (명출지상 순이리호대명 유진이상행) 

밝은 것이 땅 위에 나와서, 순해서 크게 밝은 데에 걸리고, 유가 나아가 위로 행함이라.


是以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也라. (시이 강후용석마번서주일삼접야)

이로써 ‘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이라.


象曰 明出地上이 晉이니 君子 以하야 自昭明德하나니라 (상왈 명출지상 진 군자 이 자소명덕)

상에 이르기를 밝은 것이 땅 위로 나온 것이 晉이니,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히느니라.


명출지상(明出地上)은 밝은 불이 땅 위로 나왔다는 뜻이다. 또한 땅은 돌출되지 않고 포용력이 있으므로 순하다고 했다. 내괘인 땅 괘는 순(順)을 말하고 외괘인 불 괘는 대명(大明)이라고 한다. 유(柔)가 상행했다는 것은 양이 있어야 할 인군의 자리 오효에 약한 음이 있음을 뜻한다.


명출지상, 밝은 불이 땅 위로 나온 것.


대상전에서 군자는 밝은 것이 땅 위로 나온 화지진 괘의 상(象)을 본받아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 화지진의 시대에 군자는 때를 만났으니 세상에 나아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점검하여 타고난 밝은 덕을 밝혀야 한다. 군자가 세상에서 뜻을 올바르게 펼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명덕을 밝혀야 한다는 이 명제는 매우 준엄하다. 수신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는 순간 올바른 정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지진 효사


初六은 晉如摧如에 貞이면 吉하고 罔孚라도 裕이면 无咎리라. (초육 진여최여 정 길 망무 유 무구)

초육은 나아가고 꺾어 돌리고 하니 바르게 하면 길하고, 믿지 못하더라도 넉넉하게 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晉如摧如는 獨行正也오 裕无咎는 未受命也새라. (상왈 진여최여 독행정야 유무구 미수명야) 

상전에 이르길 ‘晉如摧如’는 홀로 바른 것을 행함이요. ‘裕无咎’는 명을 받지 아니했기 때문이라.


명출지상을 한 화지진 괘이기 때문에 초육에도 나아간다고 했지만, 초육은 음으로써 어리고 능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아직은 못 나갈 형편이다. 바르게 하면서 자기 분수를 알고 지키면 나아갈 때 나아가게 되어 길하다.


초육은 아직 명을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아가든 꺾이든 간에 큰 허물이 없다. 다만, 자꾸 꺾이더라도 언젠가는 나아갈 때가 올 것이라 믿고 넉넉한 마음을 갖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를 믿지 못해 괜한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六二는 晉如 愁如나 貞이면 吉하리니 受玆介福于其王母리라. (육이 진여 수여 정 길 수자개복우기왕모) 

육이는 나아가는 것이 근심하는 듯하나 바르게 하면 길하리니 이 큰 복을 왕모로부터 받으리라.


象曰 受玆介福은 以中正也라 (상왈 수자개복 이중정야) 

상전에 이르길 ‘受玆介福’은 중정하고 바름으로써라. 


육이는 음이 음자리에 바르게 있으면서 내괘에서 중을 얻었지만 음양응을 얻지 못했다. 음양응이 되었으면 근심할 게 없는데 그렇지 못하여 근심하게 된 것이다. 육오 인군은 음으로 세상은 밝지만 육오 자신은 음으로 어둡다. 어둡다 보니 육이의 마음을 잘 몰라주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육이가 나아가는 것을 근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육이는 중정(中正: 음이 음자리에 바르게 있고 내괘에서 중을 얻은 것)하니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육오가 알아주고 큰 복을 내릴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육오를 왕모라 표현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먼 옛날 누군가 점을 쳤는데 이 점괘가 나와서 벼슬을 기대했는데 벼슬 대신 할머니 복을 받게 된 것을 이렇게 말한 게 아닐까 싶다.^^:;


六三은 衆允이라 悔亡하니라. (육삼 중윤 회망)

육삼은 무리가 믿느니라. 뉘우침이 없어 지니라.


象曰 衆允之志는 上行也라. (상왈 중윤지지 상행야)

상전에 이르길 ‘衆允’의 뜻은 위로 행함이라. 


내괘의 각 효들과 외괘(불 괘)의 관계를 보면 육이는 밝은 불 괘가 육삼에 가려지고 멀어져서 근심하게 된 것이고, 초육은 아예 멀어서 다 못 가고 뒷걸음질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육삼은 바로 앞에 밝은 것(離明)을 목전에 두고 있어 앞이 훤히 열렸다. 육삼이 가장 앞에 있으니 육삼이 가야 육이도 가고 초육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육삼의 뒤를 따르는 육이, 초육의 무리가 육삼을 잘 가라고 밀어주고 믿어주고 있다.


이렇게 초육과 육이의 무리가 자기 뒤에서 밀어주고 믿음을 주기 때문에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고, 중도 얻지 못했지만 후회가 없다고 한 것이다.


서로 밀어주고, 믿어주는 관계


九四는 晉如 鼫鼠니 貞이면 厲하리라.(구사 진여 석서 정 려) 

구사는 나아가는 것이 다람쥐니, 고집부리면 위태하리라.


象曰 鼫鼠貞厲는 位不當也새라.(상왈 석서정려 위부당야) 

상전에 이르길 ‘鼫鼠貞厲’는 자리가 마땅치 않음이라. 


진 괘의 밝은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서 초육·육이·육삼 모두가 상행하는데, 그것을 보고 구사가 자기를 해치려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해서 다람쥐처럼 의심을 품게 된다. 여기서 다람쥐를 거론한 것이 재미있다. 『설문해자』에 “다람쥐는 날되 집을 넘지 못하고, 나무를 타되 가지 끝까지는 타지 못하고, 헤엄을 치되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구멍을 파되 자신을 가리지 못하고, 달리되 사람보다 늦다.”라고 하였다. 다람쥐는 다섯 가지 기술이 있으나 하나도 제대로 능한 것이 없어서 의심이 많다고 본 것이다.


이런 다람쥐 형상의 구사는 육오 밑의 대신으로 아래·위로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면 위태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사가 음 자리에 부당하게 있기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을 지우기는 어렵다. 우리도 다람쥐와 같은 처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스펙에 목매고, 양적인 팽창만을 추구하다 보면 욕망과 불안은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고 주변을 의심하게 되면 삶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六五는 悔 亡하란대 失得을 勿恤이니 往에 吉하야 无不利리라. (육오 회 망 실득 물휼 왕 길 무불리) 

육오는 후회가 없을진대 잃고 얻음을 근심치 말 것이니, 감에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象曰 失得勿恤은 往有慶也리라. (상왈 실득물휼 왕유경야)

상전에 이르길 ‘失得勿恤’은 가면 경사가 있으리라. 


진 괘의 시대는 밝은 세상이고 육오가 속한 상괘는 밝은 불 괘이지만, 육오는 어두운 음(陰)으로 위아래의 밝은 양(陽)에게 늘 열등의식을 가지고 후회를 하고 있다. 대명한 때이니 그저 군왕으로서 바르고 정당하게 정치를 해나가면 되는 때이니 후회와 근심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上九는 晉其角이니 維用伐邑이면 厲하나 吉코 无咎어니와 貞엔 吝하니라 (상구 진기각 유용벌읍 려 길 무구 정 인)

상구는 그 뿔에 나아감이니, 오직 써 읍을 치면 위태하나 길하고 허물이 없거니와, 바르게 하는 데는 인색하니라.


象曰 維用伐邑은 道未光也새라. (상왈 유용벌읍 도미광야)

상전에 이르길 ‘維用伐邑’은 도가 빛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상구는 진 괘의 맨 위에 있어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꼭대기인 뿔 위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너무 나아가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성인이 그 어려운 자리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나 자신이다.


(邑)을 치라는 것인데, 여기서 읍은 자기의 영향권 아래 있는 자신의 터전이다. 우리는 흔히 “내 마음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 자신 이외에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권력, 돈, 명예, 사랑, 자식 그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의 욕심을 없애는 것,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 수신하는 것 등 온전히 나 자신, 그 자체만을 우리는 개입할 수 있다. 결국, 여기서 읍을 치라는 것은 내 안의 탐진치를 없애서 바르게 하라는 말일 것이다.


육오는 번뇌에 휩싸일 수 있기에 외부가 아닌 자신의 후회를 없애는 것이 과제였다면, 상구는 욕심, 이기심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나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명출지상하는 밝은 사회에서도 결국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 진 괘의 육오와 상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글_임경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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